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일 오후 서울대학교 대학본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4-11 총선 이후에도 정치권은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준다. 그 까닭인지 대중은 여전히 안철수를 갈망한다. 그가 그 사실을 잘 아는 모양이다. 대통령 선거를 150여일 앞둔 시점에서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책을 내놓았다. 부제를 보니 그가 대권의 꿈을 향해 성큼 다가섰음을 말해준다.

‘무릅팍 도사’가 그를 단박에 대통령감으로 만들었다. 그가 TV 오락프로그램의 위력을 잘 아는 지 출판에 이어 ‘힐링 캠프’에 출연했다. 그는 출마를 묻는 말에 국민의 판단을 받고 싶다는 말로 여전히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행간을 보면 여야의 경선 끝난 다음 장내가 정리되면 등판할 게 점쳐진다.

그가 간접화법을 통해 일방향(一方向)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나 대중의 열광은 식을 줄 모른다. 정치혐오감(political apathy)이 연출한 증후군으로 이해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언론이 유명인의 언행을 크게 다루고 대중은 그 유명인을 열광하도록 만드는 인기언론(celebrity journalism)이 낳은 현상이기도 하다.

그의 ‘스타탄생’ 뒤에는 언론과 대중의 속성을 잘 다루는 솜씨가 있는 것 같다. 그는 미디어정치(mediacracy)를 심분 이용하며 고공행진을 즐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인기만 믿고 국민을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가 선택의 시점을 정밀하게 계산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이다. 고매한 인품과 학식만으로는 맡을 수 없는 자리다. 그가 책을 통해 국정에 대해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철학이나 소신이 묻어나지 않는다. 겨울철 나목의 앙상한 가지만 보는 느낌이다.

모든 국가정책은 그 방향에 따라 국민 사이에 이해가 엇갈린다. 때로는 갈등과 반목으로 이어진다.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그가 대통령으로서 위기관리능력, 이해조정력이 있는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결단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의회정치는 정당정치다. 소속정당이 없이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큰 의문이다. 김영삼의 입장에서 3당합당은 집권전략이지만 소수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집권당인 민정당의 입장에서는 여소야대의 의석분포를 깨는 선택이었다.

DJP연합도 김대중의 집권전략이다. 이 역시 김종필의 힘을 빌려 안정의석을 확보하려는 고육책이었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의도 소수당의 한계를 넘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 까닭에 그가 위험한 정치적 주사위를 던졌다.

정가에 나도는 관측은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면 그와 단일화 과정을 거쳐 출마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정치행태를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낀 무당파가 다수일 텐데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숙제가 따른다.

민주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지사 후보,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그 까닭에 민주통합당을 불임정당이라고 부른다. 대통령 후보까지 공천하지 못한다면 정체성 논란이 따를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고 당선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란 최대의 권력이 발산하는 자력이 정계개편을 이끌어내 집권당을 창당한다는 구상을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치불안은 걷잡을 수 없다.

미국은 양당체제가 확립되어 모든 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자대결로 이뤄진다. 그런데 1992년에는 3자대결이 이뤄졌다. 공화당의 부시, 민주당의 클린턴에 이어 무소속의 로스 페로가 혜성같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100대 부자에 끼는 거부였다.

그는 미국의 재건을 주창하며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주의를 표방했다. 당시 언론은 ‘페로 돌풍’이란 말로 그의 선풍적인 인기를 표현했다. 한 때 지지율이 페로 39%, 부시 31%, 클린턴 25%로 그가 압도적 우위를 자랑했다. TV토론을 거치면서 국정전반에 대한 궁색한 논리가 그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더니 결국 낙선했다.

국정을 책임지려면 국민에게 그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1년 넘게 1~2위를 달리는 그의 지지율이 그가 말한 국민의 판단이 아니고 다른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많은 국민이 이 나라에 변화를 일구어낼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지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접화법이 전하는 그의 허상과 실상을 가리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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