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68일을 맞은 4월6일, 김재철 사장이 “제 진의가 굴절없이 전해지기를 바란다”며 MBC 사원들에게 간곡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파업으로 인한 해고자가 잇따라 나오고 추가 징계가 예고돼 있는 엄중한 MBC 상황과는 달리, 편지의 제목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우리 모두의 봄을 위하여”란다.

김 사장은 차분한 어조로 현 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입장을 밝혔지만, 아쉽게도 68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MBC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 능력은 극히 떨어져 보인다. 왜 구성원들이 ‘김재철 퇴진 투쟁’에 나선 건지, 여전히 이 소박한 상식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공정방송을 실현하기 위한 사원 여러분의 결기에 찬 행동 그 자체를 타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30여 년 MBC에 몸담은 한 사람의 언론인으로서 저 또한 불편부당한 언론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김재철 MBC 사장 ⓒMBC
김 사장은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사원들의 행동 자체를 타박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지만, 실제 김 사장이 보인 행보는 이와 달랐다. 소송, 가처분, 고소 등 타박을 넘어 겁박, 협박으로 느낄 여지가 충분한 일들이 지난 68일 동안 MBC 안에서 벌어졌다. 무엇보다 언론인으로서 불편부당한 언론의 정도를 걷기 위해 “공정방송”을 외쳤던 구성원들은 현재 해고, 정직, 감봉 등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았다. 더군다나 이 같은 징계에 최종 결재를 한 사람은 김 사장 본인이 아니었나.

“정권의 나팔수니 낙하산이니 하는 말도 관련 법령에 의거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임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MBC의 역대 사장은 모두 같은 법령에 의거해 선임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공영방송 MBC의 역대 사장은 모두 정권의 나팔수였고, 낙하산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김 사장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공모 절차를 통해 절차상으로는 아무런 하자 없이 선임됐다. 하지만 유독 김 사장 선임 과정에서만 유감스럽게도 “청와대 쪼인트” 등 김 사장이 핵심 권력과 연관이 있음을 증명하는 증언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김 사장 스스로가 ‘정당한 절차’라고 말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었던 김우룡씨가 직접 언론 인터뷰에서 “김재철은 청와대 뜻과 무관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였다”고 증언했던 게 최근이다. 또, 어느 역대 사장 보다 노골적이었던 김 사장 체제의 불공정·편파 방송은 김 사장 스스로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실상을 구성원들에게 또렷하게 증명한 셈이 되지 않았나.

“얼마 전 노조에서 저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공개하며 마치 제가 대단한 도덕적 흠결을 가진 것처럼 밝힌 적이 있습니다. … 이미 회사 특보를 통해 누차 밝혔듯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평생 동안 지켜오고 있는 소중한 도덕적 가치에 상처를 주려는 행동에 크게 실망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후배들의 퇴진요구에 상처를 받았다는 김 사장의 마음.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말 그토록 지키려고 노력했던 가치에 상처를 입었다면 김 사장 스스로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둘러싼 논란들은 김 사장 혹은 MBC 스스로가 사용 내역을 떳떳하게 밝히면 모두 해결될 일이다. MBC의 관리 감독 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요청에 조차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자료를 꽁꽁 싸매고 있으니 의혹만 더 커져가는 게 아닌가. 애꿎은 구성원들만 고소하는 것이 진정 사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의 방안일까?

김 사장은 편지에서 그 나름의 ‘허심탄회한 소회’를 가감 없이 밝혔지만, 아쉽게도 MBC 구성원들이 진짜 알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노조의 파업 돌입 이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던 ‘청와대 쪼인트’ 발언을 비롯해 법인카드 사용 내역에 적절한 해명도 없었다. 더불어, MBC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친정부성향 보도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외면했다.

김 사장은 편지 마지막 부분에 “공영방송 MBC가 그려내는 미래상이 여러분 모두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고, 시청자에게는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참다운 우리 모두의 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며 희망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당장, 오는 9일 예정된 MBC 인사위원회에서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17명에 대한 징계가 논의된다고 한다. 대량 징계가 결정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12년 4월, “언론자유”를 외치며 봄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린 채, MBC의 봄을 진정 가로막고 있는 겨울바람은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