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에서 슬픈 장면을 더 슬프게 하고 기쁜 장면을 더 기쁘게 만들어 준 연기자가 있다. 바로 '정은표'이다. 극중 훤을 보좌하는 내시 형선으로 등장하여 훤이 울 때는 같이 눈물을 흘려 그 슬픔을 배가시키고, 훤이 웃을 때는 같이 미소를 지어 분위기를 더 훈훈하게 만들어 주고, 훤에게 진지하게 충언을 하여 무게감을 주기도 하고, 재미가 필요할 때는 특유의 귀여운 표정으로 웃음을 안겨주고 있다. 극중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소비되는 배역은 누가 뭐래도 형선이 뿐이다.
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려면 결국 필요한 것은 '조연'이다. 조연이 얼마나 잘 받쳐주는가에 극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크릿 가든은 김성오, 유인나, 박준금 등의 조연이 있었고, 최고의 사랑에도 유인나, 정준하 그리고 아직도 이쁜 띵똥이 양한열등이 존재했다. 그리고 '해를 품은 달'에도 이런 훌륭한 조연들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위에서 말한 '정은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훤의 모든 연기는 증폭됐다. 김수현은 물론 매우 훌륭한 연기자이지만 '형선'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감동이 오롯이 전달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형선'이 있었기에 김수현의 표정과 몸짓과 느낌이 살아났다. 특히 오열하고 절규하는 장면보다 가장 어렵다는 평상시의 미묘한 연기에서 '정은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베테랑 연기자는 원래 맞춰주는 게 기가 막힌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분이 있다. 바로 김영애다. 감히 김영애의 연기에 대해 평하기조차 두려울 정도로 연기자로서 최고의 실력과 경륜을 갖추고 있는 분이므로 일단은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애'는 최고다. (절대로 무서워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훤'은 왕이다. 그런데 왕이 쩔쩔매야 하는 상황이다. 왕은 힘이 세다. 왕은 우주에서 제일 세다. 그런 왕이 쩔쩔매는 모습을 본다면 이 왕이 '병신'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상황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왕'조차도 떨게 만들 만한 그런 존재가 존재해야만 했다. 바로 왕의 대척점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존재가 바로 '김영애'였다.
'김영애'가 공손한 단어를 사용해 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꺼지라고 하면 꺼지기도 전에 지릴 것만 같은 그 카리스마와 힘은 '훤'의 마음을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 주었다. '훤'의 고뇌를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단선적인 이야기가 이 정도로 감정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영애'라는 연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말고도 감탄해 마지않을 조연들은 많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 작품 안에서 이 세 사람은 주연을 넘어 극 자체의 외연을 아주 넓게 만들어 주었다. 만약 단순히 훤과 연우의 사랑이야기만 있었다면 이 작품이 이렇게 전 세대의 사랑을 받을 순 없었을 것이다.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이 되었고, 조연들의 연기가 외연을 넓혀 주었기 때문에 '해를 품은 달'은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 멋진 조연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이 분들이 있기에 해를 품은 달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이 분들이 있기에 시청자들은 더욱 농도 짙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최고의 연기자라는 수식이 전혀 아깝지 않은 분들이다. 이 분들에게 연말에 꼭 좋은 소식이 있기를 빌어본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