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묘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 여러 번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지요. 착한 로맨스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착한남자’는 이제 더 이상 첫 느낌을 지니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송중기와 문채원, 이들의 싱그러운 만남으로부터 기대했던 달달한 로맨스는 어느 순간부터 그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드라마 ‘착한남자’는 중반부에 커다란 한 방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뒤집은 바 있습니다. 바로 여주인공 서은기(문채원)를 기억상실증에 걸린 비운의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었죠. 거기에 남자 주인공 강마루(송중기) 또한 같은 교통사고로 인해 아직 확실하게 병명이 나오지 않는 중병에 시달리는 설정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요.

이미 처음부터 정해졌던 시놉시스였겠지만, 기둥 줄거리를 미리 알지 못했던 시청자들에게 두 남녀 주인공들에게 놓인 비참한 상황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 도대체 중반부터는 어떤 상황들이 연출될 것인지 궁금해 하던 찰나에, 보란 듯이 뒤통수를 치고만 반전에 가까운 설정이었죠.

진부한 기억상실증 소재를 써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내심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드라마 ‘착한남자’는 다른 드라마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주인공을 그려냅니다. 소재의 부재로 기억상실증을 중반부에 꽂아 놓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따위는, 절대 할 수 없게끔 이야기의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는 듯했지요.

언젠가부터 삼각관계에 놓인 세 남녀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명확해지기 시작합니다. 강마루와 한재희(박시연)의 질긴 애증의 관계가 서서히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 동시에, 서은기와의 사랑의 감정은 점점 더 진해지고 깊어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옛사랑에 흔들리는 강마루는 없습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서은기만 보일 뿐, 그 옆에 있던 한재희는 안중에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꺼져’라는 차갑고 독한 한마디가 그녀를 위한 유일한 배려일 뿐이었죠.

중반부에 치고 들어온 서은기의 기억상실증은 이야기에 많은 변수와 긴장감, 그리고 갈등을 가져다줍니다. 서은기에 대한 강마루의 사랑을 더욱 굳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아직 한재희 측에서 알지 못한 것으로 인해 은근한 긴장감을 형성시키기도 하며, 과연 서은기가 기억을 되찾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어제 방송된 ‘착한남자’ 13회는 ‘서은기의 위기 극복기’라는 부제가 어울렸던 방송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눈엣가시인 강마루와 서은기를 회사 밖으로 내몰려는 한재희의 계략이 주를 이루었던 회였지요. 한재희는 먼저 강마루를 내쫓는 데 손을 쓰기 시작하는데요. 검찰에 줄을 대 허위 사실을 만들어 강마루를 정보 유출 혐의로 기소당하도록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호락호락 넘어갈 강마루가 아닙니다. 강마루를 잔뜩 겁을 주고 끝내려던 한재희는 자신의 꼼수에 스스로 당하는 꼴이 되고 말지요. 한재희는 검찰과 자신이 함께 꾸민 해프닝을 고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요. 강마루는 고소 취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해, 자신의 죄를 모두 다 토해내고 대신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온전하게 벗겨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한재희를 찾아가 서늘한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지요. 이번 수사를 제대로 하게 되면 누구의 사주로 계획된 일인지 그 윗선까지 모조리 파헤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서은기의 기억상실증은 강마루와 서은기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고 맙니다. 예전부터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던 한재희의 수족인 안변호사가, 이런 저런 수소문 끝에 서은기의 건강 상태를 확실하게 알아채고 만 것이죠. 서은기가 교통사고로 인해 크게 뇌손상을 입었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억상실증뿐만이 아니라 학습 능력 또한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드디어 잡아내고 만 것인데요.

이제 이 사실은 한재희에게 전해지고 그녀는 기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이 아킬레스건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한재희로 봐서는 대충 짐작이 가긴 하지만, 그녀의 표정으로는 아직 어떤 일을 또 다시 꾸미게 될지 알 수가 없지요. 더군다나 어제 방송부터 착하게 보여주었던 예고편을 중단하면서, 더욱 더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예고편이 없음을 무척이나 아쉽게 만든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13회 마지막을 장식한 서은기와 강마루의 엔딩 장면이었죠.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서은기는 한재희와 얘기 도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는데요. 옆에서 간호를 하던 강마루가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 서은기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녀를 찾아 나선 강마루는 병원 앞 벤치에서 누워있는 서은기를 발견하게 되지요. 그리고 감기에 걸리겠다며 그녀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서은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반전을 다시 한 번 연출하는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 강마루를 바라보며 ‘당신 누구세요?’ 라고 되묻는 장면은 정말 경악스럽기까지 한 마지막 5초였어요.

또 다시 모든 것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서은기가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는 당혹스러움이 잠깐 스쳤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다시 바보가 되는 서은기로 되돌아 갈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여기에 어떤 트릭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쩌면 서은기는 서서히 기억을 찾아가고 있고, 그러면서 자신의 어떤 계획으로 인해 강마루에게마저 기억상실증에 걸린 바보 행세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요.

만약 서은기의 ‘당신 누구세요?’ 한마디가 강마루를 잠시 속이려 했던 것이었다면, 이 드라마는 이제부터 장르를 달리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착한남자의 슬픈 로맨스로 시작을 했지만, 13회 이후부터는 이런 저런 추리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스릴러물이 되어 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정말 짧고 간단했던 서은기의 ‘당신 누구세요?’라는 한 마디는 ‘착한남자’ 방송 중에서 가장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 반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연기한 문채원의 표정과 눈빛은 그 다음 이야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을 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정말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조금의 힌트도 주지 않았던 그녀의 명연기였지요. 서은기의 속을 알 수 없게 만든 문채원의 눈빛 연기! 예상을 바꾸고, 짐작을 바꾸며, 드라마의 장르까지 바꿔버린 가장 강렬했던 5초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이제 또 다른 분위기로 흥미를 유발하는 드라마 ‘착한남자’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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