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가 <휴고>를 연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도무지 마틴 스콜세지스럽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포스터에도 적힌 문구처럼 마틴 스콜세지가 가족영화를 찍다뇨. 이건 필시 <디파티드>로 오스카를 수상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는 데서 온 변화이자 유희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절로 그의 선택에 수긍하게 되더군요. 아니, 수긍 정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좌석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습니다.

<휴고>는 브라이언 셀즈닉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전 원작을 읽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어서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관람하기로 한 건, 얼마 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휴고>가 기술부문에서만 다섯 개의 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이 <휴고>는 오프닝부터 매혹적인 화면을 뿌렸습니다.

톱니바퀴로 시작한 장면이 유연하게 개선문 광장으로 넘어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공을 잡고 활공하던 카메라가 기차역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간 끝에 휴고가 살고 있는 시계 뒤편까지 이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촬영에 얼마나 세세한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휴고가 미로를 연상시키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이동하는 것을 미끄러지듯이 따라가는 카메라도 돋보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이 장면에서는 CG와 실사를 교묘하게 이어붙여서 더 매력적인 영상을 창조했더군요.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것에 뒤늦게나마 공감하게 됐습니다.

관객을 매료시키는 건 촬영뿐만이 아닙니다. 인파로 붐비는 기차역을 보면 소위 말하는 미장센에도 격하게 찬사를 토할 수밖에 없게끔 만듭니다. 세트일 것이 틀림없지만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많은 사람들의 위치와 동선을 조율했을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레 노장감독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고 싶어집니다. 아울러 화면의 색감도 끝내줍니다.

하지만 <휴고>가 그토록 제 맘에 들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기술적인 면이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이 영화를 봤는데, 놀랍게도 조르주 멜리에스를 등장시키더군요. 네, 다들 잘 아실 <달나라 여행>의 그 조르주 멜리에스가 맞습니다. 일단 이 자체가 저한테는 굉장한 매력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제게 있어 조르주 멜리에스는 진정한 천재였거든요.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인정받는 뤼미에르 형제나 장편영화와 편집의 기틀을 마련한 데이빗 그리피스가 아니라, SF 영화의 시초인 <달나라 여행>의 조르주 멜리어스야말로 영화를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만든 위인입니다.

<휴고>는 주인공 꼬마인 휴고 카브레와 더불어 조르주 멜리에스의 삶을 한데 녹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철저한 허구가 아니라 실제 조르주 멜리에스의 삶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결합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휴고>는 할리우드보다 훨씬 더 앞서 '꿈의 공장'을 세웠으나 초라한 말년을 보냈던 그를 21세기에 재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석은 작년 칸 영화제에서 <달나라 여행>의 컬러 버전이 복원되어 최초로 상영됐었기에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했던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가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보내는 헌정영화에 다름 아닙니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정체가 밝혀진 후부터는 잔뜩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됐습니다. 급기야 조르주 멜리에스와 그의 영화를 숭상하는 한 젊은 작가가 나오자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이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남자가 조르주 멜리에스의 집에 찾아가 부인과 몇 마디 대사를 나누던 대목에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울컥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한데 둘러앉아 <달나라 여행>을 보는 장면에서는 저도 잔느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영화 속의 영화를 지켜봤습니다.

지금도 제가 왜 울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수십 번도 더 본 <시네마 천국>을 다시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릴 때의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향수라는 건 언제나 감성을 자극하는 마력이 있거든요. 물론 제가 그 시대에 살았던 건 아니지만, 제게도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상기하게 되면 늘 가슴이 뭉클합니다. 블로그에서 몇 번 얘기했었는데 그 당시야말로 제가 진심으로 영화를 사랑했었던 것 같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늘 즐거웠던...마지막에 <휴고>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회고전을 축하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이 부분이 압권입니다. 조르주 멜리에스를 연기한 벤 킹슬리가 무대에 올라 감회를 말하고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끝을 맺습니다. "Come and dream with me". 이 대사를 거쳐 이내 <휴고>는 벤 킹슬리의 모습에서 실제 조르주 멜리에스가 출연했던 영화로 오버랩됩니다. 이걸 보면 정말이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마틴 스콜세지와 이런 영화가 있을 수 있게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준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격렬한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물론 <휴고>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휴고가 조르주 멜리에스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것에 감정적인 연결고리가 부족합니다. 두 이야기를 좀 더 매끈하게 이어갔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저는 영화를 사랑합니다.

★★★★☆

덧 1) 이런 영화가 한 상영관에서 온전히 상영되기는커녕, 볼 수 있는 극장조차도 몇 없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제 감정을 더욱 열렬하고 애틋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나라가 할리우드를 욕할 자격은 없습니다.

덧 2) 미리 봤더라면 아마 <아티스트, 디센던트>보다 <휴고>의 작품상 수상을 응원했겠습니다. 감독상 또한 마틴 스콜세지의 수상을 염원했을 테고요. 북미에서도 흥행은 실패했지만 기꺼이 최고라는 수식어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덧 3) 3D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관람하세요. 제임스 카메론조차 <휴고>를 보고 3D를 가장 완벽하게 활용한 영화라고 격찬했습니다. 심지어 <아바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기술적 완성도도 그렇지만 이 영화가 3D로 만들어진 것 자체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휴고>를 3D로 보는 관객은 <열차의 도착>을 보며 놀랐던 관객과 흡사한 입장인 셈이죠. 늘그막에 이런 시도를 한 마틴 스콜세지 옹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옹과 함께 장수하세요!

덧 4) 당연하게도 올해 아카데미가 <휴고>와 <아티스트>를 양대산맥으로 내세운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군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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