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고도 말이 되지 않고, 기적이라고 하기에도 잘 믿어지지 않는 일이 런던에서 벌어졌다.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고, 누구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 런던 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벌어진 것이다. 안타깝게도 펜싱이 가장 먼저 전해준 소식은 슬프고도 분노할 일이었다. 여자 펜싱 에뻬 준결승전에서 어처구니없는 1초 오심으로 인해 신아람 선수의 메달을 훔쳐간 사건이다. 전 국민이 분노했고, 그녀의 눈물에 함께 울었다.

그때까지 몇 개의 동메달이 나오긴 했지만 신아람 1초 사건으로 인해 쉽게 축하하거나, 기뻐하기 저어됐다. 그렇지만 신아람이 겪은 좌절과 분노에 미안하지만 그 감정을 잠시 보류해야 할 일이 벌어졌다. 여자 펜싱 사브르에서 김지연이 드라마 같은 준결승의 대역전을 보이며 결승에 당당히 올라 러시아를 상대로 겨뤄 일방적인 경기 끝에 금메달을 따냈다.

신아람 사건이 정말 무거운 의미이기는 하지만 금메달을 딴 선수의 그 밝은 환호를 외면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금메달리스트 김지연은 동료 신아람을 잊지 않았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신아람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미친 듯이 했다는 말을 했다.

김지연의 금메달은 신아람에게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음을 완곡하게 증명하는 일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오심도 모자라 국제펜싱연맹은 피스트에서 항의하고 있는 신아람에게 탈락시키겠다는 협박을 가했고, 심신이 탈진한 상태의 신아람을 그대로 3.4위전으로 몰아세웠다. 신이라도 그 상황에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며, 무엇보다 이미 오심으로 상처받은 선수이기에 의욕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기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경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 펜싱 에페 3.4위전은 분명 국제펜싱연맹의 폭력이었다. 또한 그런 펜싱연맹의 오심과 폭력을 방치한 IOC 또한 같은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이 모든 상황에 한국 IOC가 보인 실망스러운 대처는 언급조차 하기 싫은 모습이다. 신아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보다는 자신들 체면을 차리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선수가 아닌 회장을 위한 IOC의 위상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그런데 김지연의 금메달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시작했다. 남현희 말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전희숙, 정길옥, 오하나 등의 선수들로 구성된 여자 펜싱 플뢰레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다. 개인적과 단체전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 특정 한 선수만 잘 해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유일한 스타 선수 남현희보다 오히려 다른 선수들이 더 분발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시작이었다. 신아람 사건 3일째에 벌어진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도 따냈다. 구본길, 원우영, 김정환, 오은석 등으로 구성된 한국팀은 8강전부터 거의 완승으로 독일,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고, 결승상대 루마니아에게는 일방적인 공세를 퍼부은 끝에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여기까지는 분명 기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잇따른 단체전이 전해주는 낭보로 어느 정도 신아람 오심에 대한 분노가 삭혀지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더 화나는 것은 바로 다음날 여자 에뻬 단체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아람이 속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전의 여파가 없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플뢰레가 따고, 사브르가 땄다고 에뻬가 꼭 메달을 딸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게임에 출전하는 선수가 의욕적으로 임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점이 또 한 번 분노케 하는 것이다. 분명 김지연의 금메달,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모두 대한민국의 쾌거이고, 기뻐할 일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1초의 악몽이 여전히 신아람의 단체전까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점 때문에 무작정 좋아만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김지연과 남자 사브르 팀이 기적을 일으킨 것처럼 신아람과 여자 에뻬팀이 보란 듯이 기적을 일으켜주기 바라는 마음도 그만큼 크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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