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KBS 1TV에서 방영된 <시사기획 쌈-베스트셀러, 우리시대 일그러진 자화상> 가운데 한 장면이다.

‘일그러진 자화상’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한국의 출판시장은 이미 돈과 마케팅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된 지 오래이며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마케팅 전략만이 유일한 생존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냉혹한 생존법칙과 ‘현실’ - 돈 없이는 출판계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그러진 자화상’은 담담히 보여줬다.

그렇다. 문제는 다시 돈이다. 돈이 지배하는 마케팅의 법칙은 비단 출판계만 해당되진 않는다.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대형 법칙’은 출판계에서만 통용되는 고유법칙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네 경제구조는 이미 대기업 위주의 구조, 일부 대기업 ‘집중 구조’로 재편된 지 오래다. 시장 또한 대형마트에 의해 잠식당하다시피 하면서 동네·재래시장은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한 상태다. 여론시장 역시 돈과 자전거·백화점 상품권을 바탕으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메이저 언론 중심으로 이미 재편됐다. ‘여론 독과점’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는 단어가 됐다.

정리하면 우리네 일상 구석구석이 이미 돈에 의해 지배받고 있고, 철저히 그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바탕으로 보면 <시사기획 쌈>이 전하는 출판계의 현실은 오히려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느껴진다. 대형서점에서 월 40만원의 자릿값을 내고 진열대에 ‘광고’를 하는 것이나, 사인회를 빙자한(?) 베스트셀러 만들기, 편법적인 할인 등 이미 왜곡될 만큼 왜곡된 전체 시장판에서 순진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출판계의 문제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시사기획 쌈>의 제목처럼 그것이 ‘우리시대 일그러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된 경제구조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재벌 체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론 모두 재벌 개혁론자 입장에 선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와 그로 인한 중소기업의 폐해’에 대해 상당히 열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생활과 패턴은 그것을 개선하려는 쪽으로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미 이런 체제에 상당히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함께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기보다는 ‘더 많은 물질과 그에 따른 욕망’을 얻기 위한 삶의 방식에 매진하기 쉽다.

대형마트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동네·재래시장의 ‘초토화’와 그에 따른 문제가 무언지 알고 있지만 우리의 발길은 쉽게(?) 대형마트로 향한다. 여론시장 문제도 마찬가지. 노동계에 가장 적대적인 신문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구독하고 있는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이런 ‘왜곡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피해를 보게 되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이런 현실은 바꿔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인데, 사실 무슨 개혁이니 운동이니 하는 거 -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자신의 주변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천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꼼꼼하면서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대형마트의 편리함을 잠깐 접고, 동네 슈퍼나 재래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하나씩 사보는 것이다. 여론시장 문제도 마찬가지. 상품권이나 자전거, 공짜신문에 현혹되지 말고 자기 마음에 드는 신문을 ‘돈을 내고 사서 보는’ 습관을 들이자.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네 슈퍼나 재래시장은 자취를 감춘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질 지도 모른다. 또 일부 신문을 제외하곤 아마 언론시장에서 대다수 신문이 ‘멸종 위기’에 처할 지도 모른다.

<시사기획 쌈-베스트셀러, 우리시대 일그러진 자화상>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소비자 의식구조가 한 단계 높아지지 않으면 출판계의 마케팅 전략에 소비자들은 계속 놀아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돈 내고 사보는 사람이 정말 똑똑해져야 한다. 출판계들이 독자들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우리 스스로가 깐깐한 소비자가 되지 않으면 출판계는 물론이고 모든 부분에서 우린 ‘우스운 독자나 소비자’로 전락할 준비를 해야 한다. 깐깐한 소비자는 경제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판에서도 우리는 깐깐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유권자 의식구조가 한 단계 높아지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정치꾼들의 ‘마케팅 전략’에 놀아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투표권 가진 사람이 똑똑해지는 수밖에 방법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우습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똑똑한 소비자가 되자.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