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12월 대선에서 차기 정부기구 개편 논의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ICT 컨트롤 타워”, “ICT 통합 거버넌스” 등을 표방하며 방송통신위원회를 옛 정보통신부 체계로 확대 재개편하려는 논의를 여·야 대선후보캠프에서 정책 공약화하면서 현실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언론·시민사회는 매체와 콘텐츠 규제는 정치적인 독립성이 절실한 만큼 합의제 위원회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부활에 불을 지핀 인물은 이병기 전 방통위 상임위원(서울대 교수)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캠프의 방송통신정책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는 이병기 전 상임위원은 지난해부터 “ICT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며 ‘정보통신부 부활’을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이병기 전 위원의 주장은 지난 2월 “정통부 부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박근혜 의원의 의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민주당 역시 정통부 부활에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자인 손학규 후보 측은 최근 “정보통신부가 부활해야 한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손학규 후보의 ‘정통부 부활론’은 민주당의 당론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손학규 후보는 당대표를 하던 지난해 8월 ‘민주당 IT 정책수립을 위한 10대 이슈 토론회’에서 “하드웨어 산업에만 치중하다가 최근 소프트웨어 관련 위기가 닥치자 허둥지둥대고 있는 양상”이라며 “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폐지로 IT 국가발전의 틀이 무너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손학규 당대표 체제가 아니었던 때에도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의 정보통신부를 거론하며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를 비판해 왔다.

한명숙 당대표 체제였던 지난 2월 최고위원회에서 문성근 당시 최고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출범할 때 정부조직을 민주정부 10년을 부정하는 요소, 위인설관의 요소로 정부조직을 개편했다”면서 “그때 사라진 정통부, 과기부, 해양수산부는 반드시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16일 이용섭 정책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동안 R&D(연구개발) 부분의 퇴조를 지적하며 “과학기술부, 정통부가 폐지돼서 과학 기술인들의 사기를 꺾어놓고 과학기술 지표가 날로 추락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방통위와 지식경제부로 나눠 해체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먹여 살릴 부처를 폐지한다니, 그 사고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말은 프레시안 ‘김대중 평전’에 실리면서 유명해졌다.

18대 국회의원 가운데 이용경 전 창조한국당 의원만이 정통부 부활론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용경 전 의원은 “과거 정보통신부로 돌아가면 좋은 곳은 통신재벌들 밖에 없다”면서 “통신정책을 (위원회 체계로)국민들에게 개방한 것은 중요한 진보”라고 강조했다.

옛 방송위 확대 개편 목소리도

정보통신부 부활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큰 의견 차를 보이지 않지만 언론·시민사회는 고개를 젓고 있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구성한 미디어네트워크 정책보고서에서 “(현행)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독립과 정치적 중립성, 정책 집행의 효율, 효과성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조직”이라며 “방통위가 그렇지 못한 것은 결국 시스템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채수현 위원은 정보통신부분과 합의제 방송위원회로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방송, 융합형방송서비스, 정보통신망을 통해 송·수신하는 정보사회서비스(인터넷 포탈, SNS 등)와 관련한 콘텐츠 진흥에 관한 사항 등은 합의제 위원회 체계를 유지하고 기간통신산업, ISP, 기계 관련 ICT 산업는 별도의 독임제 부처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는 방안이다.

이러한 기구 개편안은 ‘통합 ICT 콘트롤 타워’, ‘매체부터 통신까지 규제와 진흥을 모두 포괄하는 거대 정부 부처’를 그리는 정치권의 생각과 차이가 크다. 현행 방통위에서 방송, 매체, 콘텐츠를 강화해 옛 방송위원회와 같은 합의제 행정기구를 구성하는 한편, 네트워크, 단말기 등 산업적, 행정적 규제가 필요한 측면을 정부 부처로 분리하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네트워크에서 관련 논의를 함께 수행한 박석철 언론학 박사는 “새 정부의 기구개편은 원칙적으로 역무를 구분하고 매체나 콘텐츠와 같이 규제와 진흥에 있어 정치적인 독립이 필요한 측면은 합의제 위원회로, 행정적 규제가 필요한 측면은 독임제 행정기구로 나눠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밝혔다.

박석철 박사는 “기구개편 논의는 대선이 끝난 후 내년 1월 정점에 이를 것”이라며 “이때까지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거대 정통부 부활, 누가 원하는가?

과거 ‘전자정부’부터 ‘방송 주파수 할당,’ 포털 규제와 같은 콘텐츠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관여했던 거대 정부조직으로서의 정통부 부활을 주장하고 있는 곳은 거대 통신사들이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정통부 부활을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곳은 통신사일 것”이라며 “과거 장관을 필두로 한 수직적 정부조직만 상대하면 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위원회 체계가 되면서 장관 같은 (상임)위원들이 5명이나 생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관계자는 “과거 정통부 시절은 관련 과장들이 직접 정책을 입안하고 장관의 결재만으로 각종 규제가 바뀌던 때”라며 “정통부 출신들 가운데는 정통부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사 관계자는 “아직도 스마트TV가 도입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관련 규제조항조차 없고 행정적인 지도 역시 없다”며 “방통위가 되면서 기본료 1,000원 인하 같은 포퓰리즘 정책들과 빠른 정책적인 판단의 실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정통부 때가 정책적 소통이 매끄러웠던 것 같다”면서 “통신정책에 있어서는 통합된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이 절실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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