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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 - ‘배틀 로얄’보다 진일보한 세계관[블로그와] 디제의 영화와 책 이야기
디제 | 승인 2012.04.06 10:20

   
 
청소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헝거 게임’에 선발된 여동생을 대신해 자원한 16세 소녀 캣니스(제니퍼 로렌스 분)는 자신을 포함한 24명의 참가자들과 캐피톨의 아레나에서 대결합니다. 고향 12구역에서 함께 선발된 소년 피타(조쉬 허처슨 분)와 서먹하던 캣니스는 점차 가까워집니다.

수잔 콜린스의 소설 3부작을 영화화하기로 결정된 4편 중 첫 번째 영화인 ‘헝거 게임’은 가상의 국가 판엠을 배경으로 파멸적인 전쟁 이후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인간의 파괴 및 살육 본능을 12세에서 18세 사이의 10대 소년소녀들의 살인 게임을 통해 해소한다는 설정에 기초한 SF 판타지 영화입니다.

초반에는 살인 게임을 비롯한 판엠의 현실에 대해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42분의 러닝 타임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60분 정도를 세계관 구축에 공들이기 때문에 불합리하며 잔혹한 게임에 열광하는 시대를 묘사한 세계관은 상당한 설득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10대 소년소녀가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살인 게임으로 내몰린다는 ‘헝거 게임’의 설정의 근간은 타카미 코신의 소설을 후카사쿠 킨지가 영화화한 ‘배틀 로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잔혹한 고어 영화였던 ‘배틀 로얄’에 비해 ‘헝거 게임’은 PG-13등급을 받은 할리우드 영화인만큼 폭력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청소년들이 서로를 살해하는 장면은 카메라 워킹과 편집을 통해 세세하게 묘사하기보다 생략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애당초 무한 경쟁에 내몰린 10대와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등에서도 묘사된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살인 게임이라는 점에서 ‘배틀 로얄’과 ‘헝거 게임’은 공통점을 지녔지만 10대가 내몰린 경쟁의 원인이 무엇을 은유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이가 엿보입니다. ‘배틀 로얄’은 일본의 입시 제도에 대한 풍자로 보이지만 ‘헝거 게임’은 자본주의가 낳은 무한 경쟁의 풍자로 보입니다. ‘배틀 로얄’이 풍자하고자 하는 일본의 입시제도 또한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이기는 하지만 ‘헝거 게임’은 ‘배틀 로얄’보다 주제 의식이 거시적이며 세계관 또한 상대적으로 방대합니다.

소년소녀들의 살인 게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배틀 로얄’과 달리 ‘헝거 게임’은 살인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기성세대의 독재 자본에 초점을 맞춥니다. 젊은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기득권 세력과 살인 게임의 생중계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대중 매체에 대한 풍자라는 점에서 ‘헝거 게임’은 진일보한 작품입니다.

살인 게임과 참가자들의 사랑의 생중계에 열광하는 판엠 국민들의 모습은 3S(스크린, 섹스, 스포츠)에 함몰된 현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폭력적이나 아니냐의 차이는 있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스타와 스포츠에 열광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현실을 빗대고 있는 것입니다. 살인 게임을 통해 전쟁 욕구를 해소한다는 설정은 4년에 한 번 씩 개최되는 건담 파이트를 통해 전쟁을 대신한다는 ‘기동무투전 G건담’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월드컵,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의 본질을 은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명 씩 탈락하는 헝거 게임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슈퍼스타 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유사하며 야생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수렵과 채집을 통한 생존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인간 대 자연’과 같은 리얼리티 서바이벌 게임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캣니스는 영리하게도 자본주의적 속성을 활용해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대중 매체에 열광하는 21세기의 천박한 자본주의 속성을 꿰뚫어본다는 점에서 ‘헝거 게임’이 ‘배틀 로얄’의 아류작 정도로 치부되는 것은 과소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배틀 로얄’의 청출어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헝거 게임’에는 주연 제니퍼 로렌스의 이전 출연작을 연상시키는 요소들도 엿보입니다. 그녀가 분한 주인공 캣니스가 폐인과 다를 바 없는 홀어머니 및 자신만을 의지하는 동생과 함께 사는 가난한 집안의 소녀 가장이라는 설정은 제니퍼 로렌스의 주연작 ‘윈터스 본’을 떠올리게 합니다. 캣니스를 짝사랑하는 소년 피타는 속물적인 인물에서 속 깊고 진실한 연인으로 변모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인데 그의 장기인 숲에 동화하는 분장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분했던 미스틱의 초능력과 닮았습니다.

국내 극장 개봉 중인 ‘헝거 게임’의 말벌의 등장 장면에서 한글 자막의 일부가 누락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색합니다.

영화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관의 불꺼지는 순간과 책장을 처음 넘기는 순간을 사랑한다.

디제  tomino@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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