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이 관객수 33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2007년 ‘석궁사건’이 재조명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모든 언론이 ‘석궁테러’라는 수식어를 달아 선정적 보도를 하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좀 더 중립적인 관점으로 보도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얼마 전 저는 석궁사건을 다시 추적해보았습니다. 사건 당사자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도 만나보고, 박홍우 판사, 아파트 경비원, 수사를 맡은 경찰, 석궁 전문가 등을 두루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석궁사건 재판기록도 꼼꼼하게 모두 살펴보았고요.

#<부러진 화살> 재판 기록 충실히 반영했다

트위터에서는 <부러진 화살>과 관련한 제 글이 진중권씨에 의해 와전되어 전달되면서 본의 아니게 논쟁의 한 복판에 서기도 했습니다.

핵심만 말하면, 진중권씨는 제 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전달했습니다.

당시 보수 누리꾼들이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의 얘기만 듣고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다”라고 사실관계를 호도하길래 제가 “부러진 화살은 재판과정이 100% 사실묘사였다.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 교수의 주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재판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그런데 진중권씨는 제가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 해당 형사 재판의 재판기록과 일치한다며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이런 거짓말 믿지 말라”고 트위터에 글을 썼습니다.

세상에 100%라는 개념이 어떻게 존재하겠습니까. 재판기록과 영화를 비교해보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보수 누리꾼들에게 ‘영화의 재판 기록 묘사는 사실에 충실했다’는 표현을 좀 완곡하게 표현하려 했던 것일 뿐 허위 사실을 퍼뜨리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재판기록을 정말 꼼꼼하게 보신 분들은 <부러진 화살>이 극적 효과를 위해 재판 과정에서 없던 대사를 만들어 내거나 한 게 아니란 걸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설사 특정 날짜의 재판 기록만 강조해 묘사했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후 진중권씨는 “모두들 그 영화에 홀라당 낚였다”고 트위터에 또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제가 취재했던 현장에 흩어져 있던 사실들은 진씨의 주장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김명호는 사법 영웅이 아니다

김명호 전 교수는 사법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석궁을 들고 박홍우 판사 집을 찾아가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김 전 교수가 사법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범죄에 대한 처벌은 자신이 지은 죄만큼만 이뤄져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또 모든 죄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입증돼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과연 석궁 재판부가 최선의 재판을 했는가’ 하는 점에서 여러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재판부는 범죄 혐의자의 자기방어를 검증해야 하고 또 검찰이 필요 이상의 죄몫까지 덧씌워 기소를 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유난히 재판부는 검찰 기소 내용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은 인상을 받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런 지점을 다룬 듯 합니다.

#이상한 아파트 경비원

<부러진 화살>은 2탄 제작이 필요할 정도로 수사 결과가 이상한 구석이 매우 많습니다. 영화 제목은 ‘사라진 화살’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전 교수가 2007년 1월15일 박홍우 판사의 집에 찾아갔다는 사실만 확실할 뿐, 그가 정말 화살을 쐈는지에 대해선 의문 투성이입니다.

먼저 박 판사의 아파트를 지키던 경비원 김씨가 이상합니다. 김씨는 박 판사가 맞았다는 화살을 최초 수거한 분이기 때문에 사건의 핵심 증인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달 25일 김씨를 찾았을 때 이 분은 자신이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박 판사가 건네준 화살이 부러져 있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안나요. 판사님을 구급차에 실어 보내고 나서 계속 현장에 머무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그게 경찰이었는지 누군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내게 찾아와서 삼분의 일쯤 끝이 떨어져 나간 화살을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없어졌다고요. 그래서 내가 한참을 찾았어요. 끝내 못 찾았지만.”

이게 김씨가 제게 들려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2007년 3월21일 분명 “박 판사가 작대기(부러진 화살)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고, ‘어디 다치셨냐’ 물으니까 (박 판사가 화살을) 갖고 있으라고 넘겨줬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어떻게 5년만에 모든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 증인까지 섰었는데요. 그러면서 당시 ‘부러진 화살’이 없어져서 경찰이 찾으러 왔다는 얘기를 새로 들려줍니다. 당시엔 진술하지 않았던 내용을 이제 와서 새로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부러진 화살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박 판사의 입장이 곤란해지니까 새로운 말을 꾸며내신 건 아닌지 의심해 볼 수 밖에요.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SBS
#이상한 경찰

경찰도 수상합니다. 2월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셨습니까. ‘박홍우 판사 배에 난 상처가 압수한 화살과 일치한다’고 수사서류를 작성한 경찰이 지금 와서는 “내가 쓴 게 아니다”고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위조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분명 박 판사가 배에 맞은 화살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배에 난 상처가 압수한 화살과 일치한다’고 수사 서류를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이 문제를 취재했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경찰이 이상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이 정년을 거의 앞두고 있었는데 마지막 승진 기회를 잡기 위해 여러모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가 기자들 사이에서 퍼져 있던 얘기라고 합니다. 실제 이희성 당시 송파경찰서 형사과장은 얼마 안가 경찰서장으로 승진합니다.

‘박홍우 판사가 화살에 맞았다’는 말을 성립시키기 위해 경찰이 증거조작을 했다는 의혹은 취재를 하면 할수록 커져갔습니다. 경찰과 함께 석궁발사 실험을 한 석궁전문가는 “경찰이 소설을 썼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 석궁전문가는 제게 “김명호 전 교수는 화살을 불완전 장전 상태로 놓았다. 그 상태에서 석궁을 아래 방향으로 조준해서 쏘면 화살은 발사되지 않고 흘러 내린다. 박 판사를 맞출 수가 없다. 그런데 경찰은 소설을 써놨다. 내가 이런 부분을 경찰에 충분히 설명해줬는데도 그렇게 써놨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교수는 아예 박 판사의 옷에 난 구멍과 혈흔 모두 경찰이 만든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박 판사의 옷은 현장에서 바로 수거된 게 아닙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2007년 1월16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옷이 보내지기 전인 12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음모론을 자초한 검찰

물론, 이건 아직까지 근거없는 음모론입니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은 검찰이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김 전교수 쪽은 박홍우 판사의 옷을 수거한 경찰을 찾아달라고 검찰에 요청했으나 검찰은 “못찾겠다”는 답변만 했습니다. 납득이 되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증거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로 보낸 경찰을 못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걸 취재하려고 석궁사건을 담당했던 백재명 검사를 접촉했습니다. 백 검사는 석궁사건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상주지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 검사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당분간 언론과 접촉할 생각이 없다”는게 그의 최종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초기 수사를 맡았던 이희성 전 송파경찰서 형사과장은 2011년 12월 31일자로 퇴직한 상태라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김명호 전 교수가 유죄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그가 정확히 어떤 유죄를 저질렀는지 정확히 검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김 전 교수가 ‘석궁을 쏴서 박 판사를 위협한 죄’를 저질렀는지 ‘석궁을 들고 판사를 위협한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검증 말입니다. 이건 중요한 겁니다. 조준해서 화살을 쐈으면 상해죄에 해당하지만 우발적이라면 과실상해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검찰로 ‘부러진 재판부’

저는 재판 공판 기록을 모두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이틀 동안 읽어야 할 정도로 그 양이 상당했습니다. 재판부는 김 전 교수 쪽이 ‘석궁을 쏘지 않았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신청한 대부분 요구들을 1심 때부터 기각해버립니다. 박홍우 판사의 휴대전화 기록 조회, 박판사에게 피해 당일 옷을 입혀보려던 모든 신청을 기각합니다. 박 판사 혈흔 감정신청은 2심 때 기각해버립니다. 박 판사의 옷을 수거해간 경찰을 찾아보자는 신청도 기각해 버립니다. 도저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재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부러진 화살’이 사라지고 없는데도 김 전 교수가 화살을 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검찰 쪽으로 ‘부러진 재판부’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판결에 대한 모든 불만은 심리 과정이 형편없을 때 발생합니다. 대법원은 <부러진 화살> 영화가 흥행한 뒤 논란이 일자 “김명호 전 교수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던 판결”이라고 발표했으나 정확히 ‘김 전 교수가 어떤 유죄를 저질렀는지 확인’하는 데에는 형편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몇몇 판사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한 판사는 제게 “김명호 전 교수의 주장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킬만큼 꼼꼼한 심리가 이뤄졌다고 볼 순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주었습니다. 판사들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대법원이 해명한 것처럼 석궁사건 재판이 모든 판사들 사이에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석궁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왜 그때 판결을 말끔하게 못해서 지금까지 뒷말이 나오나요. 그 판사들 다 잘라버려야 해요.” 김 전 교수의 유죄를 확신하는 아파트 경비원 김씨의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돈키호테도 합리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현재 한겨레 디지털뉴스부 기획취재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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