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내가 사는 곳은 봄이 늦게 찾아오고 겨울이 빨리 오는 지역이라 다른 지역에서 꽃이 지고 나면 그제야 피기 시작한다. 계절 감각이 둔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어제 서울 나갈 일이 있었다. 차에서 보니 햇살의 빛깔과 질감이 달랐다. 살갗에 닿는 햇볕이 따뜻한 봄이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나는 봄과 어울리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기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를 보면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푸른 싹이 거북이 등딱지 같은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비롭다. 햇살이 가장 먼저 닿고 민감한 개나리엔 벌써 싹이 움트고 있었다. 언뜻 노란색을 보았다고 느낀 건 봄을 기다리는 나의 착각일 것이다.

사실 봄은 이미 2월에 시작되었다. 추위가 사그라지지 않은 2월에 입춘, 봄으로 들어섰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싹이 트는 우수를 지나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볼 수 있는 경칩에서 본격적으로 낮이 길어지는 춘분으로 들어섰다. 봄이다, 라는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하루 중 해가 점유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새해의 시작, 새로운 것의 시작은 1월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인 시작, 새롭게 시작되는 시기는 3월이다. 3월이야말로 진정한 새로운 시작의 달이다. 이건 자연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되며 특히 학생에겐 숙명과 같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3월 한 달에 나의, 너의 1년의 운명이 결정된다. 3월에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고 새 학년을 맞고,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새로운 학교생활을 앞두고 아이들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실제로 고민 상담 사이트를 보면 친구 사귀게 해 주세요, 라는 소망이 많고 어떻게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나요, 라는 질문도 많다. 3월 한 달 동안 같이 밥 먹고, 같이 등교하고, 같이 놀 친구가 정해진다.

첫째 주에는 누구와 친해질 것인지, 어떻게 친해질 것인지 살피고, 관찰하는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분위기와 상황 판단이 끝나면 끼리끼리 무리를 만들고 1년 동안 함께할 친구가 된다. 이 관계의 유효 기간은 1년이다. 놀랍게도 1년이 지나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면 서로 모르는 남처럼 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친구로 지내는 기간이 짧지만 다시 학년이 올라가 만나게 된다면 또 친구가 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의 관계 맺음이 그렇다. 내가 살던 시절과 180도 다른 관계 맺음이다. 각 반을 흩어진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같이 놀던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나와 지금의 아이들이 다르다고 하여도 여전히 친구를 사귀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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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랬다. 나는 친구를 사귀려고 애쓰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노력해야 친구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려운 과제였다. 내가 4학년 때까지 다니던 학교는 학년마다 반이 세 반밖에 되지 않았고, 1학년 때 반이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었다. 전학하기 전 4학년 때까지 계속 같은 아이들을 보았다. 이 말은 친구가 없으면 졸업할 때까지 계속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들이 나와 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생일에 초대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친하지도 않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만 외톨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서울로 이사와 정신없는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오전반, 오후반이라는 새로운 신기한 세계가 시작되었다. 오전에 가기도 하고 오후에 가기도 했다. 아이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점점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아마도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원격 수업 기간이 길었다. 아이들도 엄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답답하지만 제시간에 맞춰 생활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엄마도 답답하고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한 1학년 엄마는 아이와 종일 있는 시간이 힘들다며 이렇게 말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조금은 할 수 있었는데 아주 잘하지는 못했거든요. 학교 가서 글 읽고 쓰는 것 배우면 된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원격 수업을 하는 거예요. 읽고 쓰는 것을 고스란히 집에서 내가 가르쳐야 하더라고요. 수업하고,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가르쳐야지. 너무 힘들었어요. 글을 가르치고 수업에 참여하게 하고 과제 점검하고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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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수업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고 대부분 집에서 수업하던 아이들이 등교하기 시작했다. 입학을 했지만 며칠 다녀보지 못하고 2학년이 된 아이들은 신입생과 같은 마음으로 등교한다. 공부도 어렵지만 친구를 사귀고 또 친해지기까지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 선생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어갈 수 있도록 세심히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봄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에 움트는 새싹만큼 경이롭다.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응원한다.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길.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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