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_ 2일 오전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 논란과 관련해 조준호 조사위원장의 공식 발표가 끝나고 국회 정론관 앞 복도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초미의 관심사인 사건인 만큼 기자들은 조 위원장에게 이른바 ‘백 브리핑’을 듣고자 우르르 따라 나갔다. 조사위원회의 정돈된 결과 이외에 조사 과정상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공식 발표 이외에 추가적인 취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대열이 정비되기도 전에 한 기자가 나섰다. 국회 출입기자들은 처음 보는 이였다. 그의 첫 질문은 “구체적으로 조작의 증거가 있나요?”였다. 이미 조 위원장이 공식 브리핑에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말한 마당에 사실상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조 위원장이 “선거관리 부정 위반 사례가 있었다”고 말하자 그는 재차 “의심만 있지 조작은 없었다는 건가요?”라고 따져 물었다. 조 위원장이 머뭇거리자 그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 “조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구체적 부분이 뭔가요?”라고 물었다. 조 위원장은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구체적으로 조작을 했단 부분이 어떤 부분인가요?”라고 따지듯 물었다. 조 위원장이 답변을 이어가자 “부정투표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시죠”라고 재차 따져 물었다. 그의 질문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투가 역력했고, 이제 막 조사를 끝낸 취재원에게 하는 질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격한 뉘앙스였다.

함께 있던 기자들은 “이게 뭐하는 짓이냐”, “누구냐”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백 브리핑에서 들어야 할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이었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 역시 “그만하자”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족히 100m이상 조 위원장을 따라 움직였다. 조 위원장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그의 질문은 이어졌다. 그 기자는 “모든 걸 개봉하셨습니까?”, “누가 누굴 찍었는지 개별조사 다 하신 겁니까?”등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 통합진보당 조준호 공동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2 _ 2일 오후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 논란과 관련해 통합진보당 당권파인 이의엽 정책위 의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이 의장은 "아직 진상조사보고서가 안 나왔고 그래서 사실관계가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내심 당권파가 최소한의 사과라도 하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던 이들은 실망이 컸다.

이 의장이 브리핑이 끝나고 오전에 조준호 위원장을 몰아세웠던 기자가 다시 질문자로 나섰다. 그는 우선 “보고서가 안 나왔는데 왜 오늘 발표한 건가”를 물었다. 이 의장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기자는 “어디서 누가 투표를 했는지 열어보셨다는데 어제 ‘저희’ 인터뷰에서 업체사장은 DB를 조 위원장이 요구해서 줬다고 했지만 조 위원장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관계는 무엇인가”고 물었다. 비로소 국회 출입기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여기서 저희란 <민중의 소리>를 말하고, 인터뷰란 2일 <민중의 소리>가 인터뷰한 ‘통합진보당 온라인투표 시스템 운영업체의 사장 A씨’를 가리킨다. 이 기자는 이후 서너 개의 질문을 더 던지며 이 의장과 주거니 받거니 진상조사위원회의 결과를 무력화하고, 자리에 없던 조 위원장을 ‘바보’로 만드는 모습을 연출했다.

#.3 _ 3일 오전

3일 오전 <민중의 소리>는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 사태의 본질은?’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실체적 진실이 불분명한 당내 권력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며 “표면적으로 보자면 '부정이 있었냐 그렇지 않냐'를 둘러싼 논란이지만, 사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다. 진보, 보수를 망라해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가장 화끈한 ‘디펜스’였다. 그런데 이 ‘디펜스’의 방식이 상당히 정교하다. <민중의 소리>는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 멘트라며 "진상조사를 통해서 사실관계가 명백하게 다 드러나면 오히려 책임을 져야할 이들이 사태의 실체는 모호하게 해둔 채 당권파에게 책임이 돌아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중의 소리>는 “비례 2,3번의 경우 비례대표선거와 청년비례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들이다. 더구나 '부정논란'이 있는 현장투표소의 경우 대부분 '당권파'가 아니라 참여당과의 합당에 반대했던 다른 계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곳”이라며 이번 사태의 책임이 현 “당권파가 아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전면화했다.

▲ 이석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경기동부실세라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2005년 5월 민중의소리 창간 5주년 기념식장에서 이석기 당선자는 경기동부연합 출신 핵심 인사들과 나란히 섰다. 이석기 당선자는 민중의 소리 이사를 맡기도 했다. 이용대 전 의장은 경기동부연합 실세로 2000년도에 민중의소리 편집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대 전 의장은 현재 뇌출혈로 투병 중이다. 사진 왼쪽부터 정형주 전 민노당 경기도당 위원장, 이석기 당선자, 윤원석 전 민중의소리 대표, 이용대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 ⓒ참세상

#.4

국회에 오래 출입한 한 기자는 2일 있었던 <민중의 소리> 기자의 취재 태도에 대해 “한 마디로 당권파 ‘쉴드’치기 위해 파견되어 온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와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특수 관계를 감안할 때,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차단하고 사건에 대한 프레임을 애써 제시해보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기자는 “보수 정당의 경우 특정 사건이 터지면 질문의 방향을 잘 아는 기자들에게 부탁하곤 한다. 진보 정당은 사실 그런 이슈가 없었는데, 이번 건 경우 볼륨이 커지다 보니 <민중의 소리>가 그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민중의 소리> 기자는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쉴드’치려 했던 것일까? <민중의소리>측은 '팩트검증차원'이라고 하지만, <민중의 소리>와 통합진보당 당권파, 더 좁혀서는 ‘경기 동부’ 그 중에서도 비례2번으로 당선된 이석기 당선자와의 특수성을 살펴보면 또다른 해석의 관점이 생긴다.

이석기 당선자는 27%의 압도적 지지율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일반명부 1위를 차지했다. 1번이 여성 몫으로 배정된 탓에 2번이 됐지만, 실제 일반명부 1위 당선자였다.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이 후보의 경우 비례후보 등록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할 것이란 당내 예상이 파다했다. 통진당 내 최대 정파인 ‘경기동부연합’이 가장 열성적으로 지원한 후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당선자의 압도적 1위 사실이 알려진 직후 정성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례대표 성격에 걸맞지 않은 듣보잡(당 관련 기획사-여론조사 대표)후보의 출마 및 1위 기록”이라는 표현과 함께 “‘종파패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쓰기도 했는데, 그만큼 이 당선자가 경기동부연합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종파패권주의를 말해야 할 만큼 경기동부연합이 통진당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크다는 지적이었다.

이석기 당선자에 관한 심층 보도를 한 바 있는 <참세상>의 보도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정치컨설팅, 홍보 기획, 금강산 관광, 광고 기획 등을 업종으로 하는 CNP전략그룹 대표”를 지내며 여론조사 기관 사회동향연구소 등 CNP전략그룹의 계열사를 통해 “야권연대 협상 전 이정희 대표가 출마했던 관악을 여론조사, 민주노총 비례집중 투표 정당 선정 조사” 등을 진행하며 통진당 내 ‘정파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해왔다. 대중적으로도 익숙해진 경기동부연합의 경우 용인 외대 출신들과 서울대 학생운동권 일부가 함께 해온 조직인데 이 당선자의 경우 용인 외대 82학번으로 경기동부연합의 출범 당시부터 조직의 이름이 바뀐 지금까지도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단 평가다.

#.5

또 한 가지 주목해봐야 할 것은 이 당선자와 <민중의 소리>의 특수한 관계다. 이 당선자는 <민중의 소리>이사였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CNP전략그룹 자체가 <민중의 소리> 관계사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경기동부연합은 <민중의 소리>, CNP전략그룹, 사회동향연구소 등의 사업을 핵심적으로 추진해왔는데, 이러한 사업에 모두 이 당선자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이 당선자의 경우 “경기동부연합이 주도하는 핵심적 재정사업을 주로 맡아왔으며, 재정과 전략을 모두 맡고 있는 조직의 실세 중의 실세”라고 평가했다.

<민중의 소리>의 경우 이 모든 것의 ‘허브’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민중의 소리>는 성남을 거점으로 시작돼 한국민족민주인터넷방송을 거쳐 2000년대 이후 민주노총의 노동 영상을 하청 받는 것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사세를 키워왔다. 이 시기에 이 당선자는 <민중의 소리> 이사였는데, 이 시기는 경기동부연합이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한국진보연대 등의 진보운동 조직의 실국을 장악하며, 진보운동의 주류로 떠오르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에 대해 한 진보진영 관계자는 “<민중의 소리> 편집장인 이정무 역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멤버다. 이 편집장은 이용대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 정형주 전 민노당 경기도당 위원장, 윤원석 전 민중의 소리 대표, 이석기 당선자 등과 함께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실세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6

<민중의 소리>는 성남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경기동부연합이 중앙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입장을 대변할 매체의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진 매체라는 분석이다. 이후 <민중의 소리>는 헌신성을 바탕으로 진보진영 안에서 영향력을 쌓아갔고, 이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 당선인은 노조와 진보정당의 선거를 컨설팅하는 기획사를 차려 조직의 재정사업을 담당했단 지적이다.

<민중의 소리>가 눈에 보이는 무리수를 두어가며 통합진보당의 조사결과를 흔들고, 당권파를 보호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그들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자, 진보운동 내의 패권적 정파주의의 발현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문제로 진보진영 전체가 우스운 대접을 받고 있다. 최소한의 수습책, 상식적인 사과와 반성이 절실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말이 없고, <민중의소리>만 종횡무진하고 있다. 한 진보매체 기자는 이석기를 보호하고자 하는 <민중의 소리>의 모습을 보며 “흡사, 중앙일보가 홍석현 회장을 보호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미니 인터뷰] 이정무 <민중의 소리> 편집장

-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 브리핑 당시, <민중의 소리> 기자의 질문 공세를 두고 기자단 사이에서 "<민중의 소리>가 당권파를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비판이 있다.

= 기자 개인의 스타일 문제일 뿐이다. <민중의 소리>의 경우 선거 부정과 관련해 온라인 시스템 조작 논란은 과도하다는 팩트 검증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을 뿐인데, 이를 당권파에 대한 보호막으로 보는 시각은 부당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소리> 논조가 당권파에 우호적이고, 이게 <민중의 소리>이사를 지냈고 계열사 대표이기도 했던 이석기 당선자와의 관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 이석기 당선자의 경우 벌써 7~8년 전에 이사를 했을 뿐, 공식적 연관은 없다. 명절에 선물 보내주는 정도이고, 나를 제외한 후배들은 얼굴도 잘 모른다. 통합진보당 내 몇몇 후보들과의 관계 때문에 오해를 사고 있지만, 그래서 선거 기간 중엔 오히려 더 조심했다.

- 이번 사건의 본질이 경기동부연합으로 대변되는 통합진보당 내 정파 구도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어떻게 생각하나?

= 기본적으로 '지역'과 '친소관계'에 따라 정파를 구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역을 연고로 한 경기동부연합의 경우 과거의 조직, 너무 낡은 개념일 뿐이다. 진보 매체부터 이런 정파 구도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이석기, 윤원석, 김미희 당선자들의 경우 이념이나 지향이 같다는 측면에선 정파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무엇이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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