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350만 부, 전 세계에서 4,600만 부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이미 스웨덴・덴마크 합작의 영화로도 선을 보인 바 있는 3부작 연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원제 : The girl with dragon tattoo)'이 이번에는 헐리웃의 손을 거쳐 새롭게 제작되었습니다. 음산한 분위기의 미스테리 스릴러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데이빗 핀쳐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습니다.

오늘 날의 데이빗 핀쳐 감독을 존재하게 만든 히트작 '세븐'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미스테리 스릴러였고 결말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연출한 '파이터 클럽'에서는 영화 전반에 걸쳐 스타일이 돋보이는 영상을 연출한 바 있었습니다. 스릴러물에 일가견이 있는 데이빗 핀쳐 감독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등의 드라마 장르도 연출하며 다양성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한 '밀레니엄'을 보면서 표현방식만 놓고 비교하면 '세븐'의 음산한 미스테리 분위기에 '파이터 클럽'의 스타일리쉬함이 곁들여졌다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우직할 정도로 등장인물들과 그들에 얽힌 관계들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합니다. 우선 '밀레니엄'의 오프닝 시퀀스는 사이버틱한 분위기의 스타일과 독특한 스타일의 영상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레드 제플린의 노래 'immingrant song'과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검은 점액질이 흘러내리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단 번에 영화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게 됩니다. 오프닝 시퀀스 장면과 음악이 워낙에 인상적이어서 나중에 따로 그 부분만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정부패 재벌 폭로 전문기자인 미카엘 블룸비스트(다니엘 크레이그)는 '베네스트룀'이라는 기업의 부패를 폭로하지만 오히려 증거 불충분으로 거액의 소송에 휘말리게 됩니다. 기자로서의 신뢰도도 산산 조각났음을 알게 된 미카엘은 또 다른 재벌 헨리크 방예르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방예르의 자서전을 집필해 달라는 것이었고, 사실은 40년 전에 실종된 손녀 하리에트의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할 경우 베네스트룀을 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에 결국 미카엘은 방예르가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스톡홀름을 벗어나 전화기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오지에 근거지를 잡은 미카엘은 사건을 캐내면 캐낼수록 방예르 가문의 추악한 진실이 숨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점점 조사 규모가 커지게 되자 미카엘은 조수를 요청하게 되고, 자신의 뒷조사를 담당했던 천재적인 해커 리스베트(루니 마라)와 합세하여 본격적으로 방예르가의 비밀 파헤치기에 나서게 됩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사연 설명 및 여 주인공인 리스베트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워낙 규모가 큰 방예르 가문이다 보니 잠시라도 한 눈 팔면 복잡한 가계도를 놓칠 수 있습니다.(하지만 영화를 보면 복잡한 가계도보다는 사진들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북유럽 스웨덴의 음산한 날씨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해 줍니다. 무언가 비밀이 서려 있는, 하지만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벽들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날씨와 배경은 영화를 이끄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얼굴에 피어싱을 하고 몸에는 용문신을 새기고 늘 담배를 입에 물고 항상 콜라를 챙기는 독특한 캐릭터의 소녀 리스베트의 캐릭터는 이전의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신병 판정을 받아 누군간의 보증 없이는 생활비를 얻을 수 없는 그녀의 사정을 악용해 그녀를 탐하는 변호사에게 응징을 가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의 숨고르기 템포는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여전사 니키타보다 더욱 터프하고 지능적인 리스베트는 이 영화의 사실상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 놓습니다. 그녀가 해킹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마이크로웨이브에 인스턴트 누들을 데우고 접시를 재떨이 삼아 담배를 물고 콜라를 따는 동작 하나하나가 사소한 것 같아도 그녀의 캐릭터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루니 마라는 이 영화의 최고의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이빗 핀쳐 감독의 전작 '소셜 네트워크'에도 출연한 바 있는 루니 마라는 과감한 변신을 통해 리스베트라는 인물이 루니 마라를 위해 창조된 캐릭터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리고 피어싱을 하던 모습에 영화 막판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때는 시각적인 쾌감을 안겨주기까지 합니다.

미카엘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예리한 이미지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 영화프로그램에서 영화전문기자가 미카엘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에 대해 기자라는 직종에 어울리지 않게 몸이 너무 좋은 것이 아니냐는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리얼리티를 잘 살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몸보다는 그의 냉소적인 듯하면서 예리함이 감춰져 있는 얼굴에 더 주목하면 더 몰입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밀레니엄'은 헐리웃에 의해 제작되었지만 원작에 상당히 충실하게 접근한 모습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표현방식이나 결말 등이 기존의 헐리웃 영화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국적은 미국영화지만 사실상 유럽영화라고 보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영화는 자극적인 장면은 별로 등장하지 않아도 대사나 영화의 배경 등이 묵직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스릴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음산하고 묵직한 압도감을 주는 날씨가 더욱 긴장감을 배가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한 남자 미카엘마저도 자신을 속이고 편집장과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리스베트의 실망한 표정, 그리고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버리고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속편에서 리스베트는 미카엘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스릴러의 대가 데이빗 핀쳐 감독의 솜씨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한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설 연휴 가족단위의 밝은 영화들보다는 묵직한 스릴러를 즐기고 싶은 분들께 강력히 권해 드립니다.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늙지 않습니다(不老).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들(句), 언제나 끄집어내도 풋풋한 추억들(不老句)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루세의 不老句 http://blog.naver.com/yhj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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