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중립적이지 못한 방송 보도 형태를 보인 <연예가중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연예계의 사건 사고들을 전하고 스타에게 조금 더 유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연예 보도 프로그램이 스타에 대한 편향적인 시선을 갖는 모습은 영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이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 했다면 무엇보다 시기성과 적절성에서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보도를 행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나, 그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이미 수개월 간 컴백을 준비하고, 그 사이 갖은 욕을 다 먹은 상태에서 그룹이 활동을 재개할 무렵 논란을 부추기며 비난받게 한 것은 편향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편협한 시선에서 한쪽 면만을 부각시켜 보도한 것이 문제였다. 중립성을 잃은 인터뷰나 취재 내용은 편협함으로 가는 시작이었다. 단순히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배치한 인터뷰 중 상대적인 의견을 보여준 것은 너무도 적은 분량이었다.

때문에 방송 후 네티즌들과 일부 언론 그리고 제3의 언론이라는 블로그 스피어에는 여지없이 ‘빅뱅’을 비난하는 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KBS 연예가중계 보도 두 언론이 나서서 상대적인 입장에서 다시 보도한 것이다.

<연예가중계>는 너무나 일방적인 시선에서 보도를 했다. 그들이 섭외한 기자와 평론가 그리고 시민을 대표하는 한국사이버 시민마약감시단 관계자의 입장은 모두가 하나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단지 평론가의 경우 원론적 입장에서 접근하였기에 보다 중립적으로 보였지만, 다른 이들은 한쪽의 이야기만을 하는 통에 시청자들은 결국 치우친 입장만을 듣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그들이 마련한 각종 리서치와 조사 자료의 근거들은 그럴 듯한 모습으로 포장되었다. 그렇기에 그를 보는 시청자들은 이것이 새로 밝혀진 비리인 듯 느껴 분노하며 ‘빅뱅’과 ‘YG’를 성토하는 과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방송 내용이 여론이 잘못 움직일 수 있는 곳으로 유도하는 듯해 무척이나 위험한 모습으로 보였다.

어머니 인터뷰조차 문제였다.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대성’에 대해 나쁜 말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를 한다’ 쪽의 이야기로 매번 끝맺었는데도, 마치 주된 이야기의 결론은 원망을 하는 듯한 뉘앙스가 보이게 편집한 것은 그 가족들이 바라보기에 분노를 살 만한 편집이었다. ‘대성이 일절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 다녀갔지만 보지 않았다’, ‘합의가 없었다’, ‘위로금도 없었다’ 등의 이야기를 배치했지만, 인터뷰를 자세히 보면 매번 그 어머니는 대성이도 어쩔 수 없는 사고를 낸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다른 언론에서 유가족 대표라고 하는, 사망한 이의 친형이 나서서 ‘합의가 있었다’며 자신이 직접 이모님과 같이 대성을 만나 힘내라는 말도 했다고 보도하여, <연예가중계>가 일방적으로 내보낸 보도임을 알게 했다. 유가족 대표인 친형이 더욱 분노한 것은 대표인 자신이 있음에도 건강상 좋지 않은 어머님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또 그 인터뷰 내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여 안 좋게 쓴 것에 대한 분노였다.

포커스를 한쪽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놓은 것 자체가 <연예가중계>의 잘못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밉보인 소속사이고, 자신의 방송사와 껄끄러운 관계라는 항간의 소문을 입증하듯 그 소속사를 타겟으로 잡고 흔드는 보도는 분명 큰 문제이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들의 컴백이 반가운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송사가 나서서 편협한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사례라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새삼 기존 다른 연예인들의 일까지 들추어내어, 반성하고 있는 시점에 지탄받게 하는 것은 <연예가중계>가 바람직한 보도를 행한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예가중계>의 적절한 자숙기간 보도도 참으로 어이없는 기준임을 느끼게 한다. 자숙이란 것이 오래한다고 자숙의 질이 성숙된 것이고, 적게 한다고 자숙의 질이 미숙한 것은 아님에도 개월 수로 자숙의 질을 재는 척도로 삼은 것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당사자인 유가족과 원만한 합의가 있었고, 사건이 종료되는 상황에 다시 들추어내어 양쪽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도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일 듯싶다. 용서받는 기준을 냉정하게 세워서 자로 재듯 기준점을 들이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일이다.

4개월이든 40개월이든, 진정 뉘우침이 있다면 개월 수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40개월이 지나도 뉘우치는 마음이 적다면 그것을 진정 뉘우침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연예가중계> 기획코너인 ‘빅뱅 컴백, 용서받은 복귀인가?’라는 거대한 타이틀이 지금 어떤 시기성과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영삼. <미디어 속 대중문화 파헤치기>
[블로그 바람나그네의 미디어토크] http://fmp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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