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삼성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닙니까.’

최근 트위터 상에서 ‘이상호 기자의 책이 한겨레 지면광고에 실리는 것을 거부당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저는 요즘 이런 질문 공세에 시달렸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겨레 쪽에서도 다소 부적절한 방식의 접근을 출판사 쪽에 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 한겨레신문사 사옥 ⓒ한겨레
제가 좀 사정을 알아본 결과는 이렇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상호 기자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 쪽과 저희 한겨레 광고부서와의 견해 차이였습니다. 출판사 쪽은 지난 7월31일 한겨레에 “광고를 실을 수 있겠냐”고 문의했고 한겨레는 “신문에 꼭 광고를 싣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은 광고단가 협상이 진행됐겠지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출판사 쪽에서는 가급적 낮은 단가로 광고 싣기를 원했고, 한겨레 쪽에서는 가급적 높은 단가로 광고를 싣기를 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 쪽에서는 기준 광고단가를 알려주며, 제가 볼 때는 다소 부적절한, 광고업계의 관행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출판광고 중 정치적인 책, 사회적으로 첨예한 쟁점, 이슈가 있고, (갈등) 상대가 있는 책은 일반출판기준가보다 2배 기준가에서 협상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이 표현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한겨레가 삼성 문제를 다룬 책의 광고를 거부하려고 일반 책보다 2배의 광고료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그리고 제가 추측컨대, 출판사 쪽도 이렇게 들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출판사 쪽은 고민 끝에 한겨레에 광고 싣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겨레가 광고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출판사 스스로 포기한 것이죠.

그러나 ‘한겨레가 삼성 관련 책 광고를 거부한다’는 것은 분명한 오해입니다. 저건 광고업계의 일관된 관행이라고 합니다. 한겨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으로 예민한 광고에 적용되는 협상관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조현오 전 경찰청장 같은 분의 책 광고에도 똑같은 관행이 적용됩니다. 일종의 ‘리스크(위험) 비용’입니다.

광고에 나오는 모든 표현에 대한 법적 책임은 사실 광고를 한 주체 뿐 아니라 광고를 실은 매체도 함께 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 쪽에서는 ‘리스크 비용’을 요구하게 되는 것인데요. 그래서 일반 출판기준보다 ‘2배가 기준’을 먼저 요구한다고 합니다. 물론, 협상 과정에서 이 2배 기준은 점점 허물어져서 대체로는 다른 광고단가와 비슷하게 맞춰진다고 합니다.

▲ 이상호 기자의 책
저는 이런 광고업계의 관행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리스크 비용’에 대한 취지도 이해하지만 자칫 ‘사회적으로 예민한 책을 광고할 때는 비싼 광고비를 염두에 둬야 하는 건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책을 내기까지에도 용기가 필요한데 하물며 언론사가 저자의 고민을 덜어주기는 커녕 부담을 주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겨레 광고국에 고민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리스크 비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겨레가 재벌의 눈치본다”고 섣불리 주장하는 것도 너무 성급한 주장입니다. 만약 한겨레가 조현오의 자서전 광고에 ‘리스크 비용’을 요구했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요. 국민의 눈치를 본 걸까요. 아닙니다. 그건 그냥 광고업계의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관행일 뿐입니다.

이상호 기자 책을 출판한 출판사 쪽과 한겨레가 제시한 광고 단가에는 최종적으로 300여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300만원을 두고 ‘한겨레가 광고를 거부하려고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은 다소 억지입니다. 수십만 부가 발행되는 한겨레에 싣는 광고인데, 300여만원은 출판사에게 그렇게 감당못 할 만큼 버거운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이상호 기자 책 광고와 관련한 양쪽의 갈등은 정리가 잘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광고단가를 출판사 쪽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주었고, 대신 ‘리스크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출판사 쪽이 광고 문구를 조절하는 식으로 합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필요 이상의 논쟁은 안하는 게 좋겠단 생각입니다.

저는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참 많은 분들이 한겨레에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겨레마저 무너지면 표현의 자유 자체가 위축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를 많은 분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책임감도 더욱 느끼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겨레가 여러분의 기대에 잘 부응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론으로서의 정도를 걷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한겨레를 내부에서 6년 동안 지켜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외부의 압력으로 기사를 삭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끔씩 내부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만 대체로는 문제가 잘 소명되고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러면서 한겨레 노동조합이 내부 감시의 끈이 허술해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고삐를 죄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회사 쪽도 반성할 건 반성하면서 체제를 정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삼성과 관련해 온갖 비판적인 트위터 글을 남깁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대표이사나 기타 부장 선배들에게 질책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삼성의 노조탄압과 백혈병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쓸 때도, 단 한 번도 데스크가 기사를 누락시키거나 저를 꾸짖은 적 없었습니다. ‘삼성 백혈병 노동자’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한 공로로 2010년에는 사내 포상도 받았습니다. 며칠 전 삼성의 구조적 문제를 잘 보도한 <한겨레21> 동료들도 사내 포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한겨레는 이런 곳입니다. 제가 박봉의 월급을 받아가면서 버티는 이유이지요.

한겨레를 계속 걱정해주십시오. 감시해주십시오. 저희 기자들도 내부에서 두 눈 홉뜨고 한겨레가 정론직필의 길을 걷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겨레가 권력과 자본 앞에 허리를 굽히는 그 순간, 여러분에게 고발하겠습니다. 저는 그게 언론인이 걸어야 할 ‘정도’라고 한겨레에서 배웠습니다.

#덧붙임.

이 글이 보도된 뒤 동아시아 출판사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300여만원 광고단가 차이는 사실이 아니고, 한겨레와 출판사 쪽의 최종 협상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소 와전된 내용이 전해져서 출판사 쪽에서 많이 속상하다고 전해왔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양쪽의 입장에 분명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좀 더 파헤치자고 마음 먹으면 분명 진실을 밝힐 수 있겠으나, 제 생각에는 이 정도 선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얘기는 마무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출판사 쪽도 한겨레가 잘 되기를 응원하고 있고, 한겨레도 이상호 기자의 책이 많이 팔리기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겨레 디지털뉴스부 기획취재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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