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민언련 모니터] 3월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건물 앞에 간이기자실이 마련됐습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출근길 간이기자실에 들러 기자들과 차담회를 했고, 기자들도 취재보다는 담소에 가까운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같은 날 종편4사 시사대담프로그램과 저녁종합뉴스, 다음 날 신문지면에는 윤 당선자와 기자들의 차담회 소식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3월 23일)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기자회견이 아닌 만큼 현안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는 당선자 측 요청을 받아들인 기자들이 윤 당선자에게 가벼운 질문만 했다는 겁니다. 취재기자는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통의동과 삼청동으로 분리돼 있는데, 대부분 기자들이 삼청동에 있어 통의동에서 현안질문이 이뤄질 경우 참석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상견례 수준의 가벼운 질문만 해달라’는 사전요청이 있었다고 추가 설명했는데요. 주영진 앵커는 ‘당선자 측 요청이 있어도 현안에 대한 질문은 해야 되지 않을까’, ‘다른 곳에 있는 기자들에게는 취재내용을 공유해주면 되지 않겠나’라며 문제의식을 드러냈습니다.

‘가벼운 질문 사전요청’ 보도 전무

종편4사 시사대담 ‘윤석열 차담회’ 방송시간 및 ‘사전요청’ 보도여부(3/23) ⓒ민주언론시민연합 (※ 시간은 31초부터 1분으로 올림하여 계산했으며, 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하여 계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당선자와 기자들의 차담회가 진행된 3월 23일 종편4사 시사대담프로그램 JTBC <정치부회의>,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채널A <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와 지상파3사‧종편4사 저녁종합뉴스, 다음 날인 3월 24일 6개 종합일간지‧2개 경제일간지 지면보도를 살펴봤습니다. 관련 보도를 하지 않은 지상파3사를 제외하고는 ‘당선자 기자실 깜짝 방문’을 강조하고 ‘격의 없는 소통’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도가 주를 이뤘습니다. 당선자 측의 ‘가벼운 질문 사전요청’은 어디에서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사 저녁종합뉴스(3/23)·신문지면(3/24) ‘윤석열 차담회’ 보도건수 및 ‘사전요청’ 보도여부 *방송단신 0.5건 처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종편 대담, ‘윤석열 소통의지’ 강조

윤석열 당선자 ‘즉석 차담회’ 강조한 종편4사(3/2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JTBC‧TV조선‧채널A‧MBN

종편 시사대담에서는 간이기자실 마련을 지시한 윤석열 당선자의 선의와 소통의지를 강조하는 화면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종편4사 중 차담회 소식을 가장 오래 전한 채널A <뉴스TOP10>(3월 23일)은 다른 주제 대담에 앞서 간이기자실과 차담회 모습만 따로 담은 영상을 방송 시작할 때 별도로 내보냈습니다. 윤 당선자 지시로 간이기자실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김은혜 대변인 설명이 나오며 윤 당선자의 취재지원 ‘선의’가 강조됐습니다. 기자실을 둘러보고 인사를 건네는 윤 당선자에게 기자가 “티타임 한번 해주세요”라고 말하자, 윤 당선자가 “어, 티타임? 우리 커피 한 잔 합시다”라고 답하고 기자들의 “우와” 감탄사와 함께 차담회 모습이 소개됐습니다.

차담회가 즉석에서 이뤄진 장면은 종편4사 시사대담에 모두 등장했습니다. 윤 당선자 선의와 소통의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도 냈는데요. 그러나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3월 23일)에 따르면, 기자들은 윤 당선자의 기자실 방문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당선자 측에서 윤 당선자 방문을 알리며 ‘현안 말고 상견례 수준의 가벼운 질문’을 사전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자사 기자들이 인수위원회 현장취재에 나가 있는 종편 시사대담 역시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지만, 대담 중 ‘당선자 측 사전요청’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3월 24일 대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침은 강아지와 함께” “김치찌개 끓여 주겠다” 시시콜콜 자막

시시콜콜 대화 내용 자막으로 보여준 종편3사(3/23) *TV조선‧채널A‧MBN순

기자들이 가벼운 질문만 해달라는 당선자 측 사전요청을 받아들인 탓에 대화는 윤석열 당선자 혼밥 여부, 취임 후 기자들에게 김치찌개 요리 약속 이행 여부 등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나마 현안에 가까운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 시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인수인계 여부였지만 그마저도 짧은 수준에 그쳤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 중차대한 현안이 있고, 종편 시사대담에서도 연일 ‘신구권력 갈등과 대립’ 구도로 전하고 있는데 차담회 대담 중 이러한 지적과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TV조선‧채널A‧MBN 종편3사는 “아침은 강아지와 함께…아내는 안 먹어”, “새 청사 가면 김치찌개 끓여주겠다”와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을 자막으로 내보냈습니다.

기자 A : 진짜로 혼밥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 아침은 혼자 가끔 먹죠. 근데 아침도 혼자는 안 먹어. 강아지랑 같이 먹지.
(중략)

기자 B : 예전에 취임하시면 기자들 돼지고기 김치찌개 끓여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 여기서 할까, 여기서?
기자 C : 좋아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 청사 마련해서 가면은 제가 하루 구내식당에서 저녁에 한 번 양 많이 끓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같이 한번 먹읍시다.

언론과 적극 소통=이명박 ‘프레스 프렌들리’?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3월 23일)에서는 윤 당선자 행보가 과거 이명박 정부 ‘프레스 프렌들리’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신효섭 앵커 : 프레스 다방, 이런 얘기가 나오니까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들하고 상당히 자주 접촉을 했던 이른바 ‘프레스 프렌들리’, 그것이 연상된다고 하죠?

장윤정 TV조선 기자 : 네, 특히 기자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데요.

윤 당선자의 소통의지를 칭찬하며 이명박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를 언급한 것인데요. 먼저, 당선자 측이 가벼운 질문을 사전요청한 뒤 기자들이 수락해서 이뤄진 차담회를 과연 격의 없는 대화와 소통의지로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언론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언급하며 이명박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기자들과 잦은 스킨십을 하고 친화력을 높인다며 ‘프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는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일간지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및 홍보수석,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 주요 인사 출신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라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은 보수성향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하는 언론자유순위까지 큰 폭의 하락을 보이며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된 바 있습니다. 올해 MBC <PD수첩>(2월 8일)에서 국정원 언론사 사찰문건을 공개하며 이명박 정부가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출연진을 퇴출하고 프로그램 출연자 및 방송내용까지 간섭했으며, 언론장악을 위해 다수 국가기관을 동원한 정황을 보도했는데요. 이처럼 ‘최악의 언론장악’으로 비판받는 이명박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를 ‘언론과 적극적 소통’의 예시로 드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종편 ‘즉석 티타임’, 신문 ‘깜짝 방문’ 강조

종편4사 저녁종합뉴스에서도 윤석열 당선자 차담회 소식이 보도됐지만, ‘풍산개 인수인계’ 소식에 집중한 JTBC 외에는 모두 ‘즉석 차담회’와 ‘윤 당선자의 김치찌개 약속 이행’ 내용을 전했습니다. 윤 당선자 측 사전요청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MBN <정치톡톡/취재진과 티타임>(3월 23일 노태현 기자)에서는 “(이날 차담회는) ‘현안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기자들) 요청에 즉석에서 이뤄진 건데,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고 전했는데요. MBN을 비롯한 종편4사는 당선자 측 사전요청과 기자들의 수락 과정을 모두 알고 있었을 텐데도 보도하지 않고, ‘즉석 차담회’만 강조했습니다. 3월 24일 추가 보도를 내놓은 JTBC에서도 당선자 측 사전요청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 차담회’ 신문지면 사진기사(3/24)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6개 종합일간지‧2개 경제일간지 지면보도도 종편 시사대담‧저녁종합뉴스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와 매일경제‧한국경제는 사진기사로도 현장 분위기를 전했는데요. 사진 속 차담회 풍경은 시간 순서대로 찍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비슷한 구도입니다. 신문지면 보도도 당선자 측 사전요청 사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으며 ‘당선자 깜짝 방문’을 강조했습니다. 3월 25일에도 사전요청 사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당선자 깜짝 방문’ 강조한 신문지면(3/24)

‘박근혜 병풍’ 된 기자들, 재연되나

윤석열 당선자 측이 가벼운 질문을 사전요청하고, 기자들이 수락했다는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당선자와 기자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특히 기자들에 대한 비판이 거셌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정치권력의 언론장악으로 인한 피해는 언론인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갔던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외압에 의한 왜곡·축소보도도 모자라 세월호 보도 참사까지 일어났죠.

그런 와중에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새해 첫날 급작스레 ‘기자간담회’를 주최했는데 기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만 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 기자간담회는 30분 전 긴급 공지돼 기자들의 노트북 반입을 막고 대화녹음도 금지했고 사진과 영상도 모두 청와대 전속기자가 촬영하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리가 될 게 뻔했지만 청와대 기자단은 이를 거부하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기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도 못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시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끌어내지도 못했습니다. ‘병풍처럼 서 있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랬던 기자들이 이번에도 윤석열 당선자 측의 ‘가벼운 질문 사전요청’을 수락하고 당선자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당선자 소통의지를 칭찬하는 보도를 냈습니다.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3월 23일)에서 주영진 앵커는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인이다 보니 좀 어렵게 생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기자는 질문하는 게 기자고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기자는 기사를 보는 시청자와 독자들을 위해서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질문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게 기본원칙”이라며 인수위원회 취재기자들의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기자는 시민들의 눈과 귀를 대신합니다. 기자가 당선자 요청을 받아들여 가벼운 질문을 던지고, 이러한 사전조율 과정마저 보도하지 않으며 당선자를 미화한다면,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3월 23일 JTBC <정치부회의>,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채널A <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 / 3월 23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 3월 2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시간은 31초부터 1분으로 올림하여 계산했으며, 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하여 계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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