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작품만을 출간한 소설가 주월(하정우 분)은 집필에 어려움을 겪다 영화 수입사에 근무하는 희진(공효진 분)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주월은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는 희진에 착안한 소설 ‘액모부인’을 신문에 연재해 서서히 호응을 얻기 시작합니다.

전계수 감독의 신작 ‘러브 픽션’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남자 배우 하정우와 남다른 개성을 자랑하며 패션 아이콘으로도 각인되고 있는 젊은 여배우 공효진(두 배우는 한국 영화계의 주연급 배우 중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지만 모두 서른을 넘어선 나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 영화계의 20대 배우 기근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의 캐스팅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묵직한 조폭 보스와 찌질한 2류 소설가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남자 배우와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는 등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을 소화할 수 있는 여배우는 하정우와 공효진 외에는 딱히 떠올리기 어렵기에 ‘러브 픽션’의 캐스팅은 적절합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조폭 보스를 연기한 하정우는 ‘러브 픽션’에서는 사랑을 얻기 위해 망가지는 것을 서슴지 않는 소심하고 충동적인 청년으로 등장해 과연 같은 달에 개봉된 두 개의 작품에 나란히 출연한 그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러브 픽션’에서 과거의 후시 녹음 영화를 재현한 장면에서 하정우는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시키는 몸짓과 걸음걸이 등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먹는 연기로 유명한 하정우는 ‘러브 픽션’에서는 채식주의자로 분해 억지로 고기를 먹는 장면과 술을 퍼마시는 장면 외에는 먹는 연기가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하정우 = 먹는 연기’라는 선입견을 일부러 뒤집는 연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러브 픽션’은 배우 하정우와 공효진의 영화가 아니라 전계수 감독의 영화로 보는 편이 타당할 듯합니다. 전계수 감독은 전작 ‘삼거리 극장’에서 흥행에서는 실패했지만 B급 정서에 기초한 뮤지컬로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확보했는데 ‘러브 픽션’ 역시 B급 정서에 기초했으며 뮤지컬의 요소 역시 결말의 뮤직비디오 ‘알라스카’를 비롯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러브 픽션’의 제작사가 ‘삼거리 픽쳐스’이며 극중에서 주월을 도발해 희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게 만드는 영화감독(곽도원 분. 하정우와 함께 ‘범죄와의 전쟁’에 조범석 검사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의 연출작이 ‘사거리 극장 살인사건’으로 ‘삼거리 극장’을 연상시키는 것은 의도적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웃음을 유발하되 여주인공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소위 ‘겨털녀’로 규정해 기괴함마저 자아내는 것은 파격적입니다. 주인공 주월이 소설가이며 자신의 연애담을 신문연재소설로 대입하는 만큼 액자식 구성을 선택해 제목도 ‘러브 픽션’인데 이병준이 분한 초자아 M은 주월이 읽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며 사랑의 고통에 허우적대는 주월의 심리는 역시 괴테의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차용합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연출 데뷔작 ‘카페 느와르’에서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차용했지만 재미는 ‘러브 픽션’이 우월합니다. 과거의 문학 작품들이 만연체에 의존했듯이 ‘러브 픽션’의 대사량도 상당히 많습니다.

초자아와 정신과 집단 치료 장면은 ‘파이트 클럽’을, 여주인공보다 열등한 지위에서 사랑을 호소하는 남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풀어낸 1인칭 연애담이며 뮤지컬 등 다양한 기법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는 ‘500일의 썸머’를 연상시킵니다. 반세기 전의 유치한 후시 녹음 영화를 재현한 장면들도 인상적입니다.

독특한 각본과 연출이 돋보이는 감독과 연기력이 보장된 두 주연 배우의 시너지 효과가 돋보이는 ‘러브 픽션’이지만 대중적인 흥행 영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통해 두 주인공의 밀고 당기기가 주된 내용이 될 듯했지만 철저히 주월의 관점에서만 전개되어 예상과는 다릅니다. 연출이 매끈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며 주월의 망상이 자주 삽입되어 산만하기에 소수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 높지만 일반적인 감성을 지닌 대중의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하정우의 머리에 불붙는 장면의 CG는 어색하며 공효진의 샤워 장면에서는 대역이 분명해보입니다.

영화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관의 불꺼지는 순간과 책장을 처음 넘기는 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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