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4: 어웨이크닝 - 한층 강해진 액션과 폭력이 메우지 못한 공허함

제가 구상하던 시나리오 중에 뱀파이어 영화가 있습니다. 설정만 떠올리고 있던 거라 쓸모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늘 학살자였던 뱀파이어와 희생자였던 인간의 입지를 역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언더월드 4: 어웨이크닝>은 바로 이 아이디어를 도입한 영화입니다.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이 그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초적인 세계관이죠. 이것만으로도 벌써 꽤 흥미롭지 않습니까? 근데 정작 <언더월드 4: 어웨이크닝>은 이 아이디어를 살리지 않습니다. 바탕에 깔아놓기만 하고 그냥 전작들처럼 뱀파이어와 라이칸이 펼치는 대결이 전부입니다.

분명 <언더월드>는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뱀파이어와 라이칸을 대립하게 만든 설정을 잘 유지한 덕분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언더월드 4: 어웨이크닝>은 참신할 수 있었을 아이디어를 한 줌의 재로 전락시켰습니다. <언더월드>를 연출했던 렌 와이즈만이 참여한 것으로 보기엔 각본이 너무나 부실한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러닝타임이 약 1시간 20분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액션과 폭력의 강도가 한층 강해져서 오리지널 팬들에게는 적어도 형편없는 영화는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도 케이트 베킨세일이 광택 쫄쫄이 수트를 입고 복귀했지 않습니까!

★★☆

맨 온 렛지 - 설정만으로는 만회할 수 없는 장르의 숙명

<맨 온 렛지>는 지능형 스릴러입니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 있지만 뭉뚱그리는 게 좋겠습니다. 이 영화는 모르면 모를수록 재미있게 볼 수 있거든요. 역으로 보자면 <맨 온 렛지>는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알고 보면 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텔 난간에 서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자라니,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는 건지 호기심을 자극하죠? 알고 보면 <맨 온 렛지>의 주인공은 동류의 영화이며 근작인 <XXX XXX>이 보여준 수법, 즉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 자신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합니다. 이런 설정은 괜찮아요. 설정을 풀어가는 과정이 기발하면 기발할수록 재미를 줄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다행히 <맨 온 렛지>는 각본과 연출이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일단 주인공이 아찔한 장소에 서 있다는 것과 거기서 보여주는 행동도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철두철미한 것만 가지고 완성되진 않습니다. 완성은 되겠지만 그걸로 관객에게 어필하기는 힘듭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얼마나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지가 핵심이고 관건이죠. 아쉽지만 <맨 온 렛지>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습니다. 간혹 재치 넘치는 대목도 있으나 진부하고 훤히 눈에 보이는 장치가 종종 끼어들어서 김이 샜습니다. 설정을 유지할 수 있는 풍성한 이야기가 뒷받침이 됐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마지막에 순간적으로나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경험을 안겨준 것은 플러스 점수를 주게 합니다. 같이 본 여자분들은 내내 손에 땀을 쥐고 보셨다고 하더군요.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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