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방송인을 희망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일하기를 꿈꿨을 지상파 방송사이지만 방송사의 그 화려함 이면에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숨겨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아래 놓인 현실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하면, 열악하고도 열악하다. 매달 일하는 대가로 받는 월급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노동 시간과 조건 등도 유동적이다. 근로자라면 받아야 할 4대 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라디오 작가다.

▲ KBS MBC SBS 사옥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4년 째 라디오작가 일을 하고 있는 A씨. 20대 후반인 그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작가 일을 희망했고, 기회가 닿아 대학교 졸업 직전부터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다. 그는 여전히 “방송할 때가 가장 재밌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라디오 작가의 일을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현재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한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를 하고 있는 A씨의 노동 환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했다.

“내가 연차로만 따지만 라디오에서만 4년 차다. 회사에서 4년차라면 중소기업과 같은 작은 회사라도 (이것보다는) 나을 텐데, 나는 세금을 떼면 90만원을 받는다.”

A씨가 처음 맡은 프로그램은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해당 프로그램은 작가 한 명만이 배정돼 있었으나 선배 작가의 사정상 막내 작가가 필요하게 됐고, 결국 선배 작가가 돈을 덜 받는 조건에서 A씨를 채용해 그는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하루에 3만원 이었지만, 그나마 방송이 없을 때에는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

현재 라디오 작가들의 급여를 결정짓는 ‘무시무시’한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첫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송시간. 한 시간짜리 방송과 두 시간짜리 방송은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째, 방송사가 책정하는 제작비 작가들의 급여는 '인건비'가 아닌 '제작비'다. 해당 방송사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책정한 '제작비' 안에서 해결되기 때문에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제작비를 절감하는 방송사들의 행위는 고스란히 작가들의 주머니 사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물론 A씨에게도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했을 때도 있었다. 혼자 프로그램을 맡았을 당시에는 120만원을 받기도 했고, 이후에 많이 받으면 18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150만원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재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 왔지만 실상은 90만원이었다. A씨는 “월급 통장에 (돈 액수가) 찍혀야 (얼마인지) 안다”는 쓴웃음 섞인 한 마디를 남겼다.

그나마 지금이 낫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방송사 비정규직이지만 본사 소속이니까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온다. 케이블을 몇 번 해봤는데 방송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어떨 때에는 외주를 거치고 거치면 월급이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몇 달 동안 기획만 하다가 해당 프로그램이 엎어지면 무임금으로 일하다가 끝나기도 한다.”

생활고를 타개하게 위한 생계형 아르바이트도 그는 해봤다.

“초반에 YTN의 일을 두 달 정도 했다.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회사 일정에 따라 스케줄을 맞워야 하지만 유동적이다. 라디오와 TV의 일을 같이 하는 것은 애매하다. 과거에는 케이블TV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이 편하고 괜찮았지만 그만뒀다. 내 시간에 맞춰야 하니까 회의 참석도 못하고 미안하더라. 그래서 그만뒀다.”

그나마 한국방송작가협회에 속해 있는 작가의 경우 사정이 좀 낫다. 이 협회에 속해있는 TV 작가의 경우, 재방송에 대한 재방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재방이 없는 라디오는 해당 사항이 없다. 작가협회의 가입도 쉽지는 않다. 예능 작가, 라디오 작가, 드라마 작가 등 부문 별로 4~5년 이상의 연차가 지나야만 가입할 수 있다.

A씨는 방송할 때가 가장 재밌고 보람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변에 ‘라디오 작가’라는 직업을 잘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굳이 라디오 작가를 하고 싶다면 “글 잘 써는 PD가 되어 보라”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고 한다. 이 같이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인 압박’ 때문이다.

“일단은 사람이 일을 하니까… 일이 취미 생활은 아니지 않나. 생활 안정이 보장돼야 마음도 편할텐데 휴가조차도 편하게 갈 수 없다. 라디오의 경우, 휴가를 가려면 미리 다 녹음을 해놓고 휴가를 가는데 결국 휴가가 아닌 일을 당겨서 하는 셈이 된다. 한 번에 일을 몰아서 하려니까 몸이 녹초가 되고, 그러니 여행을 갈 생각도 못한다. 그나마 지금 있는 방송사가 낫다는데 그것도 모르겠다. 다른 방송사는 지금보다도 더 짜다고 한다.”

‘다른 일을 찾아볼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에 A씨는 “가끔 짜증날 때 혼자 여기저기 이력서를 (양식을) 보긴 한다”며 “주변에서도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 자신도 없다”고 말했다.

과거, 작가가 속한 방송사 구성작가협의회에서 작가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 있었다고 한다. A씨는 작가들의 환경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열심히 설문조사에 응했지만 이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달라질 수 없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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