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 ‘도취’돼 뉴스의 가치 판단이나 취재의 기본 같은 건 아예 잊어버린 걸까? 현기환 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3억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제2의 차떼기’라는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거나 ‘물타기’하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조차 관련 소식을 1면에서 다루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상황에서 공영방송 뉴스의 이러한 행태는 '조중동보다도 더 정파적인 행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일자 지상파 3사 뉴스 가운데 현기환 전 의원의 공천 헌금 파문을 헤드라인으로 다룬 곳은 SBS가 유일했다. KBS는 10번째 리포트였고, MBC는 11번째에 관련 소식을 배치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박근혜 의원의 대선 레이스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사건으로 ‘혁신’과 ‘쇄신’을 추구한다며 당명까지 바꿨던 새누리당이 뒤로는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새누리당 공천 헌금 파문은 파급력을 아직까지는 제대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메가톤급 이슈이다. 이러한 사안을 올림픽 뉴스가 끝난 이후에 배치한단 건 기본적으로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려 했단 의도로 밖에 보기 어렵다.

▲ 2일자 KBS(위)와 MBC(아래)의 메인 뉴스 편성표. 새누리당 공천 헌금 파문이 제기된 상황에서 KBS와 MBC는 올림픽 관련 소식을 10꼭지 이상 먼저 보도하고 나서야 관련 소식을 배치했다. 그나마 KBS의 경우 1꼭지 뿐이었고, MBC는 선진통일당의 연루 사실을 강조하며 '물타기'에 나선 모습이었다.

KBS와 MBC가 공천 헌금 파문보다 앞서 보도한 올림픽 관련 소식들은 KBS의 경우 ‘김장미 꿀맛 휴식!’, ‘가족의 힘으로! 늦깍이 금메달 일구다’, ‘김지연, 신아람 한 풀다!’ 등 금메달리스트들의 휴먼적 사연을 다룬 것이거나 MBC는 '금메달 선수 가족 응원, 이제야 함박웃음‘, ’소리의 비밀, 또 하나의 근육‘ 등과 같이 보도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었다.

반면, SBS의 편성은 돋보였다. 올림픽에 대한 몰입 정도가 KBS, MBC에 비교할 때 뒤질 것 없지만 SBS는 공천 헌금 파문의 중요성을 감안해 올림픽 소식에 앞서 헤드라인 편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천 헌금 파문에 대한 방송 뉴스들의 문제점은 편성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도 내용도 문제였다. 올림픽 시즌 중이라 취재 인력이 부족하고 선관위의 주장 외에 당사자들이 관련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안의 중차대함에 비해 보도가 너무 적었다. 또한 리포트 내용에 있어서도 선진통일당과의 기계적 형평을 동원해 정작 중요한 이슈를 ‘1/N’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KBS의 경우 앵커 멘트를 통해 “중앙선관위가 지난 4월 총선에서 거액의 공천 헌금을 건넨 혐의로 여야 비례대표 의원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며 이번 사건이 여야 모두에 걸쳐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기자 리포트에서는 새누리당 현기환 전 의원의 수수 사실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선진통일당 김영주 의원의 문제는 간략하게 언급만 했다. KBS는 관련 사실에 대한 후속 보도 없이 선관위의 고발 사실과 현기환 전 의원의 해명 그리고 이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을 하나의 꼭지로만 엮어 보도했다.

MBC 역시 KBS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모두 연루됐다는 코멘트로 뉴스를 시작했다. MBC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의 명백한 위상 차이와 현격한 뉴스 가치의 차이를 생각할 때, ‘물타기’성 프레임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선진통일당의 경우 ‘50억을 주기로 약속을 한 것’에 대한 고발이고 새누리당은 구체적으로 돈을 전달한 상황에 대한 고발이란 점에서 행위 여부가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MBC의 이어진 리포트는 “정치쇄신을 강조해온 새누리당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가도에 큰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여전히 상황을 ‘가능성’에 두고 엄중한 검찰 수사를 촉구한 새누리당의 입장을 가장 먼저 배치하고, 박근혜 의원의 입장도 따로 다뤘다. 이어 김문수 후보나 민주당이 ‘박근혜 책임론’을 꺼내든 상황을 전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뉴스의 기조는 양적 균형만 있을 뿐 밋밋했다.

상대적으로 돋보인 SBS의 경우 첫 번째 보도는 KBS나 MBC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선관위가 여야 전현직 의원 3명을 고발했단 사실과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입장을 스트레이트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어 ‘대선정국파문...친박 초긴장‘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의혹이 사실이라면 총선을 진두지휘한 박근혜 후보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김문수 후보가 박근혜 책임론을 제기하고 비박계 후보들이 긴급 연석회의를 요구하는 등 새누리당 안에서부터 파문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 3사 가운데서는 SBS가 가장 직접적으로 박근혜 의원의 책임론을 언급했다.

이번 파문은 올림픽을 핑계로 댈 수 없는 엄중한 사건이다. 야권이 “현대판 매관매직”이라고 할 정도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건이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보도에 신중한 것이라는 변명보다는 적극적인 취재와 공세적인 보도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게 공익에 부합한다. 하지만 방송 뉴스의 보도는 실망스럽고 또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2일자 방송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정파성’의 문제에서 조중동이 아니라 KBS와 MBC가 더 노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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