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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불법사찰보다 오락기 된 방송이 더 문제[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2.04.04 09:53

지금은 라면하면 N사를 떠올리지만 원래는 S라면이 더 익숙했다. 보통은 아류는 원조를 꺾지 못하는 법인데, 과거 어떤 사건으로 인해 S라면은 졸지에 파산지경까지 몰리게 되고 대신 N라면이 부동의 1위 메이커로 자리를 굳히게 됐다.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라면의 종가 S라면을 벼랑 위에서 밀어버린 사건은 소위 공업용 우지 파동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은 8년이 지난 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S라면은 이미 회생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1989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20년도 더 지난 현재 새삼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연예인 불법사찰과 아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서는 모두들 수긍했지만 S라면을 순식간에 나락을 떨어뜨린 것은 아주 단순했다. 바로 ‘공업용’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지를 구분하는 데 공업용이란 단어는 없었다. 마치 해방 후 빨갱이란 단어 하나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던 것처럼 공업용 우지라는 단어 하나의 위력이 전국을 공포와 분노로 들끓게 했던 것이다.

검찰이 주장하고, 언론이 확산시킨 정체불명의 용어는 그렇게 쓰나미처럼 한 우량기업을 뿌리째 흔들어버린 것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지금 뜨거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연예인 불법사찰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드러난 MB정부의 민간인불법사찰에는 소위 좌파 연예인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정권 때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신조어 좌파 연예인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에 공업용 우지라면 같은 효과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물론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좌파 연예인'은 '공업용'과 같은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 파일롯방송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편성에서 제외된 비운의 명작 김제동의 오마이텐트
김제동이라는 잘 나가는 개그맨이 노무현 대통령 노제에 사회자로 섰다는 이유로 좌파 연예인으로 분류되어 사찰대상이 되었고, 전두환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5공 시절 KBS기자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퇴출되었다. 또한 청와대에 가서 쪼인트를 까였다는 MBC 사장은 그 말을 한 방문진 이사장을 고소 고발한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대신 손석희, 김제동 등을 쫓아냈다.

불법사찰도 묵과할 수 없는 중대범죄이지만 그보다 더 큰 중범죄는 언론의 기능을 거세한 방송장악이다.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100분토론이 죽었고, PD수첩은 와해됐으며 세계의 동향을 심도 깊게 다루던 W는 폐지되었다. 뉴스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현재 MBC와 KBS 그리고 YTN 노조가 연대하여 언론의 자유를 위해 장기 파업 중에 있다. 불법사찰로 인해 방송파업의 의미와 중요성이 더욱 크게 다가선다. 방송이 제 기능을 했다면 정부의 불법사찰은 진작 포착되고, 고발되었을 것이다. 이 중대한 정부의 범죄가 임기를 불과 몇 개월 남기고서야 밝혀지는 것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지금 불법사찰에 분노하는 만큼 방송사 연대파업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뉴스데스크를 보면 된다. 놀랍게도 뉴스데스크는 이 불법사찰에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물타기용 타이틀을 뽑았다. 연예인 사찰 부분은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정부여당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동조, 옹호하기에 급급한 뉴스였다.

눈을 씻고 달력을 다시 보게 한 뉴스였다. 도대체 때가 1989년인지 2012년인지 분간키가 어려웠다. 가카 이전에 가카의 나팔수들부터 치워야 나라가 제대로 설 것이다.

그러지 않고 총선, 대선을 치른다면 결과는 예기치 못할 방향으로 흘러버릴 수도 있다. 불법사찰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제대로 된 뉴스가 없는 현실이라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민간인, 연예인 불법사찰보다 웃고 떠드는 오락기로 전락해버린 방송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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