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들 중 꽤 여러 명이 여배우라는 이름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있더군요.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간략하게 추려 보면 1989년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오현경, 선에 입상한 고현정, 1991년 선 염정아, 1992년 미 이승연, 2000년 진이었던 김사랑 그리고 2006년 진 이하늬 정도를 꼽을 수 있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연기자로 발을 내딛기 전 껄끄러운 시선을 감당하고 시작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이름표는 배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의미였지요.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지니고 있는 우월한 비주얼이 연예계 데뷔에는 보기 좋은 시금석이 되기는 했지만, 그만큼 대중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도 했으니까요.

대중이 유난히 배우로서의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자신들의 비주얼과 스펙 등만을 믿고 전혀 연기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발연기 논란이 있는 연기자들을 보면 그들의 이력에는 꼭 미스코리아 출신이었다는 점이 나타나기 일쑤였는데요.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들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이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의 선입견과 또 미스코리아라는 멍에 아닌 멍에를, 뛰어난 연기로 극복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오현경을 비롯해 고현정, 염정아, 이승연, 김사랑, 이하늬는 이제 미스코리아 보다는 연기자라는 수식어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이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한데요.

요즘 들어서는 ‘내 사랑 나비부인’의 염정아가 주목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작품이야말로 염정아에게 딱 들어맞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요. 극중에서 염정아가 연기하는 남나비라는 캐릭터는 한참 미모의 여배우로 인기를 누리다가 여러 가지 구설수로 은퇴하고 미국 명문대 출신의 디벨로퍼와 결혼을 한 된장녀 이미지 가득한 미씨 연예인인데요. 배우 염정아가 지니고 있는 이미지와 그렇게 큰 상이함을 보이지 않는 캐릭터인 듯했습니다.

염정아가 지니고 있는 비주얼의 느낌은 도시적인 시크함입니다. 실제로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지만, 아직까지 그녀에게는 미혼 여성이 지니고 있는 깐깐함과 도도한 매력이 남아 있지요.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날렵한 외모 또한, 친화적이기보다는 쉽게 다가가기에는 조금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남나비라는 캐릭터는 잘 매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잘 가꾼 몸매 덕에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은퇴한 여배우 캐릭터를 너무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는 그녀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내 사랑 나비부인’은 염정아라는 배우를 이미 염두에 두고 기획을 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여기에 염정아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인 허당 이미지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은 남나비입니다. ‘내 사랑 나비부인’에서의 남나비 역시 겉으로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않은 도도한 이미지이지만, 한 남자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라든지, 철부지 엄마를 언제나 품에 안는 성품이라든지, 의심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순박함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내재되어 있는 그런 캐릭터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내 사랑 나비부인’을 시청할 때마다 남나비 역할에는 염정아가 딱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녀의 전작이었던 ‘로열 패밀리’에서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작품에서는 염정아에게 내재된 끼와 재능이 100% 발휘되진 못한 것 같아 아쉬웠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내 사랑 나비부인’에서의 염정아는 코믹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하고, 진지한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팔색조의 매력을 거침없이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녀는 그저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 출신치고는 꽤 연기를 잘한다’라는 말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기존 중견 연기자들도 하기 어렵다는 갑작스런 상황 변화와 감정 변화의 연기를 너무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녀이지요. 그녀에게 명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한데요.

사실 여배우들의 망가지는 연기는 수차례 봐왔고, 또 ‘놀라운 연기 변신’이라는 말로 여러 번 칭찬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예쁜 미모의 여배우들이 그랬다면 한 번 더 손을 들어 주기도 했구요. 남나비로 분한 염정아 역시 이 작품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망가지는 연기를 선보이는 중인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염정아의 연기를 높이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가 명배우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이젠 웬만한 여배우들도 제법 잘한다는 망가지는 미학이 아니라, 코믹한 설정에서 바로 진지 모드로 돌입하는 상황, 처절한 장면에서 바로 코믹의 순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하는 상황을 너무도 매끄럽게 이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한참 어린 후배 여배우에게 물벼락을 맞아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 서러운 눈물을 흘리다가도, 이우재(박용우)의 전화 한 통에 어리바리 남나비로 되돌아가는 장면, 남편 로이킴(김성수)에 대한 그리움에 절절한 눈물을 흘리다가도, 형사의 전화 한 통에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장면 등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녀가 짓는 표정 하나하나, 눈물 하나하나에 딱 들어맞는 감정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코믹 연기를 선보일 때는 이런 푼수가 없는 듯하다가도, 분위기를 잡고 눈물 연기를 선보일 때면 어느 순간 같이 눈시울이 붉어지게 되지요. 남나비라는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저 단순한 가벼움뿐인데도, 염정아는 100% 이상의 몰입도를 보이며 남나비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캐릭터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남나비가 시댁으로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롭게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남나비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는 팔색조 연기의 날개를 단 염정아에게 더욱 기대하게 되지요. 이제 미스코리아치고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말은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합니다. 당당히 명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여져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배우 염정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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