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다 로이드 감독의 ‘철의 여인’은 식료품 상점의 딸로 태어나 정계에 입문한 후 부유한 남편을 만난 뒤 승승장구해 영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총리가 된 마가렛 대처(메릴 스트립 분)의 삶을 묘사합니다.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런 성격으로 인해 소련으로부터 불린 별명 ‘Iron Lady’를 영화 제목으로 선택한 만큼, 긴축 재정, 공기업 민영화, 노조 탄압, IRA 테러, 포클랜드 전쟁 등 사안마다 결코 물러설 줄 몰랐던 원칙주의로 무장한 정치가로서의 대처의 삶을 묘사하며 동시에 남편에 집착하고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한 사적인 인간으로도 조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대처의 삶을 묘사하며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순행적 구성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퇴임과 남편의 죽음 이후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회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대처의 회상 속 과거 사건들이 순행적으로 나열된 액자 구성도 아니며 연도와 인물, 사건 등을 제시하는 자막을 활용하지 않았기에 영국 현대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하면 혼란스럽고 몰입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대처의 혼미한 정신 상태와 조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죽은 남편 데니스(짐 브로드벤트 분)의 환각으로 인해 사이코 드라마와 같은 측면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의 여인’은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다양한 연령 층위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메릴 스트립의 열연으로 인해 충분히 흥미진진합니다. 산만한 각본과 연출을 연기의 힘으로 상쇄합니다. 연설 연습을 전후해 극적으로 바뀌는 발성과 발음, 억양과 대사의 속도, 그리고 표정과 몸짓 연기 등은 장면마다 곱씹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영국 감독이 연출한 영국 총리 소재의 영화를 미국인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딱딱한 정치 영화로 전락하지 않도록 코믹 연기로 관객에게 돌아가는 부담을 줄이는 짐 브로드벤트도 인상적입니다.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긴 11년간이나 총리직을 역임하며 함께 냉전을 종식시킨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의 관계도 제시되지만 앙숙과도 같았다는 비슷한 또래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묘사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생존해 있으며 엘리자베스 2세가 등장할 경우 주인공 대처의 비중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러닝 타임이 105분에 지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여왕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은 미진한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2007년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한 헬렌 미렌과 2011년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6세를 연기한 콜린 퍼스가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최근 ‘철의 여인’의 메릴 스트립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영국 현대 정치인의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 기록이 이어졌습니다. ‘철의 여인’에서 대처가 연설 훈련을 받는 장면은 ‘킹스 스피치’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퀸’과 ‘킹스 스피치’에 비하면 ‘철의 여인’이 주인공의 삶을 가장 거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찻잔 씻는 것을 혐오해 정치에 입문했던 대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초상화 제막식에 불참하며 찻잔을 씻는데 고집스러운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완전히 끝나고 자연인으로 돌아왔음을 암시합니다.

‘철의 여인’을 관람하고 나니 뢱 베송 감독과 양자경이라는 어울리지 않은 듯한 조합으로 미얀마의 민주화 투사 아웅 산 수 치의 삶을 묘사한 ‘더 레이디’는 어떤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더 퀸’, ‘킹스 스피치’, ‘철의 여인’과 같이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룬 상업 영화가 제작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대처와 비슷한 보수 성향에 타협을 모르는 고집으로 치면 결코 뒤지지 않는 김영삼, 이명박과 같이 국민을 고통스럽게 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면 볼만한 블랙 코미디가 될 듯합니다.


영화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관의 불꺼지는 순간과 책장을 처음 넘기는 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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