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대선 끝난 지 19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가 만찬 회동을 하기로 했다. 당선자와 현직 대통령이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려웠던 때가 있었는지 싶다. 이런 정치가 되풀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회동의 걸림돌은 감사위원 인사 문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감사원장의 제청권 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면서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애초 청와대도 입맛대로만 인사를 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협의의 방식과 내용을 두고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명분상으로만 보자면 대통령은 감사위원이 공석인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만 후임인 대통령 당선자의 의사를 고려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에서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감사위원회 다수가 어느 쪽이 되느냐에 따라 정치적 부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보복성 감사를 막아야 하고 당선자와 인수위 측은 ‘제2의 탈원전 감사’를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다.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애초에 감사원이라는 기관의 특성상 ‘지나간 권력’의 편을 들어 이전 정권 사업에 대한 감사를 막거나 현 정권의 역점 사업에 재를 뿌리는 식의 태도를 갖는 것은 어렵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에 대한 감사원의 입장 표명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자 측의 현실 인식은 좀 더 앞서가 있다. 감사원의 입장은 결국 윤석열 당선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현 정권의 감사위원 임명은 어렵다는 것인데, 역으로 말하면 윤석열 당선자가 현 정권의 모든 감사위원 인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취임 이후 직접 인사권을 행사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즉 대통령과 당선자의 회동은 윤석열 당선자 측이 감사위원에 대한 인사권을 실제로 확보한 뒤에야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는 이후에 지켜볼 일인데, 그건 별론으로 하더라도 애초 양자간 회동이 이런 식으로 활용돼야 할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대통령과 당선자 간 회동이 신구권력간 현안을 둘러싼 협상 타결을 모색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전임 대통령이 후임을 위해 백악관 책상 서랍에 편지를 남겨 두고 간다는 전통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처럼 당선자와 퇴임을 앞둔 대통령 간의 만남도 진행된다. 이 때만큼은 전임자와 후임자끼리 사이가 좋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런 회동과 별개로 권력의 교체기에는 어떤 경우든 정치적 갈등이 빚어진다. 대통령이 법안이나 시행령에 서명할 때 당선자가 부정적 평가를 한다든지, 아니면 특정 인사를 놓고 대립한다든지 하는 경우다.

이런 대립이 현재진행형임에도 대통령과 당선자가 만나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사생결단의 정치적 대립이 공동체의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양자 간 회동은 정치적 분열 상황에서도 국민을 안심시키는 통합적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 것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이런 기회마저도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정치를 보여준 셈이다. 이런 상황은 떠날 준비를 하는 대통령보다 이제 취임을 준비하는 당선자에게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이미 ‘정권재창출 실패’라는 형태로 국민적 평가가 끝났다. 그러나 윤석열 당선자는 향후 5년의 통치 철학을 이제부터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다. 국민들은 이번 일을 향후 5년의 첫 단추로 볼 것이다. 잘 끼웠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와 함께 대통령 회동 지연은 과거 보수정권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일방적 통치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당선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유권자도 과거 보수정권이 했던 것과 같은 통치의 부활을 바란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새로운 권력에 기대하는 것은 국정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정파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국민적 통합을 모색하는 ‘지도자다운 정치’이다. 이를 통해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고 이걸 다시 바람직한 정치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악순환을 걱정해야 할 때 같다. 악순환이란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집권 초기 국정운영 동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수를 감행해 더욱 일방적이고 분열적인 국정으로 일관해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다시 되돌아가면 된다. 대통령과 당선자의 회동을 그러한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홍근 원내대표 선출 이후 분위기를 보면 ‘검수완박’ 등 그동안 해오던 전형적 주장을 다시 고집하며 강대강 대립을 이어가겠다는 분위기다.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이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견제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의무이다. 하지만 이것이 흠집을 내기 위해 괜한 시비를 거는 것으로 비춰지거나 밑도 끝도 없는 발목잡기로만 비춰진다면 대선 패배를 만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질 수 있다. 이건 단지 새 정부에 협조를 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나 반성하고 변화했느냐’의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변화를 실천으로 보여주려면 새로운 정권이 하겠다는 일 중 합리적 수준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선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 의사를 밝혀야 한다. 또, 반대를 하더라도 합리적 대안을 갖추고 국민을 설득한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양쪽 모두 현실에 안주할 때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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