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대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사회에서 맞는 노동절. 그리고 내게 맡겨진 취재. 과거 나는 대학교 게시판에 노동절(메이데이)의 의미와 함께 노동절 참여를 권하는 대자보가 대문짝만하게 붙어있어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점 관리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 한다고 그렇게 사회 문제에 귀를 닫은 채 4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내게 주어진 노동절 취재가 참으로 막막하고 막연했다. 더군다나 코스콤, 이랜드와 같은 비정규직 분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노동 운동을 탄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익히 들은 터라, 노동절 행사가 진행되는 대학로를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꼭 코스콤 노조를 인터뷰하러 갈 때처럼 무거웠다.

▲ 5월 1일 대학로에서 '제118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가 열렸다. ⓒ윤희상
대학로에는 참 많은 노조와 노동자들이 모였다. 처음 접한 노조에서부터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이랜드, 알리안츠, 코스콤 비정규지부 뿐 아니라 장애인,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

깃발을 흔들며 마이크를 통해 ‘투쟁’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더 솔직하게 이전까지 나는 노조들의 파업을 대체로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도 고백한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니 관심이 없었고 노동가요가 주는 투쟁적 분위기가 나는 무서웠다. 노동운동을 그저 그들만의 행동으로 치부하며 편협한 사고에 틀어박힌 나는, '기자'라는 이름을 갖고 노동절 행사를 취재하러 간 오늘 현장에서조차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1시간 남짓 현장 곳곳을 돌아다녀본 결과, 이들의 주장은 그간 내가 '배부른 소리' 쯤으로 인식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의 삶과 직결돼 있는 '생존을 위한 외침'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노동절 현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전의 내가 그랬듯 그저 신기한 듯이 남의 일 바라보듯 슬쩍 보고 지나쳤다. 또 현장을 지나가는 혹자는 '하는 건 좋은데 길 좀 열어놓고 하지'라면서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노동절 행사에 대해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행사장 옆에는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건강보험제도, 노동자운동 재건, 신문 방송 겸영 등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며 정부 정책의 실상을 알렸고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촉구했다.

▲ 5월 1일 대학로에서 '제118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가 열렸다. ⓒ윤희상
또 행사장 한 켠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노조 탄압 사례가 적혀있었다. △2008년 1월 7일 지난해 투쟁을 이유로 민주노총 간부 구속 △2008년 1월 21일 화물연대 CJ 파업을 이유로 화물 노동자 2명 구속 …△2008년 3월 8일 뉴코아 홈에버 비정규직투쟁을 이유로 뉴코아 간부 구속 △2008년 3월 26일 새벽 노숙자 농성장 앞에 철거반과 경찰 권력 투입 등등.

매일 신문과 뉴스를 통해 나름 사회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내가 몰랐던 노조 탄압 사례들이 허다했다. 시대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알게 모르게 국가 권력에 의해 상처받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노동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공연이 이어졌고 이들의 공연을 보는 노동자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환했다. 노동절 행사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하는 오늘 단 하루의 기쁨보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오늘과 같은 환한 미소가 가득하길 짧은 시간이나마 기도했다.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한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시민여러분 오늘은 118주년 세계노동절 입니다. 기륭전자 파업 982일, 이랜드파업 314일, 코스콤 파업 233일, GM대우 농성 185일. 비정규직 정규직화,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플래카드를 보면서 노동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에 별 관심 두지 않은 내가 부끄러워질 그 찰나, 길거리에서 만난 학생의 한 마디는 더욱 내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학교 내 동아리와 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메이데이 실천단'을 만들었고 그 소속으로 이곳에 왔다. 관심이 있어서 나온 자리라기보다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나왔다. 내 신분이 학생이지만 학생과 노동자는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행동에 민중들의 생존이 걸렸음으로 생존을 위해 함께 투쟁하고 요구해야 한다. 단순하게 노동절 오늘 하루 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농민, 노동자 모두 같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란다."

▲ 5월 1일 대학로에서 '제118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가 열렸다. ⓒ윤희상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제법 뜨거운 날씨에도 1만 여명의 노동자들은 대학로에 모였고 열심히 외쳤다. 이들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 한마디를 들었을 때 이곳에 왜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노동자가 사람으로 최소한의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극히 이상적이지도 않은 이 한 마디가 그 어느 때 보다 진심으로 다가온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광화문 사무실에서는 노동자들의 행진 소리가 들린다. 내 귀에는 또렷하고 명확하게 그들의 주장이 들리는데 정부, 그리고 대통령에게 이들의 외침은 그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한 것일까?

글을 거의 다 쓴 이 시점에도 마음은 기쁘지 않고 오히려 무겁고 숙연하다. 오늘 대학로에 모인 1만 여명의 진실한 바람이 부디 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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