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팀은 이번에도 흔들림 없었다. 여자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서 남녀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모두 거머쥐었다. 헌데 남녀 양궁팀의 금메달에는 사소한 비밀이 숨겨 있어 그 기쁨과 함께 즐거움도 주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여자 양궁팀은 올림픽 7연패를 달성했고, 기보배가 따낸 개인전 금메달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팀이 딴 일곱 번째 금메달이었다. 기보배는 이름처럼 행운의 숫자 7을 독차지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양궁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후 처음으로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건 오진혁에게도 숫자의 비밀은 있었다. 남자 양궁의 올림픽 도전사 7전8기 끝에 금메달을 따냈으며 이 역시도 한국팀의 8번째 금메달이었다. 이처럼 여전히 세계 최강을 확인시켜준 한국 양궁팀은 우연이겠지만 흥미로운 숫자놀이를 해 폭염과 싸우며 올림픽을 시청하는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한국이 올림픽에서 딴 99번째 금메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양궁 이관왕으로 얼짱 궁사에서 국민여동생이 될 기세로 떠오른 기보배는 더 이상 예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을 줬지만 그와 동시에 수많은 국민들의 수명을 적어도 한 달 쯤을 줄여 놨다. 개인전 결승, 준결승까지 별다른 위기 없이 순항해온 기보배였지만 멕시코 선수 로만을 만나서는 올림픽 결승의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마지막 세트, 마지막 발사에서 9점만 쏴도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기보배는 얄궂게도 8점을 쏘았다. 결국 지옥의 슛오프까지 가야만 했다.

첫 세트에서 먼저 쐈던 기보배가 먼저 시위를 당겼고, 결과는 9점 라인을 살짝 비켜간 8점. 죽는 줄 알았다. 상대 로만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3발을 모두 9점에 맞추는 안정된 사격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메달을 꿈에서 놓아야 했다. 그래서 애써 은메달이면 어때라고 자위하려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로만이 쏜 화살도 8점이기는 했지만 기보배보다 중앙에서 더 멀기 때문에 기보배의 승리가 굳어졌다. 손을 빠져 나가려던 금메달이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한 방울쯤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그렇고, 오진혁이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내내 눈물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KBS양궁 해설을 맡은 이은경. 단체전부터 마지막 개인전까지 차분하게 해설에 임했던 이은경은 매번 금메달이 나올 때마다 정작 선수들보다 더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비록 화면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목멘 해설만으로도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국 양궁팀은 대선배 이은경을 국민울보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좋다. 비록 지옥을 경험했지만 금세 그 고통은 환희가 되었고, 폭염도 잊을 기쁨을 주었으니 에어컨 없는 폭염의 한반도에 통쾌하고 시원한 즐거움을 주었으니 됐다. 그리고 또 하나 기보배의 금메달이 준 것이 있다. 여자 양궁 금메달은 밭에 나가서 따오는 것이 아니라 피 말리는 긴장과 불운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양궁 금메달을 너무 당연시하는 풍조는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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