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 대학로연극이 아닌 연극을 통해 생각을 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연극이 나왔습니다. 난해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의 모습을 연극에 대입해 보면, 나는 과연 얼마나 성실하고 순수한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연극을 보기 어려운 대학로 연극가에 막을 올린, 조금은 심도 있고 철학적인 연극으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연극입니다.

줄거리

서민들의 동네 홍익3동. 도서대여점 ‘책사랑’을 운영하는 시인 민효석은 술값, 담뱃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동네 정육점 사장 오동탁에게 매주 정기적으로 시를 가르친다. 도서 대여점은 심각한 운영난에 빠져 월세가 밀린 지 오래다. 효석의 아내 한소영은 동탁에게 효석의 일자리를 부탁하나 평생 시인으로만 살아온 효석에게 육체노동은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삶의 궁핍에 찌들어 시마저도 써내지 못하는 효석은 일상의 곤궁을 잊기 위해 포르노 동영상에 빠져드는데…

책방은 세상에 대한 민효석의 바리케이트 그리고 외부인 오동탁

무대 위 책방은 수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곳은 민효석과 한소영의 공간입니다.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책과 함께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어느 날부터 그곳에 정육점 주인 오동탁이 들어오면서 그는 이상야릇한 자괴감 그리고 위선을 가지게 됩니다.

월 2000만 원을 버는 정육점 사장, 시를 배우는 그의 수강료로 월세를 충당하는 신세. 오동탁은 책방 시인부부의 고상함에 매료되어 시를 배우면서 삶의 작은 즐거움을 만들어갑니다. 시인부부는 무식한 오동탁보다 우월하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오동탁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며 경계심을 가지게 됩니다.

변태는 현실 속에서 점점 변하는 내 모습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고립된 책방 안 민효석에게 세상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 그리고 시를 통한 삶 정도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민효석과 시를 통해 변화를 꿈꾸는 오동탁을 통해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끊임없이 연극과 나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야하는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민효석과 한소영의 무능하게 점점 가라앉는 삶, 그 속에서 점점 비교되는 오동탁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시인 부부에게는 같지 않아 보이지만 어느새 그들은 그런 변화마저도 아닌 척하면서 힐끔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보다 별로인 사람이 잘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정하지 않은 그 심리가 위선임을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꽁꽁 숨겨놓지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난해한, 하지만 지극히 사실적인 우리 속 위선

연극은 시종일관 어려운 이야기를 난발합니다. 특히 그들의 시를 듣고 있으면 어렵기만 합니다. 과연 그런 시가 정말 시일까요? 사실 수준에 맞게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린 못 알아들어도 유식한 말이 난무하고 난해한 언어로 점철된 시 한 편이 마치 나의 수준을 드높인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민효석은 오동탁의 시집 출판을 돕겠다 말하고 한소영은 그러지 말라고 말립니다. 민효석은 그저 돈 많은 친구를 위한 립서비스이고, 한소영은 그런 장난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잘난 두 사람이 고상을 떠느라 세상의 흐름을 몰랐던 걸 인정하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위선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냥 즐기는 연극은 아닙니다. 인생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변태는 무엇을 변하게 하기 위한 변태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조금 진지한 자세로 귀를 기울여 연극을 본다면 우리 인생의 변태를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대중문화 이야기꾼 홍반장입니다
블로그 홍반장의 꿈 http://www.cyworld.com/woogi002000
운영하고 있고요, 대중문화 평론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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