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에서 정계를 은퇴하고 노쇠한 대처를 먼저 등장시킨 걸 봤을 때는 영리한 배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플래쉬백으로 대처가 수상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그럴듯한 그림이 완성될 것 같았죠.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철의 여인인 정치가로서의 대처 이면에 있던,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면, 또는 강직한 대처 이후에 보여준 연약한 인간이자 여자로서 인물에 접근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으로 봤습니다. 실제로 초반부는 그랬습니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철의 여인>은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영화로 둔갑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철의 여인>은 난잡하고 어정쩡한 전기영화입니다. 예상과 달리 플래쉬백으로 들어가서 대처가 수상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했던 과정을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에 환영에 시달리며 치매를 앓았던 할머니인 대처를 현 시점으로 보여주며 끊임없이 과거를 삽입하는 데 그칩니다. 전 이걸 당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각본을 쓴 애비 모건은 무슨 의도로 어쩌자고 플롯을 이 모양으로 구성한 것인지 모르겠군요. 더군다나 정치가로서의 대처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은 그저 수박의 겉을 핥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한쪽을 버리고 다른 한쪽에 집중하는 게 나았을 겁니다.

정치가 대처와 인간 대처가 전혀 조화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철의 연인>은 대처를 애잔하고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만들 수도 없을 정도로 조악합니다. 환영이 되어 대처의 곁을 맴돌던 남편이 사라지는 장면이 단적인 예입니다. 이 자체로서는 순간적으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막상 저 남편의 비중이 영화에서 어땠는지를 가만히 떠올려보면 좀 황당하고 불필요한 장면입니다. 전혀 존재감이 없던 남편에게 치매에 걸려 의지하는 대처를 보면서 공감할 수 있을 리가 없죠. 고작해야 짐작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나마 이 영화를 살리는 건 명불허전인 메릴 스트립의 연기입니다. 영화를 보고 와서 마가렛 대처의 영상을 몇 개 찾아서 봤는데, 메릴 스트립이야말로 마가렛 대처의 환영입니다. 이것으로 또 한번 증명한 단연 이 시대 최고의 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