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금요일 발표한 감청 통계는 우리가 얼마나 겁주는 시대를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통계는 크게 감청, 통화내역이나 IP주소 추적(통신사실확인자료), 그리고 이름이나 주민번호 등 신원정보(통신자료)의 제공 실태를 보여준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일 년에 두 번 공개되는 감청 통계는 어느 순간부터 언론의 조망을 받기 힘든 금요일이나 연휴 직전에 발표되곤 한다. 발표 시점이 매년 조금씩 늦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3월 혹은 4월과 9월 혹은 10월, 언론들이 놓치지 않고 이 통계들을 챙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민들이 남루해져 버린 헌법 제18조의 현실을 매번 상기할 수 있다. 우리 일상의 사찰 당하는 문제다.

먼저 감청의 문제를 보자. 방송통신위원회는 '기관별 통계'를 발표하며 "전년 동기 대비 국정원은 56.1%, 경찰은 4.5%, 군수사기관은 53.6% 감소"했다고 친절한 설명을 달았다. 그런데 이건 공문 숫자가 그렇다는 것일 뿐, 주목할 부분은 공문 안에 담긴 실제 감청 건수이다.

2011년 전체적으로 국가정보원이 7,167건 중 6,840건, 전체 감청 건수의 무려 95.4%을 차지하고 있다. 국정원이 일반 범죄수사를 담당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 유엔에서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라는 애매모호한 죄목을 근거로 시민들을 사찰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염두에 둘 점은, 이 통계가 통신사들의 보고를 방송통신위원회가 집계한 것이라서, 직접 감청한 수치를 제외했다는 사실이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알려진 CAS와 같은 장비를 휴대하면서 정보수사기관들이 직접 감청하는 실태가 알려지면 전체적인 수치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동전화 검청 ‘0’건, 안기부 X파일을 알고 있는 ‘우리는 요상할 뿐’

통신수단별 통계를 보면, 이동전화 감청은 안기부 X파일 논란 이후로 여전히 0이다. 정말 이동전화 감청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 직접 감청하는 것일까? 간혹 접하는 감청 영장에서도 이동전화 음성통화 감청은 발견할 수 없지만, 분명히 음성사서함, 문자메시지는 포함되어 있는데도 통계가 0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요상하다.

인터넷 감청은 점차 비중이 올라가 이제는 늘 60%를 상회한다. 공식적으로는 수사기관 감청이 대부분 인터넷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필수적인 매체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인터넷 감청에는 인터넷 회선 전체를 싹 쓸어오는 패킷 감청이 포함되어 있다. 이메일은 물론이고 시시콜콜한 웹서핑까지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패킷 감청은 그 위헌성 때문에 헌법심사 중이지만, 국정원은 지메일을 감청해야 한다는 이유로 패킷 감청의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모바일 생활을 장악한 스마트폰의 패킷까지 감청되고 있다면, 우리에게 이미 통신의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인망식 '기지국 수사, 2010년 3800만개 전화번호 털었다'

싹 쓸어오는 저인망식 수사기법은 이동전화가 가장 심하다.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그 지역 기지국을 몽땅 터는 '기지국 수사'가 보편화되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통계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2010년 기지국 수사는 무려 38,706,986건에 달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26일 민주통합당 예비경선 당시 금품수수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민주당 관계자는 물론이고 기자들까지 관할 휴대전화 기지국에 신호가 잡히는 모든 휴대전화를 털기도 했다. 혐의가 없는 이들의 휴대전화까지 모두 뒤지는 기지국 수사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이 계속되어 왔지만, 경찰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지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는다. 일 년에 삼천구백만에 달하는 당사자들이 자기가 털리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사찰에서 제일 논란이 되는 것은 신상정보를 터는 통신자료 제공의 문제이다.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기 때문에 사법경찰관이면 누구라도 요청하여 가져갈 수 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이나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참으로 신상 털기 좋은 나라이다. 이런 방식으로 통신자료를 제공받는 기관은 군 수사기관, 국토해양부, 관세청, 법무부, 노동부, 식약청 등 사법경찰권이 부여된 행정부처를 망라한다. 아마 국무총리실에서 권한에도 없는 민간인 사찰을 할 때 이런 방식으로 당사자들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제공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공안 분위기가 기승을 털던 지난 2009년에는 6,879,744 건의 전화번호와 아이디가 털렸고, 2010년에는 7,144,792 건이 털렸다. 그 대부분은 경찰이 턴 것이었다. 2011년에는 모두 5,848,991건의 신상정보가 제공되었고, 국민 열명 당 한번은 털렸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오남용이 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국정원과 군수사기관 등 기타기관의 비율이 1.1% 에서 1.8%로, 4.6% 에서 8.4% 로 야금야금 늘어가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군수사기관의 비율은 전반적으로 늘어 났다. 2011년 전체적으로 군의 감청은 48건에서 61건으로 늘었는데, 수치상으로는 별 것 아니어 보이지만 2006년 이래 최고치이다. 그리고 '기타기관'으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통화내역이나 IP주소를 추적하기 위한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수치는 2011년 396,991건으로 지난해 21,104 건과 비교하여 급증하였다. 이 수치가 군수사기관 단독에 의한 것이어도 문제이고, 이 기관 저 기관에서 마구 털었다면 더욱 큰 문제이다.

'일상적 사찰', 우리가 대상이다

지난 3월 민간인 사찰 파문이 한창일 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2009년 블로그 때문에 경찰에 불려갔었다고 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 때문이었는데, 불려간 사람은 그게 죄가 된다고 생각하고 위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욕했다고 처벌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고, 결국 경찰이 문제 삼은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었다. 무단으로 음악파일을 올렸는데 그게 큰 죄라는 것이다. 경찰은 선심 쓰듯 선처해 줄테니 블로그를 닫으라고 말했고 그 사람은 블로그를 닫았다.

민주당이 패배한 총선 결과를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이들은 "사찰보다 막말이 중요했던 거야?"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사찰이냐 감찰이냐"로 논쟁 구도를 좁힌 것은 민주당 스스로였다. 여당에서 "불법사찰금지법"을 들고 나올 때 그보다 제대로 된 제도적 개선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을 보면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사찰을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의 문제로만 간주하는 경향도 답답하다.

김종익 씨는 평범한 기업인이었다. 사찰은 이미 그렇게 평범한 이들의 문제가 되었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 이전과 이후의 차이이다. 경찰은 상시적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정부를 비판한 게시자들을 소환해 왔다. 김종익 씨의 경우는 경찰이 아니라 국무총리실이어서 문제가 커졌지만, 경찰이라고 마구 사찰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광우병에 대해 글을 썼다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글을 썼다가 불려간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심지어 일본 원전 사고 당시 한국은 편서풍 때문에 방사능 물질이 넘어올 수 없다는 기상청 발표와 반대되는 주장을 올렸다가 소환된 사람도 있었다. 미네르바의 '허위의 통신'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 난 후에도 정부의 주장에 반대되는 의견들은 종종 '허위'로 간주되어 형사소추 대상이 되었다. 경찰은 실제로 처벌할 수 없는 이들을 소환하여 회유하기도 하고, 게시물 하나를 핑계로 일 년 치 이메일을 압수하여 사상검증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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