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해를 품은 달'의 최대 위기는 '성인연기자'로의 교체 때였다. 아역들이 너무 잘해놨기 때문에 성인연기자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바로 비교대상이 된다. 사실 한가인이 그렇게까지 나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기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시청자들의 눈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수현이 나와서 제대로 터트려 줬다. 연기를 잘하는 데다가 훈훈하니 아무도 흠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도 여자도 김수현은 잘한다고 칭찬하는 진정한 훈왕이 되어버렸다. 이 완벽한 배우가 없었다면 해를 품은 달은 꺾였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김수현이 잘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매우 훈훈하다. 이미 드림하이 시절, 송삼동이 인기를 끌기 전에 보자마자 이 배우가 뭔가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바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김수현이 '그리스'와 같은 뮤지컬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춤과 노래에도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김수현은 드림하이에서 매우 멋지게 배역을 소화해내며 확실한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극까지 이리 완벽하게 해낼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가 분노하고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이 모두 똑같다는 아주 미미한 단점은 있다. 그런데 그런 고함마저 때에 따라 느낌을 다르게 만든다면 그건 한석규급의 연기자가 되었다는 말과 같다. 김수현은 아직 경력이 너무 짧고 연륜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지금의 연기는 그의 나이 또래, 경력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급의 연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돋보였던 연기는 바로 '김영애'와 독대하며 '김영애'를 귀향(?)보내려 하는 장면이었다. 대선배이며 카리스마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영애 앞에서 그는 당당하게 왕으로서 위엄과 강함을 보였고, 동시에 두려움을 같이 표현해냈다. 물론 김영애라는 최고의 연기자가 잘 받아주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김수현과 같은 젊은 연기자가 이 정도로 해낸 것은 최근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백윤식'과 맞서던 '송중기'를 보는 것 정도의 충격이었다. 가만 보면 젊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수현이 있다.

해를 품은 달은 누가 뭐래도 '훤'이 주인공이다. 그가 왕이기 때문에 모든 일은 그를 중심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그가 중심축이 되어 주지 못했다면 드라마는 헐거운 긴장감만을 남겼을 것이다. 연우가 아무리 갖은 고난을 겪더라도 그것이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 주지는 못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런데 김수현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대왕대비, 연우, 양명, 중전, 민화공주, 형선까지 모두가 '훤'과의 관계에서 사건사고를 만들기 때문에 김수현이 드라마내의 모든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고, 이 역할을 제대로 해주자 작품이 살아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를 품은 달에 가장 큰 축복은 '김수현'이다. 그가 없었다면 아역들의 명연기도, 조연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도 다 의미 없는 것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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