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로 대선이 딱 4개월 남았다. 하지만 대선 정국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번 대선의 경우 이른바 ‘2013년 체제’로의 전환과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진전’의 계기라는 점에서 87년 이후 가장 중요한 대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선을 맞는 민주진보진영의 분위기는 활발하지 않다.

민주통합당이 대선 후보 경선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론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예상 밖의 4.11 총선 패배는 민주진보진영의 분위기를 현격하게 위축시켰다. 이어 통합진보당 사태가 이어졌다. 어찌됐건 새누리당이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데 반해, 야권은 지리멸렬의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안철수 원장 문제다. 박근혜 후보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한 그는 아직까지 출마 여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안 교수의 이러한 태도는 민주진보진영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사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20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 3단체가 마련한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과정, 이래도 좋은가?’ 집담회의 문제의식이다. ‘안철수 문제를 중심으로’ 향후 대선 과정을 구성해보자는 것이다.

▲ 20일 민교협 등 교수 3단체는 '제18대 대선, 이대로 좋은가?' 집담회를 개최하고,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집중 논의했다.ⓒ미디어스

안철수 현상, 이해하되 문제 처방은 아니다?

▲ 발제를 맡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연합뉴스
발제를 맡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18대 대선 과정을 짚으며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면서도 문제 처방으로 혼동하지 않는 태도로 민주진보진영이 안철수 마법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대선을 4개월 앞둔 8월 20일을 기점으로 향후 대선 과정을 세 과정으로 나누었다. 제 1과정은 여야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기간으로 ‘8월 20일부터 민주당 경선이 마무리되는 9월 23일(결선 투표까지 갈 경우)까지의 약 1달’이다.

이어 제 2과정은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정당 후보 결정 이후 대선 후보자 등록이 이뤄지는 11월 25일까지 약 2달’이다. 마지막 제 3과정은 ‘후보자 등록 이후 최종적인 투표일까지의 약 25일’이다.

정 교수는 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제 2과정이며 세 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제 2과정에서 안 교수의 선택이 ‘민주통합당 후보 사이의 단일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대선 출마 포기(박원순 시장 지지 방식)’, ‘야권단일화 실패 후 3자 구도 대선’ 등으로 나뉠 수 있다고 상정했다. 정 교수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결국 야권 단일후보로 안철수 교수가 결정되고 안철수 단일 후보가 시민후보 또는 국민후보로 대선에 나설 경우”라고 지적했다.

급진적 무정당주의와 무책임한 처사 사이에?

정 교수는 제 2과정의 경우, “민주당 내에 국민후보 안철수를 지지하는 세력과 민주당 후보로서 안철수를 주장하는 세력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교수는 “민주당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입당을 강하게 요구하겠지만 안 교수가 이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안 원장에게 민주당 입당은)출마 명분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지율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는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안철수를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마법, 즉 ‘안철수의 마법’에 걸려있는 것은 아닌가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며 “안철수 현상이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과 정치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안적인 정당 및 정당 체계를 만들어내는 상황으로 극복돼야 한다”며 “정치적 메시아를 자처하는 한 개인의 문제가 될 순 없다. 시민정치의 이름을 빌어 정당과 정당체제 자체를 약화시키고 붕괴시키는 일종의 무정당주의는 무책임한 처사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철수, 민주당 입당해야

토론에 나선 최태욱 한림대 교수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였다. 최 교수는 “안철수는 박근혜에 대적할 유일한 그리고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대통령 후보로 주목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조속히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옳은 생각과 이를 정치 현장에서 실천하는 능력은 별개의 것”이라면서 “민주당은 결국 자당 후보를 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설령, 안 교수가 단일 후보가 되더라도 상당한 우여곡절과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정 교수의 분석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최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표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이는 회고적 투표를 통해 집권여당을 심판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전제한 뒤, “안 원장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이 맞으며 안 교수의 생각과 민주당의 강령은 ‘진보적 자유주의’ 입장에서 거의 같다”고 밝혔다.

안철수 현상이 이상하면 박근혜 대세론은

하지만 반론도 있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한국 정치는 비정상 자체가 상용화되어 있다”며 “군사 독재를 하다가 심복의 흉탄에 사망한 독재자의 딸이 여당의 후보로 출마하는 것과 중소기업가 출신의 젊은 교수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 가운데 뭐가 더 비정상적이냐”고 물었다.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현상 가운데 무엇이 더 이상한 것이냐는 질문이다.

정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책임은 안 교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황을 이렇게 만든 민주당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묻고 그 다음에 안 교수 이야기를 해야 순서가 맞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선거는 임박할수록 지지율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된다. 안철수는 이번 대선의 종결자가 될 것”이라며 “민주당 후보와 안 교수 사이에 지지율 격차가 상당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후보를 내느냐, 마느냐는 극히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고, 창조적인 판단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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