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우리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담스러워했던 그에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선택했고, 이제는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응원해야 할 것입니다.

'테리우스' '반지의 제왕' '안느'... 화려한 수식어로 많은 축구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남자, 안정환이 현역 선수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안정환은 지난해 말, 중국 다롄 스더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수 개월 동안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선수 생활을 마치기로 하고, 31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발표할 뜻을 밝혔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축구가 기록한 역사마다 큰 족적을 남긴 스타플레이어를 이제는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안정환의 은퇴 결정에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개척할 새로운 인생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늘 기대감을 갖게 한 '진짜 강심장'

▲ 안정환 ⓒ연합뉴스
한국 축구가 역사적인 성과를 낼 때마다 안정환은 늘 그곳에서, 주인공으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뭔가 일을 낼 것 같다'는 기대를 가졌고, 그는 그 기대에 보답했습니다. 물론 그 같은 장면을 보여주기까지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물러서지 않는 끈끈한 투지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나아가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안정환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한 장면,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에서 터트린 골든골을 많이 기억할 것입니다. 전반 초반 패널티킥을 실축해 울면서 뛰었다는 그는 한 골을 넣기 위해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흐트러진 상황에서도 전혀 아랑곳 않고 정말 열심히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터트린 연장 후반의 극적인 골든골은 포기하지 않는 한국 축구의 투혼이 무엇인지, 우리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기어이 뭔가를 해냈다는 쾌감 뿐 아니라 세계적인 강팀이면서 오만했던 상대팀의 벽을 보기 좋게 부숴버리는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선수가 바로 안정환이었습니다.

안정환의 빛났던 순간은 이외에도 참 많았습니다.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터트리고 보여준 오노 세레모니, 한일월드컵 1주년 한일전에서 후반 막판 터트린 극적인 결승골, 독일월드컵 첫 경기 토고전에서 후반에 터트린 결승골은 모두 국민들에 쾌감을 안긴 멋진 장면들이었습니다. 한일월드컵 직전에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터트린 절묘한 칩슛 골, 그보다 앞서 히딩크 감독 부임 직전 열린 일본과의 정기전에서 터트린 벼락 중거리슛 골은 그의 감각적인 골 능력을 몸소 보여준 장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터트린 골들은 대부분 한국 축구가 벼랑 끝에 몰려있거나 한 골 꼭 터져야 할 때에 나온 것들이어서 임팩트가 대단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등장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졌고, '가장 찬스에 강한 스트라이커'라는 인식을 갖게 했습니다. 많지 않은 시간에도,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그 모습은 진짜 강심장을 단 선수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제는 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골 장면들이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인식 때문일지 모릅니다.

끊임없는 개척 정신, 안정환을 빛나게 한 또 다른 힘

'저니맨'이라는 비아냥에도 아랑곳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를 찾아 나선 도전정신도 그를 빛나게 한 요소였습니다. 13년간 프로 생활을 하면서 그는 6개국 9개 팀에서 활약을 펼쳐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이 해외를 개척했던 선수였습니다. 물론 각 팀마다 1-2년밖에 있지 못했지만 늘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그에 적응하려한 그의 개척정신만큼은 많은 이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이 팀 저 팀을 오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활약을 펼치고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던 것을 생각하면 각 팀마다 그렇게 헛되이 선수 생활을 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많은 후배 선수들의 귀감이 됐고, 덩달아 팬들도 이런 모습에 오히려 큰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중국 다롄 팬들조차 안정환을 위해 성대하게 작별 행사를 치러줬을 정도로 현지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던 안정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웠습니다.

안정환에 대해 어떤 이는 "얼굴은 잘 생겼는데 축구는 마치 머슴처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만큼 그라운드에만 나서면 투사처럼 변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팀 승리에 크게 기여한다는 얘깁니다. 그랬던 그의 활기찬 모습을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 행복, 기쁨을 선사한 그를 이제는 편하게 보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더 이상 부담을 갖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보내 그와 그 가족의 즐거움, 행복, 기쁨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어쩌면 많은 이들이 놓은 짐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을 그에게 이제는 밝은 미래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축구를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해 준 영원한 테리우스, 당신 덕분에 한국 축구는 행복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느.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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