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방통위의 노선이 대략적으로 읽힌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명박 정부에 '불리한 여론 통제'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월권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정파적 운영'.

이 세 가지는 분리된 사안이 아니라 서로 연계돼 있다. 그래서 더욱 문제다. 먼저 이명박 정부에 불리한 여론 통제를 한번 보자. 이건 지난 6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직접 언급한 내용인데 다음과 같다.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언론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쇠고기 협상의 경우 언론홍보나 대응에 미흡했다. 방송심의위원회가 최근에야 구성돼서 앞으로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후심의가 아닌 사전에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 5월 13일 오후 2시 속개된 국회 문광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방통위원들 ⓒ정영은
최 위원장의 이 발언은 한미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방송사의 뉴스·프로그램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이다. 최근 구성된 방송심의위원회를 통해 언론보도에 잘 '대처'하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시중 위원장의 '방송 탄압론' 눈 뜨고 지켜보는 방송사들

그런데 방송심의위원회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 언론보도 콘텐츠 심의 영역은 방통위 소관이 아니다. 그러니까 최 위원장의 지난 6일 발언은 '월권을 해서라도 이명박 정부에 불리한 여론은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문제는 최 위원장과 방통위의 이 같은 '월권'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이른바 '바비큐 파티'가 대표적이다. 이날 모임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전직 언론인들을 부른 자리. 최 위원장의 참석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방통위원장으로써 신중치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6일 국무회의 참석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방통위의 업무·책임 등을 규정한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6조를 보면 방통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 지도 논란이지만, 더 주목해서 들여다봐야 할 건 그가 쇠고기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 '내뱉은' 발언. 이미 언급했지만 이 발언은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를 전제한 상태에서 행한 발언이다.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9조를 보면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방통위원은 정치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결국 최 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종합하면 '불리한 여론'은 월권을 해서라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인데, 그의 행보를 우려스럽게 지켜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지난 10일 국회 문광위에 제출한 방통위의 회의 불참석 통보 공문 ⓒ정영은 기자.
그런 점에서 지난 13일 국회에서 벌어진 '상황'은 최 위원장의 월권이 도를 지나치게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0일 팩스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불참을 통보했는데, 13일 오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계의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국회법에 의거해 '방통위원장 및 상임위원 출석요구의 건'이 의결되자 이날 오후 2시 모습을 드러냈다. 소관 상임위 배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그가 밝힌 불참 통보 이유였다.

최시중 위원장의 도를 넘어선 '행보'…방송사들 일제히 침묵

국회가 판단해야 할 소관 상임위를 방통위가 맘대로 해석해 불참을 통보한 것도 '웃기는 행태'지만, 송도균 방통위 부위원장 선임과 관련한 방통위의 '해석'은 사실상 코미디에 가깝다. 원래 방통위 부위원장은 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대통령이 속하지 않은 정당이 담당하도록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다.

송도균 부위원장 임명은 이 합의를 깬 것인데, 이를 야당이 지난 13일 국회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문제 삼으며 3월 26일자 부위원장 선임 관련 회의록을 즉각 제출할 것을 요구하자 최 위원장은 방통위 자체 규칙을 인용한 다음 "열람만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제출을 거부한 셈인데 방통위의 자체 규칙이 국회법이나 방통위 설치법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건가. 이를 모를 리 없는 최 위원장의 행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불리한 여론'은 '초법적인 월권'을 해서라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시민단체에만 기댈 것인가

그런데 이런 '엄중한 상황'임에도 방송사들은 '제 밥그릇' 하나도 챙기질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3일 지상파 방송 3사 가운데 최 위원장의 '도를 넘어서는 행태'를 언급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SBS의 경우 송도균 부위원장이 자사 사장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한 '침묵'이라고 나름(?) 이해할 거시기라도 있는데, KBS와 MBC의 침묵은 이해할 뭐가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적 균형'이 상실되면 가장 타격을 받는 건 어디일까. KBS와 MBC다. 하지만 이들 방송사들의 화면에선 이런 위기감이 감지되질 않는다. '밥그릇 지키기'에 공영적인 원칙과 기준이 있다면 그건 존중받아야 할 입장이지 '나쁜 일'이 아니다. KBS와 MBC 종사자들이여,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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