초반 드라마 제목 때문에 한동안 논란이 있었던 ‘착한남자’였습니다. ‘차칸남자’라는 제목으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한글 표기를 지향해야 할 공영 방송국에서 그 뜻을 흐리는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한다는 이유로 결국 3회 만에 ‘착한남자’가 되고 만 것이지요. 아마 드라마 제목이 중간에 바뀌게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논란이 액땜이 된 것인지 그 후로 ‘착한남자’는 계속해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20%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제목 논란만큼이나 드라마 내용에 있어서 반전에 가까운 파격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는 중이죠. 특히나 타이틀롤을 맡고 있는 송중기의 연기가 여심을 자극하면서 점점 더 매력적인 드라마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어제 방송된 14회를 지켜보면서, 드라마 제목이 또 한 번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한남자’가 아닌 ‘착한여자’라는 제목으로 말이지요. 가만 보니 이 드라마는 착한남자 송중기의 이야기만을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변화만큼 또 다른 주인공 문채원의 캐릭터 변화 역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 듯합니다.

문채원이 연기하는 서은기는 여자치고는 꽤 거친 성격의 캐릭터였습니다. 지극히 차갑고 도도하며 안하무인의 성격을 지닌 거대 기업의 후계자 역할이었죠. 여자이기 이전에 한 기업의 총수가 먼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혹독한 집착 때문에, 그리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너무도 힘없이 세상을 살아온 어머니의 연약함 때문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 강해져야만 했고 스스로를 쉼 없이 채찍질하며 살아야만 했던 건데요.

자신의 어머니가 있어야 할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은 한재희(박시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는 그녀였습니다. 한재희와 함께 있을 때야말로 서은기의 발톱이 가장 무섭게 드러나게 되는 때였지요. 거기에 회사 운영의 욕심까지 가지고 있는 한재희를 간파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를 더욱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서은기의 마음은 언제나 한 겨울의 허허 벌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결코 허락되지도 않았으며, 독함과 날카로움으로 세상을 대적해야 한다는 생각 외엔 달리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던 그녀였죠. 드라마 초반에 보여준 서은기의 모습은 영락없는 독불장군이었고, 또 그만큼 외로웠던 강인한 척에만 익숙해진 한 여자이기만 했는데요.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 강마루라는 남자가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서은기는 삶 자체를 새롭게 살아가게 되지요. 결국 그녀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요. 천국에 들어와 있는 표정으로 한 남자를 바라보기도 하고, 그에게 사랑한다는 달콤한 속삭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마음은 허허 벌판에서 푸른 바다가 되고 맙니다.

사랑을 알게 되면서 그 칼날 같던 마음이 조금씩 무뎌지고 둥글어져 한 사람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을 만큼이 되어 버렸습니다. 강마루가 어떻게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다 알게 된 순간에도, 그것조차 덮어버릴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 그녀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서은기의 착한여자 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억상실증이라는 더욱 드라마틱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그녀는 또 한번의 극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제 방송된 14회는 서은기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암시를 보여준 듯했습니다. 기억상실증은 그녀에게 있어서 단순한 정신병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것은 서은기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조금씩 기억의 조각을 찾아내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후에 나타나는 그녀의 반응이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그녀는 과거 자신의 성격을 알아갈 때마다, 몸서리치는 후회와 부끄러움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녀를 질타하는 사람이 없건만, 정작 서은기는 자신에 대한 옛 모습을 하나하나 발견하고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못견뎌하고 있지요. 강마루의 거짓말에도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라져 가고 있는 서은기입니다.

강인한 척, 차가운 척, 완벽한 척으로 일관했던 서은기의 새로운 무기는 솔직함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은기가 기억상실증이라는 사실을 교묘히 이용한 한재희의 모략에 넘어간 그녀는, 사업상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지요. 하지만 그녀는 실수를 한 그를 찾아가 자신에 대한 허물과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마는데요. 결국 그 진심 어린 뉘우침과 사과는 그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아 태산 그룹에 큰 보탬이 됩니다.

서은기는 기억상실증 하나로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곤 하지요. 강한 척으로 무장하지 않고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상태라면 설사 그녀가 모든 기억을 다시 찾게 된다고 해도, 그녀의 선택은 한재희와 강마루에 대한 분노와 징벌이 아니라, 한재희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강마루를 변함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드라마 ‘착한남자’가 보여주는 가장 큰 복수극이며, 극적인 반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착한남자 이야기 속에 숨겨진 착한여자의 성장기가 바로 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주인공 강마루의 착한남자 스토리만큼이나, 서은기의 착한여자 되어가기 역시 꽤나 흥미로워지고 있거든요.

다른 이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스스로 한탄하는 서은기를 연기하는 문채원의 오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착한여자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연기하는 문채원의 열연이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중기의 연기만이 압권일 줄만 알았던 ‘착한남자’에서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그녀입니다. ‘착한여자’라는 제목으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갈수록 훌륭해지고 있는 문채원의 열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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