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샤미가 애절한 목소리 울어댑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애절한 목소리입니다. 2년 동안 샤미하고 살면서 멸치 달라는 목소리, 밖에 나가고 싶다고 문 열어달라는 목소리, 혼자 심심하니 놀아달라는 목소리, 다리 위에 올라와 자고 싶다는 목소리 등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샤미 목소리는 도저히 무얼 요구하는지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이 알아듣지 못해 우왕좌왕하니 샤미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끝임 없이 야옹댑니다. 배고프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밖에 나가겠다는 이야기도 아니니 몸에 심각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 아궁이에서 나온 샤미
두 해전 샤미와 첫 만남은 귀여움 자체였습니다. 어미고양이만 쫓아다니는 새끼고양이인 샤미는 온 몸이 흰색이라 조그만 실 뭉치 하나가 돌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을 잘 따를 리 없는 샤미를 겨우 상자에 담아 먼 길을 차에 태우고 집까지 왔습니다. 먼 길 오느라 배도 고프고 피곤할거라 생각해 우유를 그릇에 담고 상자에서 꺼냈지만 샤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궁이에 몸을 숨겨버렸습니다.

새끼고양이 한번 만져볼 생각으로 들떠 있던 딸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그리고 새하얀 고양이가 하필 아궁이에 들어갔으니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체 온 몸이 새까만 고양이를 보아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어떤 동물보다 귀여움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던 샤미도 어느새 어른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발정기가 와 밤새 밖을 돌아다니며 야옹거리기를 며칠 동안 했습니다.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숫고양이가 못 찾아올 리 없건만 온이가 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탓에 숫고양이가 찾아오지 못하는지 며칠 밤낮을 샤미는 애타게 숫고양이를 찾아 다녔습니다. 큰 개가 없을 때에는 깊은 산중까지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밤중에 마을과 좀 떨어진 곳에서 암수가 만날 수 있겠지 했는데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달 전 샤미 한 마리 키우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새끼고양이까지 생기면 어찌 다 키울지 아득하기만 해 샤미의 애타는 마음을 모른 체하며 얼굴까지 이불에 묻고 억지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곳간을 드나들던 쥐 때문에 어릴 적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나락을 보관하던 곳간이 지금처럼 쥐를 원천봉쇄할 만큼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에서 쥐를 박멸하자고 홍보도 하고 어린 우리들까지 쥐박멸 포스터도 그리고 구호도 숙제로 받아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생각보다 쥐가 곡식을 많이 없앴나봅니다. 하여튼 고양이를 키우다보니 새끼를 낳았고 고양이 새끼가 얼마나 예쁘던지 그 기억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다고 이 기억을 살리고 싶어 고양이를 더 늘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어릴 적엔 고양이 밥을 따로 준적이 없는데 샤미는 고양이사료와 멸치만 먹어댑니다. 고양이 사료는 양은 적고 비싸지, 멸치도 만만치 않은 돈입니다. 여기에 네다섯 마리 새끼고양이까지 생기면 집안에 온통 고양이가 바글대지, 사료값도 엄청나지.... 상상만 해도 버거워집니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은 지울 수 있어도 눈앞에서 애쓰고 다니는 샤미를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불속에 머리를 묻고 모른 체하고 싶어도 샤미 목소리는 더 크게 들리니 모른 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다 큰 숫고양이를 사올 수는 없고 아랫마을만 내려가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많은데 이 중에 한 마리 잡아 오려고 여러 번 가까이 가보았지만 사람을 워낙 경계해 조그만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체국 갔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우체국 근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지 사람을 경계하는 모습이 없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고 쓰다듬게 허락했습니다. 다행히 숫고양이기까지 했습니다. 집고양이만 아니면 데리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여학생이 냉큼 그 고양이를 안고 가버렸습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사람을 피하지 않더라 했더니 키우는 고양이였구나!"하며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틀 뒤인가 우체국 앞에서 국수집을 하는 친구 집에 갔는데 그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어, 이 고양이 우체국앞에서 보았는데"

"우리 집에 날마다 오는 고양이야. 멸치국물내고 날마다 멸치를 주니까"

그 고양이를 안고 산길을 걸어 집에 도착하니 딸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아내는 어찌 된 일이냐며 어리둥절합니다. 주인이 안고 온 고양이라 온이도 공격할 태세는 아닙니다. 딸아이의 바람과 달리 며칠을 샤미와 신경전만 벌였습니다. 그러다 윗집으로 가버린 통에 어렵게 고양이를 안고 산에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샤미를 지켜보는데 샤미가 어느 날부턴가 사료를 많이 먹고 멸치를 자주 달라고 야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샤미가 새끼를 가졌다는 신호라고 했더니 아내는 배가 부르질 않았다며 아닐 거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샤미 배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사는 고양이 샤미는 반은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가지게 되었고 어느덧 새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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