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극장가에는 무수히 많은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1993년 극장가에 공룡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소나타 수출공식의 탄생과 더불어 국내에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냈던 영화 '쥬라기 공원'의 속편 '쥬라기 공원2', 1995년 '레옹'으로 전국에 선글라스, 수염, 화분, 그리고 우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이 헐리웃으로 건너가 메가폰을 잡은 브루스 윌리스, 밀라 요요비치 주연의 SF 대작 '제5원소', 1996년 '더 록'으로 국내 극장가에 광풍을 몰아오고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던 제리 브룩하이머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다시 결합하여 내놓은 액션 블록버스터 '콘에어', 그리고 지구 곳곳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독특한 설정과 검은 양복을 입은 두 사내의 포스터가 왠지 모를 세련됨을 안겨 주었던 '맨인블랙' 등이다.

한꺼번에 여러 편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영화팬들은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감독과 배우들의 명성을 쌓아준 전작들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운 내용으로 기대에 못미 친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영화는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주제가까지 돌풍을 일으켰다. 바로 '맨인블랙' 이었다.

1995년 '아담스 패밀리'로 범삼치 않은 발칙함과 기괴함, 그리고 곳곳에 숨겨져 있는 유머감각을 뽐낸 베리 소넨필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맨인블랙'은 주연배우 윌 스미스 위상에 엄청난 급상승을 안겨주었으며,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의 유쾌한 조합이 시종 일관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하였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도 결국은 더 큰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외계인들이 우주를 가지고 노는 마지막 장면이 상당한 참신함을 안겨주었던 '맨 인 블랙1'은 주연배우 윌 스미스의 신나는 주제곡과 뮤직비디오까지 덤으로 감상하는 혜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맨인블랙'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발칙함이라 할 수 있다. 지구상에 우리 일상 속에 외계인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설정. 특히 마돈나, 실베스터 스탤론 등 유명인사들이 알고 보니 다른 행성에서 파견온 외계인들이라는 설정 등이 참신하였고, 때로는 징그럽기도 하지만 마치 동네 개구쟁이처럼 묘사한 외계인들의 모습이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 큰 발칙함은 우리가 아웅다웅하고 있는 지구는 우주 속에 코딱지만한 일부분이고, 지구를 품은 우주는 또 다른 더 큰 우주의 극히 손톱만한 일부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엔딩씬은 베리 소넨필드의 기괴스런 발칙함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1997년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맨인블랙'은 2억 5천만 불을 넘어서는 흥행수익을 거두면서 그해 여름 박스오피스 최강자로 점쳐졌던 '쥬라기공원2'를 제치는 기염을 토하였다.

'아담스 패밀리', '맨인블랙'의 성공을 통해 배리 소넨필드 감독은 헐리우드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의욕이 지나쳐서일까. 1999년 윌 스미스와 다시 의기투합하여 야심차게 만든 퓨전 서부극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가 온갖 악평 속에 기대에 한창 못 미치는 1억불을 간신히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둔 이후 베리 소넨필드는 침체기에 빠져들게 된다. 특유의 기발함과 발칙함은 온데간데없는 자기 과시욕만이 깃든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는 베리 소넨필드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3년 뒤 베리 소넨필드는 자신을 히트 감독 반열에 올려준 '맨인블랙' 시리즈로 재기를 노린다. 하지만 5년 만에 선을 보인 속편은 전편의 기발함과 발칙함은 온데간데없이 단편 꽁트들이 여러 편 나열된 듯한 산만함으로 일관하며 기존의 '맨인블랙' 매니아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후 10년 동안 베리 소넨필드는 2006년 'RV' 한 작품만을 연출했을 뿐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못하다가 10년 만에 세 번째 '맨인블랙' 시리즈를 내놓는다. 10년의 시간 동안 과연 '맨인블랙' 시리즈가 관객들의 기억 속에 어느 정도 남아 있을지가 미지수였고, 과연 어떤 이야기로 선보일지도 상당히 궁금한 부분이었다.

제작진의 선택은 과거로의 귀환이었다. 1969년으로 돌아가서 '맨인블랙'의 명콤비 케이(토미 리 존스)와 제이(윌 스미스)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40년 동안 달 감옥에 갇혀 있던 흉악범 외계인 '보리스 더 애니멀' (짐승남 보리스)가 탈옥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40여년 전 자신의 팔을 잃게 만든 에이전트 케이(토미 리 존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짐승남 보리스는 타임머신을 이용해 1969년으로 돌아가서 사고를 치게 된다.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직감한 케이는 본인이 과거에 하지 못해 후회했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홀로 보리스와의 대결에 나서고 그 후 제이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과거 케이와 보리스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을 조회하던 제이는 사건의 진실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좀처럼 그 비밀을 밝히려 들지 않는 에이전트들이 더욱 미심쩍게 느껴진다. 그리고 케이가 40여년 전 만들어놓은 지구 방위막이 해체되면서 외계인들의 침공이 시작되고, 제이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도 1969년으로 떠나게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9년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게 되는데, 특히 1930년대 월 스트리트 대공황으로 인해 투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신문기사와 더불어 하염없이 시간의 벽으로 추락하는 제이 옆에 함께 떨어지고 있는 증권 투자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1편의 기발했던 재치가 느껴진다.

과거에 안착한 제이는 젊은 시절의 케이(조쉬 브롤린)을 만나게 되고, 몇 분 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외계인 그리핀의 도움을 받아 보리스와의 정면대결을 준비하게 된다. 아폴로 달 착륙선 발사대에서 케이와 제이 그리고 짐승남 보리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과연 발사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핀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슬픈 광경을 볼 수 없다며 떠나버린다. 케이가 그토록 제이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던 과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 과거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시종 일관 발칙한 유머로 일관하던 영화는 예기치도 못한 감동코드를 전달한다.

10년 만에 선보이는 속편이라 인지도의 문제도 있었을 테고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이후 10년여 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베리 소넨필드가 얼마나 기발한 감각을 보여줄지도 미지수였던 '맨인블랙3'는 기존의 프리퀄 영화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짜임새 있다. 그리고 1997년 1편의 그 기발함과 발칙함이 다시 되돌아온 느낌이다. 2편에서 붕괴되었던 '맨인블랙' 시리즈의 재치가 3편에서 확실하게 부활했다.

3편을 보기 전에 미리 1,2편을 다시 보고 복기하면 훨씬 더 세밀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탄탄하게 짜여진 스토리를 갖춘 블록버스터 영화란 생각이 드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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