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연인>, <온에어>, <시크릿 가든> 등 오늘날 최고 인기 드라마 작가 김은숙을 있게 한 전작과는 달리 <신사의 품격> 첫 회는 마냥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부르주아만 모여 산다는 강남 도심을 배경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한 중년의 남성들이 한국 남성판 '섹스 앤더 시티'를 찍는다는 기획 의도는 상당히 참신해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지독하게 현실성으로 똘똘 무장한 김도진(장동건 분) 캐릭터가 드라마 주 시청자인 여성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상당히 힘들어 보였습니다.

다행히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이기심으로 가득 차 도저히 좋게 봐줄 수 없었던 김도진은 모든 한국 로맨틱 코미디물이 다 그렇듯이 서이수(김하늘 분)을 만나면서 개과천선하게 되고, 주인공 친구들을 넘어 러브라인 한 축을 담당하는 최윤(김민종 분), 임태산(김수로 분), 이정록(이종혁 분)들이 각각 자신들의 차별화된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면서 <신사의 품격>은 초반 부진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시청률 고공행진에 돌입합니다. 그렇게 13회까지 잘 나가나 싶었습니다. <신사의 품격> 최대 걸림돌이라(?) 지목받는 콜린(이종현 분)의 존재가 거슬리긴 했지만 늘 막장을 보기 좋게 비틀어버린 김은숙 작가이기에 별탈없이 지혜롭게 지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콜린이 <신사의 품격>에 주는 파장은 상당했습니다. 아니 드라마보다 멘탈붕괴까지 올 정도였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잃어버린 아빠, 엄마 찾는 주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믿었던(?) 김은숙 작가인터라 그 충격과 배신감은 좀 과장하여 브루투스에게 칼 맞은 줄리어스 시저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애초부터 콜린은 자신의 친부를 찾으려 네 남자를 찾아온 걸로 설정되었습니다. 때문에 그 철없는 신사들을 향해 "당신들 중에 내 아빠가 있다면서"라고 외치는 콜린이 전혀 뜬금없거나 낯설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청자들도 이미 그 상황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해놓은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내가 콜린 친아빠"라고 불쑥 손든 김도진의 모습은 "김은숙 작가 너마저"라는 방백만 남기고 이성을 마비케 합니다.

'김도진이 혹시 콜린 아빠?'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막장 요소를 보기 좋게 비틀었던 김은숙 작가답게 콜린은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물론 콜린 때문에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김도진과 서이수 사이에 금이 가는 일이 생길 것은 뻔해 보이지만 '결코 김도진은 콜린 아버지가 아닌 걸로, 그리고 네 남자 중에 콜린 아빠는 아무도 없는 걸로'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김도진은 아주 보기 좋게 자신이 콜린 아빠라고 대대적으로 선언하고, 그동안 잘 만나고 있던 서이수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거기에다가 콜린의 엄마이자 한때 김도진의 첫사랑인 김은희(박주미 분)은 "응 걔 도진이 아들 맞아"하면서 빼도 박도 못하는 강한 한 방을 날려 버립니다.

지금 굴러가는 상황에서 김도진은 드라마 첫 회부터 시청자들을 긴장시켜버린 그 타이틀 콜린 친아빠가 맞아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콜린은 김도진이 자신의 아빠가 맞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최윤 변호사에게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최윤은 아주 당당한 태도로 기다렸다는 듯이 누구의 건지는 몰라도 72년 7월 9일에 태어난 남자와 콜린이 100% 친자 관계라는 의미심장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현재로선 김도진이 100% 콜린 아빠라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지금 <신사의 품격>이 몰아가는 대로 김도진이 72년 7월 9일 생이고 콜린 아빠가 맞다고 해도 이미 6회 이상 남은 기간 이 엄청난 갈등 요소를 슬기롭게 풀어갈 지혜를 가진 절대자 김은숙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드라마엔 비이상적인 출생의 비밀이 난무해서 아들이 자기 아빠 찾아오는 것은 그저 가벼운 해프닝으로만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심하게 반대하는 부모도 없고, 엄청난 계급 간의 격차가 없어 별다른 방해요소 없이 순탄하게 흘려갈 것 같은 김도진과 서이수 관계를 갈라놓기 위해 아침 드라마 혹은 일일 연속극에나 나올 법한 출생의 비밀을 등장시킨 것은 여타 막장 드라마와는 다른 산뜻하고 경쾌한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이기 때문에 김도진이 콜린 친아빠라는,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어쩌면 김은숙 작가는 진작부터 한국 남성판 <섹스 앤더 시티>를 표방한 한국판 <맘마미아>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또한 콜린 친부 찾기를 통해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방탕하고 무절제한 라이프 생활에 감춰져 잘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의 이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14회 콜린의 친아빠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갑자기 신파극으로 변질된 것 같은 <신사의 품격>은 잘 나가다가 출생의 비밀이라는 대한민국 드라마 고질병에 발목 잡혀버린 안타까운 예로 기억될 듯합니다. 이왕 이렇게 흘려간 거, 콜린의 대사를 빌려 "모두가 행복한 걸로"로 2012년 감각에 맞게 유쾌하게 마무리지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시청자들이 김은숙에 열광했던 이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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