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희(박시연)는 강마루(송중기)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강마루 스스로 알지 못하는 밑바닥의 내면까지도 말이지요. 두 사람이 일본에서 마주했을 때 강마루에게 다시 돌아가겠다던 한재희의 고백에 차갑게 냉소하며 돌아섰던 강마루지만, 물속에 뛰어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 수밖에 없었듯, 강마루에게 한재희는 벗어날 수 없는 애증의 운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매번 그녀를 증오하는 듯하지만, 증오와 애정은 칼의 양날처럼 매섭게 강마루의 운명을 옭아매고 있는 셈이지요.
자신 때문에 모든 걸 잃었던 강마루에게 '여자들을 유혹해 더러운 돈을 번다'고 비아냥거리던 한재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누명도 떠넘기기도 했고, 자신을 협박했다며 고소하기도 했으며 폭력배를 동원해 협박하기도 하는 등 악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강마루의 마음은 한재희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런 마음을 극복해냈습니다. 십여 년을 간직했던 순정, 마음 깊숙한 곳에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질기고 모진 순정을 드디어 버렸지요. 서회장이 안변호사와 자신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아챘다는 걸 알게 된 한재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지요. 그토록 갈망했던 욕망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그녀의 운명은 바닥으로 치닫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자 그녀는 언제나처럼 강마루를 찾습니다. 강마루와 자신에 얽힌 트라우마인, 자신의 오빠를 빙자하여 말이지요.
돈을 부치라는 어이없는 재식의 요구를 듣다가 그가 지금 부산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강마루는 이제 한재희의 위선에 비로소 진저리치게 됩니다. 코앞의 오빠에게 당할 것 같다던 호소도 결국 연출이었음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런 강마루에게 한재희는 잘못했다며 애원하지만 그 순간 강마루는 한재희에 대한 순정을 극복해 버리지요. '누난 날 너무 잘 알아요. 내가 나를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마루를 잘 알아. 나도 헷갈렸던 날, 나도 믿고 싶지 않았던 날, 나도 부인하고 싶었던 날... 누난 마치 내 안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처럼... 소름이 끼칠 만큼 잘 알고 있어요. 그쵸.‘
'한재희씨가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가는 길의 끝이 지옥이든 파멸이든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는 강마루. 더 이상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한재희씨라고 부르는 순간 이 지긋지긋한 순정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서은기 때문이냐며 따져 묻는 한재희에게 서은기를 끌어들인 걸 후회하고 있다는 강마루의 한마디는 그가 한재희를 넘어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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