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3일 SBS 노사 단체협약이 해지되었다. SBS가 초유의 무단협 사태에 이르게 된 근본 요인은 사장 임명동의제였다. SBS 노사는 지난 2017년 10·13 합의를 통해 사장, 편성, 시사교양, 보도 등 각 부문 최고책임자에 대한 직원들의 임명동의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사측은 임명동의제를 문제 삼아 올 초 10‧13 합의 파기에 이어, 지난 4월 단협 해지까지 통고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5일부터 본사 로비 농성에 들어갔다. 초유의 무단협 사태에 대응 계획을 들어보고자 지난 12일 정형택 SBS 본부장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정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31년 만에 SBS 노사 단체협약이 지난 3일부로 해지됐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오늘(12일)이 단협해지 10일 차입니다. 저희는 연휴 직후부터 농성을 시작했고요. 단협해지의 문제점, 우리 구성원들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길 수 있는지, 단체협약을 해지한 사측의 의도에 대해 매일 유인물을 써서 조합원들에게 아침 출근길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업무공간을 로비로 옮겨 조합원들한테 투쟁상황을 알리고, 대외적으로 알리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정형택 언론노조SBS본부장 (사진제공=SBS본부)

조합원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단순히 임명동의제 조항에 대한 노사 갈등을 넘어서, 노동자의 기본 권리와 자주적인 노조 활동에 대해 보장하고 있는 단체협약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깬 거잖아요. 조합원들은 임명동의제 조항 갖고 노사가 다투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거 같다는 거예요. 사측이 단협해지를 통해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노조가 이렇게 길들여지고 혹은 와해되면 사측이 마음대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을까란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특히 사측이 알림 등을 통해, 노조가 계속 단협 체결을 미룰 경우 사측 표현대로 하면 ‘임금협상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는 엄포성 발언을 일반 구성원들에게 하는 부분에 대해 부정적 정서가 확산하는 듯합니다. 실제 SBS 6개 직능단체가 사측의 단협 해지를 규탄하며 노조의 싸움을 지지한다는 공동성명을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사용하는 내부 전산망에서도 ‘단순히 임명동의제를 넘어서 노조 탄압, 노조 파괴 수순이다. 우리도 더 단단하게 준비하자’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어서 조합에 힘을 실어 주는 분위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측은 단협해지로 구성원들이 피해 보는 일 없게 하겠다는 것 같은데?

“단협에는 규범적 부분하고 채무적 부분이 있다고 하잖아요. 규범적 부분은 법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사측이 보장하고 말고가 아니라 지켜야 하는 거고요. 다만 단협에 보장되어 있던 자주적인 조합 활동은 채무적인 부분인데, 이 부분은 법적 의무가 사라진 만큼 채무적 부분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조합비 일괄 자동공제하는 체크오프를 하지 않겠다. 조합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겠다. 전임자 복귀시키겠다’라는 거고요.

노조가 지키고자 하는 게 노동자의 권리이고 가치인 거잖아요. 그런데 조합이 와해된 상태에선 이를 제대로 지켜나갈 수 없을 겁니다. 당장엔 사측이 현 무단협 상태에서 다른 근로조건을 깨뜨리지 않고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향후 있을 임협이라든지 다른 협상에 있어서 협상력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럴 경우 결국에는 사측이 보장했던 것과 달리 노동자의 권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측이 단협해지한 표면적 이유는 임명동의제인데 근본적 이유를 뭐라고 보세요?

“시작은 임명동의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사측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임명동의제는 공정방송을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우리 단협 5조 조항을 보면, 공정방송은 언론노동자의 노동조건이라고 명확히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명동의제 역시 우리에겐 근로조건인 거죠.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려는 사측의 시도를 노동조합은 당연히 막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임명동의제 조항에서 사측이 주주의 권한, 인사권, 경영권을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노조에서도 사실은 임명동의제 취지를 크게 후퇴시키는 거지만, 무단협 상황을 막고 우리 일터의 안녕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양보안을 제시했어요.

임명동의 대상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장을 빼고, 대신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 침해가 우려되니 이를 담보할 수 있도록 국장급들을 동의 대상에 더 넣고, 사장에 대해선 1년간의 정상적인 경영활동 경영 성과에 대한 종사자들의 평가를 받으라는 거죠. 그리고 사장이 빠진 만큼 경영진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상황이잖아요. 그러니 올 1월 사측이 없앴던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를 복원시키라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임명동의제의 취지는 살리고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합의안을 제시했는데도 사측은 단 하나도 들어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사측은 노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제시해서 무단협을 촉발시켰습니다. 그리고 무단협 상태에서는 노조에 대한 채무적 이행을 안 해도 된다는 법에 기대어 노조에 대한 압박 더 나아가서 전임자 복귀 같은 노조활동 방해를 분명히 할 거거든요. 노조를 길들이려는 검은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는 노조 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0월 13일 합의를 맺은 박정훈 SBS사장과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 (사진=SBS노보)

그럼 왜 노조를 탄압한다고 보세요?

“대주주가 건설 사주잖아요. 태영건설 자체가 노동권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기업 경영을 하면서 대주주에 맞서왔던 조직은 SBS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주주 입장에서는 노조가 눈엣가시처럼 보이지 않겠냐는 거죠.”

사장 임명동의제에 대해 사측은 “회사는 경영진 임명동의제가 도입 당시 기대와 달리 노조가 회사의 인사권, 경영권을 심대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경쟁력 확보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라고 주장했는데?

“대주주가 사장을 임명하고, 거기에 대해서 재적의 60%-아주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해요-가 반대해야 임명 철회하는 건데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 60% 반대하는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본교섭에서 사측도 인정한 부분인데, 사측의 정상적인 경영활동 이윤추구 행위가 임명동의제로 인해서 단 한 건도 제한받은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임명동의제가 경영권에 발목을 잡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측이 TF 설치 등을 제안했지만 노조가 ‘임명동의제 사수’만을 반복하며 회사의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는데?

“사측은 단체협약에서 임명동의제 조항을 빼고는 의견이 엇갈리는 게 없으니 단체협약 먼저 체결하고 별도의 TF에서 논의하자는 거잖아요. 그런데 구속력이 없어요. 지금도 단체협약 복원을 위한 노조의 제안에 대해 사측은 거부만 했거든요. 임명동의제 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별도 조항을 삽입해 보자는 안도 거부했고, 그 이후 어떤 안도 제시 안 했거든요. 그렇게 교섭이 결렬 위기에 온 상황에서 노조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사장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마지노선 안을 제시했는데도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별도 TF가 열린다고 해서 사측이 어떤 선의를 갖고 임명동의제 관련된 수정안을 낼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단체협약은 그대로 유지하고 임명동의제를 별도 논의하자는 얘기는 임명동의제 삭제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얘기라고 봅니다.”

SBS 직능단체 대표들 (사진제공=SBS본부)

사측은 “(SBS는) 완벽한 수준의 공정방송과 소유경영 분리를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던데요

“임명동의제 조항이 어떻게 도입됐는지를 봐야 합니다. 사측이 얘기하는 공정방송 장치들이 있습니다. 잘 만들어져있어요. 제도적으로는 노사협의회 그다음에 보도준칙, 방송편성규약도 있고요. 또, 공정방송에 대한 최고책임자 중간 평가제도도 있고 상향 평가제도도 다 있습니다. 대부분 2008년 정도에 제도적인 틀이 갖춰져 왔거든요. 하지만 이 제도들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와 보도 개입, 보도지침 같은 문제가 숱하게 반복됐습니다. 그게 가장 노골적으로 두드러진 게 2015년이잖아요,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합의를 비롯한 정권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라는 회장님의 보도지침이 내려졌습니다. 인제 스피디움은 태영건설이 100% 지분을 소유했는데요, 이 특정 장소가 2015년 하반기에만 20차례 넘게 SBS에서 방송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심지어 MB 정부 때는 4대강에 비판적인 기사 쓴 기자를 회장이 직접 불러 기사 쓰지 말라고 했던 일이 해당 기자의 양심선언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니 기존 소유경영 분리를 위한 제도로는 부족하다고 해서 대주주와 노사가 합의로 만든 게 10.13 합의입니다. 그 합의의 핵심이 임명동의제이기 때문에, 임명동의제가 아니고도 된다는 사측의 얘기는 노조에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 사측은 경영진에 대한 임명동의제는 전 세계 언론사에서 볼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대주주가 대놓고 보도지침 내리고, 대주주 소유 자회사 실적을 위해서 방송을 동원해 6개월 동안 20차례 넘게 방송하는 일은 전 세계 어느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언론자유 침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과오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 경영진이 최소한의 책임을 갖고 독립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임명동의제일 수밖에 없다는 게 노조의 생각입니다.”

임명동의제가 세계적으로 없다는 건 맞나요?

“국내 언론에서도 보도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는 많은 곳에서 시행하고 있어요. 다만 우리는 사장이 들어가 있는 거고요. SBS는 본부장 책임제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어서, 본부장급에 대한 임명동의제가 필요합니다. SBS 직능단체 연대성명을 보면 다른 언론사에서 실시하지 않는 것을 실시해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 없는 진일보한 제도를 도입해서 구성원들은 더 만족감을 느꼈고 자부심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얘기하면 더 진일보한 제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거 대주주와 사측의 퇴행적 행태 때문인데, 이제 와서 그 과정은 무시하고 ‘우리는 민영이니까 진일보한 제도 다 필요 없다’라고 하는 건 오래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쉽게 망각하는 퇴행적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출처=SBS노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신가요?

“사측이 하루빨리 자신들의 퇴행을 반성하고 노조의 협상안을 받아들여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사측이 노조 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원들에게 노조 입장을 알리고 힘을 모으는 투쟁을 지속해나갈 생각입니다. 다만 사측이 무단협을 촉발한 데 이어, 전임자 복귀 등 노조를 실제적으로 파괴하는 작업에 돌입한다면 노조도 투쟁을 더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무겁게 해나갈 예정입니다.“

혹시 데드라인이 있을까요?

“상대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무단협이 지속되는 건 구성원과 조직 전체를 봐도 좋진 않으니까요. 다만 사업장 내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고 구성원들의 불안을 줄이려는 게 노조의 입장이기 때문에, 교섭 테이블은 열어두고 사측을 압박하고 조합원들을 독려하는 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입니다. 다만 노조의 이런 진정과 달리, 사측이 노조에 대한 실질적인 위해 행위를 한다면 노조도 물리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