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진경] 90년대 영화계 최고 스타였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열연으로 주목받은 <피그>(2021, 감독 마이클 사노스키)는 가족처럼 여기던 소중한 돼지를 잃은 남자 롭(니콜라스 케이지 분)이 돼지를 찾기 위해 15년 전 도망쳤던 도시 '포틀랜드'로 돌아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시놉시스를 통해 화끈한 복수 활극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트리는 놀라운 반전 전개를 보여준다.

영화 <피그> 스틸 이미지

자신의 소중한 돼지를 앗아간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칼을 드는 롭의 원래 직업은 요리사였고, 지역 요식업계 종사자 및 주민들에게 두터운 신망과 존경을 받았던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몇몇 복선을 통해 암시가 되는 사건으로 도망치다시피 외진 숲속으로 떠난 그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진귀한 식재료로 취급되는 트러플(송로버섯)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롭의 생계 수단으로 등장하는 트러플은 실제 극 초반 비중 있게 등장하는 돼지(혹은 개)처럼 후각이 발달한 동물을 이용하여 채취하는 방식으로 유명한데,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은 트러플 돼지를 가족처럼 여기며 조용히 살고자 했던 은둔 고수의 숨겨진 비밀을 조심스레 파헤친다.

영화 <피그> 스틸 이미지

한때 포틀랜드 요식업계의 화려한 셀럽으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무명의 트러플 채취꾼으로 살아가는 롭은 삶을 통찰하는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불교 철학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떠올리게 하는 롭의 대사. 롭은 음식과 식자재를 통해 부와 명예를 드러내는 과거 혹은 현재 지인들에게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얼마나 덧없고 가치가 없는지를 설파한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잃은 남자가 그 사건을 발단으로 자신의 아픈 과거를 반추하고 주변인들까지 감흥시키는 여정이 관객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다다를지는 의문이다. 셀러브리티 문화를 꼬집기 위해 다양한 설정을 영화 속에 녹인 아이디어가 군데군데 돋보이긴 하나, 여운 대신 공허함을 남기는 마무리가 아쉽다.

감독의 연출 데뷔작임에도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하나, 야심에 비해 부족한 각본, 연출을 메꾸는 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호연이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완벽한 부활'이라는 평이 나올 만큼 인상 깊은 열연을 보여준 니콜라스 케이지는 극중 롭 그 자체다.

영화 <피그> 스틸 이미지

한때 사람들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유명 셰프로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듯한 롭은, 영화계 대스타로 각광 받았지만 각종 추문과 사생활 관리 실패로 추락했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셀럽의 시절을 뒤로하고 누추한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선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늠되지 않으면서도 단지 출세에 목매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니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그런데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닌 다른 배우가 '롭'의 역할을 맡았다면, 소중한 것을 잃고 뒤늦게 후회하는 남자의 참회록을 이토록 실감 나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피그>를 통해 배우로서 여전히 녹슬지 않은 재능을 증명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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