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국신문협회가 3개 제지업체에 신문용지 가격 인상 폭과 시기 등을 논의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제지업계 측은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이에 대해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기관이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제지·전주페이퍼·페이퍼코리아 등 3개 제지업체는 지난달 초 ‘6월부터 신문용짓값을 톤당 10%(7만 원~7만 5천 원)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제지업체들은 2일 3개 신문사에 공급하는 물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이들 신문사는 요금 인상안을 수용했다. 이에 신문협회는 10일 제지업체에 공문을 보내 ▲신문용지 가격인상 일정 기간 유예 ▲제지 3사와 신문사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운영 ▲용지 가격 인상 폭·인상 시기 협의 등을 요구했다.

6월 16일자 신문협회보 1면

조가람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의 신문협회보(6월 16일자) 기고문을 보면 신문협회 ‘협의체’ 구상안을 짐작할 수 있다. 조 교수는 기고문에서 “현재 필요한 것은 기업 간 자발적 상생협력”이라며 “그 방안으로 소통의 창인 ‘상생 협의체 허브’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협의체는) 기업 상생협력을 위해 제지사·신문사·사업자단체·산업관련 공공기관 등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용지 산업의 생태계를 잘 아는 산업 관련 공공기관이나 중립적인 관련 기관이 관여하여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협회가 제지업체의 참여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지업계는 협의체에 참여해 가격을 합의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제지신문용지 공급은 3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인데, 관이 관여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제지업체들은 개별 신문사와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시도하고 협의를 해 왔다”면서 “신문협회 차원에서 접근하면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된다. 단체가 끼어서 가격을 가지고 논의하는 건 공정거래법상 안 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업자단체는 가격 결정·유지·변경 행위를 해선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특정 사업자단체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신문협회가 구상한 ‘협의체’는 사업자단체뿐 아니라 당사자, 공공기관이 모두 참여해 논의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신문협회가 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해도 제지업계가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과거에는 신문용지가 차지하는 산업적 비중이 크고, 제지업계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환경이 바뀌어서 신문업계는 더 이상 갑이 아니라 을”이라고 밝혔다.

심영섭 교수는 “신문협회가 정부를 압박해 강제적으로 문제를 해소할 순 없다”며 “공정거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기관이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청회나 세미나를 개최해야 한다. 이를(정부 주도를) 바탕으로 방안을 만들어야지, 당사자들은 서로 자기 머리를 못 깎는다”고 강조했다.

신문협회는 3개 제지업체가 동시에 가격인상을 통보하고, 3개 신문사에 용지공급량을 줄인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신문협회는 공문에서 “일제히 신문사에 접촉해 인상률과 인상 시기를 동일하게 통지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 신문사에 대해 발주물량을 감량 공급한 것은 공정거래법 조항을 명백하게 위반한 불공정행위”라고 지적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신문용지의 원료인 폐지는 주로 수입해 쓰는데, 업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수입한다”며 “(폐지의) 국제 가격이 많이 오르면 회사마다 가격(인상) 폭이 비슷하다. 담합으로 보일 수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사진=픽사베이)

'팔수록 적자'…"신문사, 폐지 재활용 관심 갖지 않았다"

신문업계와 제지업계의 갈등 배경에는 신문용지 가격 상승률, 채산성 문제가 있다. 한겨레신문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문용지 1톤당 가격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89만 5천 원을 유지했다. 10년간 인건비·운송비 등 신문용지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올랐지만, 용지 가격은 그대로다. ‘신문용지는 팔수록 적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제지업체는 지난해 말 신문용지 가격을 10% 인상했다.

디지털화로 인해 전반적인 종이 소비량이 줄면서 제지업계 업황도 나빠졌다. 2007년 신문용지 소비량은 137만 톤에 달했으나 지난해 40만 톤 수준으로 줄었다. 국내 4위 신문용지 제조업체였던 ‘보워터코리아’는 2017년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했다. 1위 사업자인 전주페이퍼는 2017년 청주공장을 페이퍼코리아에 매각하고, 일부 신문용지 제작기기를 골심지(골판지 완충재) 생산용으로 개조했다. 페이퍼코리아는 주력사업을 신문용지 제작에서 골심지 제작으로 전환 중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해상물류 상황이 안 좋고 유가·환율 문제가 있다”며 “제지업체들은 신문용지 1톤을 생산하면 10만 원 적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채산성이 너무 악화됐는데 이렇게 가면 회사가 망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문용지를 해외에 수출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관계가 계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정도(해외 수출가격)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국내에 우선 공급해야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적자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심영섭 교수는 “신문용지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며 “제지업체는 신문용지 생산량을 계속 줄이고 있고, 신문사 입장에선 신문을 찍어낼 수 없는 상황까지 직면할 수 있다. 제지업체는 국내에서 폐지를 수급받아 재활용해야 하는데, 국내 폐지가 부족하니 수입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지업체의 지난해 국산·수입 폐지 배합 비율은 7대 3이었지만 올해 4대 6으로 역전됐다. 수입 폐지보다 저렴한 국산 폐지의 수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심영섭 교수는 “신문 폐지가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신문업계가 (제지업체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라며 “환경부는 폐지 재활용을 위해 ‘폐지수급관리 위원회’를 운영 중인데 신문업계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제지업체들은 1996년 신문용지 가격담합을 해 13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제지업체들은 1994년 10월 두 차례 모임을 갖고 가격 공동인상안을 마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가격 협상에 나섰다. 제지업체들은 1995년 신문용지 가격을 37.7% 인상했다. 과징금 액수는 한솔제지 67억 3천만 원, 세풍(현 페이퍼코리아) 11억 6천만 원, 대한제지 4억 9천만 원 등이다. 한솔제지는 1998년 신문용지 사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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