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네이버>가 네티즌의 신상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경찰에 무단으로 제공했다가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4부(재판장 김상준 판사)는 18일 <네이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권을 침해했다며 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네이버>는 2010년 이른바 ‘회피연아’ 동영상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했다가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당한 네티즌 차 아무개 씨의 신상정보를 경찰에 무단 제공한 바 있다.

해당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네이버>가 전기통신사업법 82조 3항에 따라 법적 의무를 이행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 참여연대는 2010년 7월 "민간인 사찰을 가능케하는 '통신자료제공' 제도에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박주민 민변 변호사, 네티즌 차경윤씨 ⓒ미디어스

차 씨와 함께 소송을 제기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는 19일 논평을 내어 “이번 판결로 인해 포털 등 인터넷사업자들이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이용자들 동의 없이 신상정보를 제공해온 관행을 바로잡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인터넷사업자들의 통신자료 무단제공이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따라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에 넘긴 가입자 인적사항은 문서 65만 건, 전화번호 580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사업자가 기계적으로 따르는 관행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 뿐 아니라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미네르바 박대성 씨와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 역시 전기통신사업법 제 83조3항에 따라 신상정보가 경찰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문제는 ‘회피연아’ 동영상 사건과 같이 수사를 받기 전까지는 네티즌들이 자신의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법조문상으로 수사기관의 요청에 강제가 아닌 사업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며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3항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가입자 신상정보 등 통신자료 제공이 법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통신자료제공 기준 가이드라인 마련·발표할 것”

판결 직후, 네이버는 “인터넷기업협회 차원에서 통신자료제공이 엄격한 기준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며 “빠른 시일 내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수사기관의 관행적인 대규모 자료 제공 요청은 사업자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이며 개선돼야 할 문제”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영장주의에 입각한 보다 제한적이고 분명한 입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판결은) 국가기관에 의한 정보제공 요청이 갖는 사실상의 강제력을 도외시한 면이 없지 않다”며 “실제 수사기관의 요청에 대해 사업자가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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