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인 문재인 의원의 지지모임인 ‘담쟁이 포럼’은 21일 성공회 서울주교 대성당에서 장하준 캠브리지대학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의 저서를 통해 명성을 쌓은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로 대중적 지지가 높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 민주화’가 주된 시대적 요구로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경제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장 교수의 책들은 정책결정권자들의 필독서로 각광받고 있다.

이날 강연회에는 문재인 캠프에 관여 중인 관계자들은 물론 참여정부 인사, 전현직 국회의원과 기관장,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한 장 교수 역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과 복지를 둘러싼 현안을 설명하고 비판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했다.

▲ 21일 오후 정동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열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의 강연에 참석한 문재인 의원과 장하준 교수의 모습ⓒ연합뉴스

'민주당, 책임 인정하는 자세 보여야'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 논의에 앞서 주최 측을 의식한 듯 “한국이 OECD 최고의 자살률과 자영업 비율을 갖게 된 데에는 시장의 자유화와 금융 개방화 노선을 택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복지 지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계층 간의 이동이 어려운 경제적 구조를 갖게 된 점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책임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주요 유럽 국가의 현황과 한국의 상황, OECD국가들의 평균을 비교하며 복지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장 교수는 “GDP 대비 10% 수준의 한국의 복지 수준은 OECD 국가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인 멕시코 보단 조금 높지만 미국의 절반, 스웨덴의 1/3수준으로 OECD 평균 복지에는 갈 길이 멀다”며 “복지 수준이 낮으면 계층 간 이동이 어렵고, 계급 구조가 고착된다”고 강조했다.

복지는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

복지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인 ‘복지=반성장’ 논란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시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복지가 잘 되어있으면 구조 조정이 더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고 성장률도 높일 수 있다”며 “성장을 위해 반드시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장 교수는 “복지는 공동구매와 같은 것으로 사기업에 맡겨 놓으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을 세금을 통해 공동으로 싸게 구매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복지와 계층 고착의 상관에 대해 “과거, 기회의 땅이라고 불렸던 미국은 복지 비중이 낮기 때문에 계층 이동이 어려워 계급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반면 스웨덴 등 복지 비중이 높은 국가는 상대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계층적 상관관계가 낮아 기회 실현이 이뤄지고 있다”며 “미국의 자동차 노조들이 조합원의 이익에 목숨을 걸고 싸우며 쟁의를 벌이는 이유 역시 미비한 복지 제도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경우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장하준 교수의 강연모습 ⓒ 연합뉴스

핵심은 시민권에 기초해야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경제민주화’ 관련해 장 교수는 가감 없는 의견을 표명했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 민주화 문제를 이미 거론했던 바 있는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 국가”라고 규정한 뒤 “기본적으로 1원 1표의 원리에 의해 작동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논리를 민주주의의 논리인 ‘1인 1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장 교수가 규정하는 경제민주화의 수준은 ‘주주자본주의’로 대표되는 ‘1원 1표’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장 교수는 “‘1원 1표’의 주주자본주의는 상식적인 것일 뿐”이라며 “이 정도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을 진전시키지 못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추진 과제로 ‘자본 거래세 도입’,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 등을 포함한 ‘자본 시장의 통제’와 기업 경영에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등을 꼽았다.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 사민당의 구호 가운데 ‘생활이 안정된 사람이 더 모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만 도와주는 ‘잔여적 복지’가 아닌 시민권에 바탕 한 ‘보편적 복지’가 실현될 때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적 창발성이 높아질 수 있단 선언적 구호이다.

장 교수는 “우파들의 주장대로 가난한 사람만 도와주는 복지 정책을 펼칠 경우 중산층의 반발로 복지 문제의 정치적 지속성이 떨어지고, 이는 복지의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복지 비중이 낮은 국가의 국민은 필연적으로 보수화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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