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여전히 진심입니다. 미련을 버리고, 당장 떠나세요.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릴 마지막 기회입니다. 결정적인 타이밍입니다. 남은 삶, 자연인으로 돌아가, 진지한 반성의 시간 조용히 가져보세요.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당신이 맡은 사장직, 이 정도 실패, 이 수준의 참담으로 마감하는 게 맞습니다. 더 이상의 처참은 안 됩니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피눈물을 나게 하고, 이 사태 지켜보는 수천만 시청자들을 더욱 민망케 만들렵니까? 그 업보 대체 누가 고스란히 짊어지겠습니까? 이리 질질 끄는 것, 최악의 판단입니다. 이성적 선택, 지혜로운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무모한 짓입니다. 무리한 일입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념의 차이를 떠나, 혀를 찰 그런 어이없는 추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지금 아무 것도 없습니다. 딱하나, 서둘러 사장직 내놓는 일만 남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벌어진 난장판을, 남은 이들이, 온갖 지혜를 모아 수습토록 해주세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당신의 눈에는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대체 무슨 일을 저질러 놓았는지, 그 경악할 만한 전경이 소름끼치게 다가오지 않나요? 여전히 공영방송이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 눈 뜬 장님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의 과욕에 의해서나, 혹은 주변의 기회주의자들이 가리키는 손가락 때문에, 눈이 가린 게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경악하지 않고서는 지켜볼 수 없는 그런 최악의 지경에 와 있습니다. 이 비극적 상황을, 아직도 태연한 듯 방관하는 자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결코 상식적일 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 MBC 김재철 사장
맞습니다. 지금 나는 대단한 이념이나 수 높은 정치를 떠드는 게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2012년 6월, 여론 대중 다수의 공통감각을 전합니다. 다중의 현실 사회와 더불어 살지 않는, 배타적 환상 공동체에 머무는 자들만이 현 사태를 이렇게 방기할 수 있습니다. 일반의 정서는 과연 어떨까요? 시중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한 조직이나 회사가 위기에 처했다면, 누구보다 그 수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심지어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획득한, 귀중한 공영방송입니다. 그런 기관을 위임받은 사장으로서,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해, 통회하는 심정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요? 그렇기에 당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소리가 아닌가요? 그런 시민들의 요구가, 시청자의 원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정말로 답답합니다. 조직을 대표한다는 게 대체 무엇입니까? 능력이 있어 일이 잘 될 때는, 모든 걸 구성원들에게 돌리는 게 덕 있는 사장의 행동입니다. 거꾸로 조직이 고난에 처하고 운영이 잘 안 될 때는, 과감하게 바로 자신이 책임을 지는 법입니다.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해보지만, 더 이상 풀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일 때, 무엇보다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그 역할을 원치 않을 때, 그때는 자신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 여기고 과감히 자리를 내놓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무능, 오판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압니다. 조직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죠. 그런 정도의 처신은 해줘야, 그런 판단력까지는 지녀줘야, 그래야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하지 않을 때, 개인에게나 조직에게나 공히, 극복할 수 없는 참화가 초래됩니다.

일말의 염치를 기대했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은 회사에 대해, 그래도 조금의 애정이 있다면, 그 표식을 당장 그만둠이라는 실천으로 보여주길 바랐습니다. 너무 순진했던가요? 그래도 당신을 ‘선배’라 부르던 후배들에게, 그렇게 마지막 인간적 예의는 보여주리라 기대했었습니다. 현 사태를 지극한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신이 문제의 원인이라 질책하는, 많은 시청자 대중들에게 마땅한 사회적 도리를 취해야 했습니다. 즉각 사퇴. 온갖 구설과 난무하는 풍문을 떠나, 그래야 했습니다. 아,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 예의, 사회적 도리를 저버렸습니다. 대신에 또 다시 절망적으로 사심을 품고, 무리하게 사욕을 쫒습니다. 난폭하게 사리를 챙기려 듭니다. 누군가를 또 손보았습니다. 또 다시 많은 이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수십 개 징계 장을 마구 날립니다. 기자의 목을 싹둑 자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슬픔과 분노, 증오를 초래하고 있는지, 당신은 정말 볼 수 없나요? 알면서도 그리 하는 건가요? 아, 그것은 명백한 죄악입니다. 악의적 보복입니다. 고의적 폭력이며, 그 무자비는 오직 더욱 많은 원한을 초래할 따름입니다. 아니요. 당신이 휘두르는 칼날은 武力이 아닌, 無力의 표시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목 잘린 자는 피눈물 질퍽한 분노의 원성을 계속해 지를 것이며, 징계 받은 자들도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깔깔대며 저주를 퍼부을 것입니다. 파업하는 노동자들, 그 어떤 겁박에 휘둘리지 않고, 100일이 훨씬 넘었는데도 지치지 않고, 꼿꼿하게 낙하산 퇴출의 희망을 노래하더이다. 잔혹한 武力, 아무것도 無力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반대로 당신의 비극만 무섭게 커져갑니다.

비극의 1인극, 지켜보기 고통스럽습니다. 흥행 실패의 공연입니다. 관중들이 우우대고, 공공연한 비웃음과 손가락질이 무성합니다. 일찍이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당신도 어울리지 않는 낙하산 연기를 오래전에 접어야 했습니다. 정권이 마련한 무대, 썩은 냄새 풀풀 풍기며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잠시 쏠린 스폿 라이트도 이미 꺼진지 오랩니다. 모든 게 꿈같이 허무합니다. 허망한 권력이 연출한 방송장악의 그림자극. 허수아비 역을 더 이상 못하겠다는 노동자들의 각성효과만 가져왔습니다. 막장 드라마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냅니다. 후원하고 투자한 제도 정치권에게조차 이제는 부담인, 그런 음모적 기획이었습니다. 어두운 무대 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노로그 우울, 과해져 희극으로 전락합니다. 추태와 폭로의 지금 상황이 떡 그렇습니다.

권위 없는 당신은 엄연히 사회적 자산인 공영방송의 대표가 될 수 없습니다. 명예 추락한 당신은 이미 사회적으로 파면 상태입니다. 이제 오직 당신의 형식적 선택만 남았습니다. 서글픈 꼴 보기 참 곤혹스럽습니다. 이리 저리 공원을 배회하거나, 사우나를 떠도시지도 마세요. 후배 기자에게 붙들려 인터뷰 당하는 민망한 모습에 내 얼굴이 화끈 붉어집니다. 자신이 대표한다는 방송사 카메라에게 잡혀, 문제의 인물로 취재 당하는,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채 경찰만 부르는, 아, 그런 당신을 어찌 공영방송의 대표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내가 당신에게 이 마지막 편지를 쓰고자 마음먹은 것도, 그 웃기지도 않고 우울한, 슬프며 분노가 치미는, 그 인터뷰 같지도 않은 인터뷰를 보고난 직후였습니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는 당신을 지켜보는 기자의 일그러진 표정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파업을 끝내야 하겠습니다. 피 흘림을 막고, 사태를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하니 한참 전부터 역할 중지된 사장 역을 내놔야 하겠습니다. 미련이든, 분노든, 아니면 욕심이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바로 지금 떠나주세요. 더 이상의 파국은 안 됩니다. 당신은 지금 고립되었습니다. 당신 주변의 소수 강경파로, 일부 수구 정치권과의 결탁으로 돌파할 수 없는 그런 철저한 소외상태입니다. 냉정한 여론에 투항해야 살길이 열립니다. 화평이 가능합니다. 나는 당신이 정말 차분히 이 편지를 읽어주길 바랍니다. 학자로서, 활동가로서, 그리고 시민이자 시청자로서 진심으로 요청합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인간적 환멸이 계속되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주기 바랍니다. 책임 있는 처신을 해주길 바랍니다. 지상의 미션을 위해 투하된 낙하산, 스스로 서둘러 접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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