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막장 드라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온갖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버무려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드라마. 시청자들은 욕을 해대면서도 왠지 모를 중독성으로 인해 계속해서 본방 사수하고 있지요. 요즘에는 일일드라마에서 그 막장의 절정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대표작으로 MBC 일일드라마 ‘그대 없인 못살아’ 그리고 SBS 일일드라마 ‘그래도 당신’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두 드라마는 현재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방극장 저녁 시간대를 점령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두 드라마에는 공통적인 막장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참으로 달갑지 않은 막장 설정인데, 그 똑같은 요소가 두 드라마 속에서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대 없인 못살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막장 드라마라기보다는 치매를 통해 가족의 삶과 애환을 그리는 홈드라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극중 치매에 걸린 장인자 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내는 김해숙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품입니다. 그녀의 혼신을 다하는 연기에 저절로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긴 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 없인 못살아’가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아주 치명적인 막장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유전자 조작이라는 설정으로 또 하나의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주인공 서인혜(박은혜)를 두고 그 유전자 조작이라는 장난질은 참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인혜라는 인물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기만 합니다. 하루아침에 아주 가여운 인생이 되어 버렸지요. 남편 김상도(조연우)와 아이를 낳고 시댁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남편이 재력 있는 사가영(황인영)이라는 여자에게 눈이 멀고 맙니다. 그리고 기어이 이혼을 요구하고 급기야 집안에서 쫓겨나기까지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죠. 한마디로 조강지처가 소박을 맞은 셈인데요.

여기서 드라마는 또 한 명의 근사한 남자를 등장시켜 가엾은 여주인공 서인혜를 어김없이 구원해 주고 맙니다. 부은행장을 맡고 있는 현태(김호진)라는 남자는 줄곧 그녀를 지켜주고 사랑해 주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요. 여느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서인혜는 자신의 형편에 대한 자격지심에 한없이 밀어내기만 하고, 또 현태는 그런 그녀를 보듬어주지 못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인데요.

여기서 막장의 하이라이트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현태의 어머니이면서 거대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민재희(정애리)가 바로 서인혜의 친모라는 설정이지요. 불쌍한 고아 출신이 알고 보니 엄청난 부를 지닌 어머니를 친모로 두었다는 설정인데요. 사실 이런 기가 막힌 출생의 비밀은 비단 이 드라마에서만 등장했던 막장 요소는 아니라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막장 요소들 중에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만큼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합니다. 막장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요소가 바로 운명 자체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출생의 비밀이니 말입니다. 대부분 고아나 가난한 집의 자녀였던 주인공이 사실은 재벌이나 부잣집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외동딸 혹은 외동아들이라는 설정인데요.

이 막장 요소는 드라마 ‘그래도 당신’에서도 똑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주인공 차순영(신은경)은 강보에 싸여져 버려진 고아 출신이었죠. 고아원을 전전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힘겨운 삶의 주인공입니다. 그녀도 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남편을 부잣집 여자에게 빼앗기고 자신의 아들도 빼앗긴 채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려졌었습니다.

그러다가 역시 그녀도 재력 있는 한 남자 강우진(송재희)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회사에 취직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되는 기회를 얻고 말죠.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지고 서로 결혼을 약속하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녀가 고아라는 신분 때문에 그들 사랑의 앞길은 막막하기만 한데요.

여기서 갑작스럽게 미스터리한 남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차순영을 자신의 딸처럼 여기게 됩니다. 거대 기업의 주주인 백화수(남경읍)라는 인물이 차순영의 친부로 등장하게 된 것이죠. 차순영 역시 그저 버려진 고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실제 신분은 엄청난 재력을 가진 아버지를 둔 기구한 운명의 여자였던 겁니다.

이들 드라마의 여주인공 상황은 거의 똑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막장 요소로 치장한 여주인공 캐릭터이지요. 여기서 문제는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주변 인물들이 꾸미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범죄 행위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 유전자 조작이야말로 막장 요소 중 가장 극악하고 무모하며 위험한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악역을 맡은 인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범죄 행위를 저지릅니다. 전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과 칫솔로 맞바꾸어 유전자 불일치라는 결과가 나오게 하기 일쑤지요. 때로는 이 사람이 친딸이라며 터무니없는 사람을 불러 앉히기도 하고, 강제로 여주인공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데요.

모든 막장 드라마에 천편일률적으로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요소 자체보다, 그것으로 인해 온갖 사기 행각을 벌이는 악역들의 꼴불견들이 문제인 듯합니다. 특히나 유전자 조작이라는 범죄 행위를 너무도 가벼이 생각하고, 그것을 드라마의 가장 극적인 하이라이트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참으로 불편하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죠.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불륜이나 불치병 이야기들은 유전자 조작에 비하면 비교적 약한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인식은 이 유전자 조작이라는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럽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대부분 막장이라고 욕을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정작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실은 불륜보다도 훨씬 사람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어이없는 설정은 바로 이 허무맹랑한 범법행위인 유전자 조작인데 말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양 방송사에서 방송하는 일일드라마에 똑같이 들어 있는 이 상황이 그저 씁쓸할 뿐입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통쾌한 쓴소리, 상쾌한 단소리 http://topicasia.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