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이 자신의 병역회피 논란에 대한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주영이 어제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1층 로비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반드시 병역의무를 이행하겠다"며 병역연기 논란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공식발표했다. 지난 3월 16일 병무청 발표를 통해 그가 모나코 왕실에서 받은 10년 장기체류자격을 이용해 지난해 8월 29일자로 10년간 병역을 미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진지 3개월 여만의 일이다.

박주영은 과연 '병역기피자'일까

박주영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그를 비난하던 여론이 양분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전에 그의 행동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것이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박주영의 행동은 현재의 병역법에서 합법적이고, 병역을 기피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35세 이전 국외이주를 포기할 경우 현역입대, 36세에서 37세 사이에 돌아올 경우 공익근무, 38세 이후에는 병역면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즉 확실한 것은 박주영이 모종의 법률적 방법으로 유럽 리그에서의 선수생활을 연장했다는 것밖에 없었고, 이 방법을 병역기피에 활용할지 여부는 미래의 일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에게 ‘의무’로 강제된 병역문제를 그가 선택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것만으로 비난이 빗발쳤다.

비난을 한 건 생활인들이었지만, 비난을 부추긴 데엔 언론의 공로도 있었다. 언론은 박주영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병역기피’란 이름으로 묶었고, 어떤 기사에서는 심지어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을 당한 최성국과 함께 묶였다. (링크) 아무리 같은 날 사건이 알려졌다 해도, 아무리 그들의 연배가 비슷했다 하더라도 같이 묶여서는 안 되는 경중의 사건이 ‘공인’이라는 애매한 지향 속에서 함께 ‘잘못’으로 치부되었다.

박주영이 ‘남들 다가는 군대를 혼자만 피하려’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단 그의 병역기피는 아직 가능성일 뿐이며, 한국 사회 전체 남성을 준거로 보더라도 조금 군대를 늦게 가겠다는 선택이 악질적인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가 젊은 시절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비슷한 나이의 학생이나 직장인들에 비해 기회비용과 자아실현의 측면에서 훨씬 큰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다른 직군에 비한다면, 그들의 사회생활 및 경제생활의 전성기가 젊은 시절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수한 사정이 현재의 병역제도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상무면 충분하지 않느냐? 그리고 박주영은 상무는 갈 수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회비용의 계산은 구체적 개개인의 것이며 박주영의 경우 현재 시점에서의 상무 입대가 엄청난 손해인 건 사실이다. 굳이 사례를 비교해 볼 때, 해외유학으로 군대를 연기하는 이들보다 박주영의 사정이 한가하다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박주영의 태극마크, '권리'일까 '의무'일까

물론 이에 대해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박주영처럼 입대를 연기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공정함의 문제가 아닌 절차적 정당성의 차원으로 돌린다면 법률을 뒤져 입영연기의 묘수를 뽑아낸 박주영 측이 잘못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만약 그의 병역연기가 사회적으로 부당하다고 느낄 경우 해야 할 일은 그걸 가능하게 했던 제도의 악용가능성을 비판하고 그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지만 다른 운동선수들에게는 주어지지 못한 혜택이란 문제의식이 있을 경우 해야 할 일은 운동선수 등의 병역의무에 관한 조항을 다듬는 것이다. 여기서 박주영의 ‘꼼수’를 비판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병역을 연기하면서 국가대표 선수나 올림픽대표 선수를 할 수는 없고, 만일 하려고 해도 ‘사과’가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핀트가 어긋났다. 박주영이 대표선수로 뛰지 못하면 애가 타고 아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팀이기도 하다.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직접 그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정황은 그의 뜨거운 후배 사랑을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올림픽 대표팀이 메달 경쟁을 위해 그의 기량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박주영이 그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병역기피를 통한 사적 이익추구에 골몰한다고 하면, 국가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는 한국인들의 겁박(?) 또한 '땡큐!'라고 답변할 사안이다. 그러나 박주영은 아직 그런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병역을 훨씬 더 떳떳하게 면제할 수 있는 방법이 올림픽 출전 및 메달획득이므로 그런 것이 '겁박'도 되는 것이다. 이런 이해관계들이 맞아떨어져 박주영은 자신을 향한 석연치 않은 비판들을 ‘국민정서’로 받아들이고 일종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성실한 병역이행을 다짐했다. 사정이 이럴진데, 선수 개인이 거부할 수도 있는 '국가대표팀 차출' 문제를 병역이행 문제와 동등한 레벨에 두고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놈이 병역을 연기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라고 반응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이 담당하는 국가주의의 기능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이상규와 박주영의 '양심의 자유'

MBC 백분토론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시민패널의 질문을 ‘양심의 자유 침해’로 이해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의 발언에 동의했던 이들이 왜 박주영에게는 그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기자는 이상규에 대한 옹호가 과도했다 보지만, 이상규에 대한 그 옹호의 절반이라도 박주영을 향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과 유권자의 관계는 박주영에게 꼬리표처럼 달려 있는 그 애매한 ‘공인’이란 말보다는 훨씬 엄격한 책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란 뭔가 대단한 정치적 사상만의 자유가 아니라 내가 어떤 문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남에게 실토하는 것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며, 그 ‘생각’엔 온갖 종류의 시시한 것들이 다 포함된다.

즉 이상규는 박주영보다 훨씬 더 답변의 책임을 느껴야 하는 입장이 있었고, 그의 침묵 역시 무슨 공안기관에 대항하는 숭고한 투쟁이 아닌 지난 3개월 동안의 박주영의 침묵과 비슷한 그 무엇이었을 따름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좀 더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할 책임을 요구받지만, 팬이 스포츠스타에 대해 받는 영향이란 것이 그 영향력에 대한 객관적인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박주영의 ‘사과’가 한국 사회에서 ‘현명한 선택’일 수는 있겠지만 그 선택을 현명한 것으로 만드는 그 사회적 압력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사실상 연예인과 정치인만이 검증의 대상이 되고 특히 연예인은 과잉검증의 대상이 되는 대중여론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막연히 ‘유명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저 '검증'과 '비판'이 개인에게 상처가 될 뿐 아니라 그것에 골몰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의구현'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타블로의 ‘학력위조’와 박주영의 ‘병역기피‘를 비난하는 것이, 그리고 그들이 기독교신자라고 비웃는 것을 무슨 진보적인 행위처럼 치장하는 세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에서 박주영은 사실 엉겁결에 '국민정서'라는 일관성 없는 판관의 눈 밖에 나 사과를 강요받은 피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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