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통해서는 한나라당 경선토론 중계방송도 못 보겠군. 하지만 이제 KBS에서는 볼 수 있겠네.’ 지난 5일 국회 문방위에서 들려온 소식을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KBS 수신료 인상 승인안 처리를 위한 소위원회 구성 안건을 통과시켜냈으니, 민주통합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KBS를 인정한 것 아니겠나. KBS 새노조가 전한, 보도책임자의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토론 중계방송 취소 사유에 따르자면 그렇다. 한나라당이 KBS를 인정한 건지, KBS가 한나라당에 인정받은 건지 디테일이 헛갈리긴 하지만 말이다.

반면 MBC의 민주통합당 경선토론 중계 취소 사유엔 변화가 없을 거 같다. MBC가 목청껏 비판한, 그 문제 많다는 미디어렙법안 역시 한나라당이 같이 처리해버렸으니 중계 취소 혹은 거부도 민주통합당처럼 한나라당에 공정하게 적용할 일이겠다. 그래서일까. 한나라당이 미디어렙과 KBS 수신료 인상안 연계처리를 주장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오는 13일 본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말 처리하지 않으면 방송광고 시장은 여전히 무법상태. MBC는 뜻대로 직접 광고영업을 하면 되겠다. MBC도 한나라당의 정성에 감복해 경선 중계방송을 해줄지 모르겠다. 그러면 다시 KBS가 거부할까. 미디어렙법안에 묶여서 수신료 안건 처리가 불발되면?

발상을 바꿔서, KBS, MBC의 상호 보도공방으로 번져도 좋겠다. 조중동 종편에 대한 특혜라는 MBC의 다 늦었으나 불꽃같던 미디어렙법안 비판처럼, 그런 강도와 분량의 보도가 서로에게 향한다면 어떨까. 미디어렙법안 처리 무산으로 거대 방송사 MBC의 광고 직접영업이 가능해졌다며 우려와 비판을 쏟아내는 KBS, KBS가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의 요구는 아랑곳 않고 정치권에 대한 로비로 수신료를 인상하려 든다고 목소리 높이는 MBC, 로비는 우리만 했냐고 반발하는 KBS, 우리는 직접 영업하고 말지 국민들한테 손 벌리진 않는다고 반박하는 MBC.

흥미진진할 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경우이건 남사스럽긴 마찬가지다. 모두 공영방송다운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3사 보도본부장들이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함께 찾아갔다는 것도 그렇다. KBS는 수신료 인상해달라고 하고, MBC는 자기네를 공영미디어렙에 포함시키는 건 차별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다못해 대외협력 담당도 아니고, 어떻게 보도를 책임지는 보도본부장들이 무리지어 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서는 수신료, 미디어렙 등 자사 현안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가. 그게 공영방송을 위한 일인가, 회사를 위한 일인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외부 간섭과 통제만 공영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출연 검열지침’ ‘블랙리스트’ 만들고 있잖은가. 전파는 공공재이지만, 이제 KBS 전파를 타려면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지금,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는가.” MBC도 마찬가지다. “MBC를 공영미디어렙에 포함시키는 데 대해 반대하는가.”

방송강령이라는 게 있다. 1967년 3월 방송윤리위원회가 처음 제정했고 1990년 1월 KBS가 방송사 중 최초로, MBC는 같은 해 4월 각각 자사 방송강령을 만들었다. KBS와 MBC 방송강령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이 땅의 방송을 대표하는 KBS인이다.’ ‘국민의 방송인 문화방송에서 근무하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은 혹은 더 착한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부터 다시 이 땅의 방송을 대표하고, 국민의 방송 할 건가. 거듭 말하지만, 공영성을 훼손시키는 것은 외부 간섭과 통제만이 아니다. KBS, MBC 방송강령엔 그밖에도 가슴 뛰는 좋은 말, 바른 말들이 참 많다. 부끄럽지 않았으면,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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