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돌아보면 언제나 좋았던 일과 아쉬웠던 일을 기억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어야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2011년도 이제 단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런던올림픽을 1년 여 앞둔 시점에 비(非)프로스포츠, 아마추어 스포츠 역시 쉼 없이 한 해를 달려왔습니다. 의미 있는 성과도 많았고 환희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반면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2011년 한 해를 뒤돌아보며, 순수하게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최고의 순간, 아쉬웠던 순간, 기억해야 할 순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7월 7일 새벽,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열린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평창'을 외쳤습니다. 11년 동안 이어졌던 길고 긴 올림픽 도전이 '성공'으로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2003년 체코 프라하, 2007년 과테말라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던 강원도 평창은 '약속의 땅' 더반에서 '3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내는데 성공했습니다. 2번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 경험을 최대한 살려낸 쾌거였습니다. 강력한 도전자였던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 등을 따돌린 평창은 새로운 동계 스포츠 메카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유치해 세계에서 6번째로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유치한 국가가 됐습니다.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살렸습니다.

▲ 우사인 볼트 (사진: 김지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개최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세계육상선수권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7년 대구광역시는 이를 이뤄냈고, 지난 8월 대구 스타디움에서 9일간의 열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세계 최고의 육상 스타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무대였던 만큼 대회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고, 매 경기마다 많은 관중이 들어차 열기를 뿜어냈습니다. 대회 초반 경기장 관리 소홀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조직위원회가 빠르게 이를 보완해 큰 탈 없이 대회를 치렀습니다.

화제도 많았습니다. '번개' 우사인 볼트는 남자 100m 결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하지만 볼트는 곧바로 자신의 기량을 회복해 200m 우승, 400m 계주에서는 세계신기록 우승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다운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또 올림픽 금메달, 전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대거 부진한 성적을 내 유독 이변이 많은 대회로 기억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배포되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에 찍힌 선수가 부진한 성적을 내는 이른바 '데일리 프로그램 저주'도 대회 기간 내내 많은 이들의 흥미를 사로잡았습니다.

당초 '10-10(10위권 내 10명 배출)' 프로젝트를 가동해 목표 달성을 기대했던 한국 육상은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을 내며 또 한 번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열린 큰 대회의 이점, 경험을 살려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성과였다는 평입니다. 육상에 대한 관심을 넓히는데 이번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은 분명 큰 기여를 했습니다.

박태환 세계수영선수권 우승 '챔피언 등극'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부활을 알렸던 '마린보이' 박태환이 2011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2년 전 '로마 쇼크'를 완벽하게 털어냈습니다. 박태환은 7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결선에서 3분42초04를 기록하며 중국의 쑨양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예선에서 전체 7위에 그쳐 1번 레인에 배정받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크게 주목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놀라운 집중력, 스퍼트로 좋은 성적을 내 세계 수영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자유형 200m에서도 4위에 오르는 등 어느 정도 몸상태를 끌어올린 박태환은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겠다는 당찬 각오를 갖고 또 한 번 큰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학선 세계선수권 도마 金...올림픽 청신호

스포츠 기대주들의 활약이 많았던 한 해이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선수는 '한국 체조의 희망' 양학선이었습니다. 양학선은 10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체조 세계선수권 남자 도마에서 1,2차시기 평균 16.566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 선수가 체조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다섯 번째 일이었는데 도마에서 금메달이 나온 것은 1992년 유옥렬에 이어 19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아 착지하는 난도 7.4점짜리 고난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양학선은 아직 19살에 불과함에도 당당한 자신감과 두둑한 배짱으로 무장해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좋아지고 있는 기대주입니다. 그런 선수가 지난해 난생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4위에 오르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데 이어 결국 두 번째 도전 끝에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에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한국 체조의 진정한 이 기대주에 많은 사람들은 내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 김연아 선수ⓒ연합뉴스

김연아 세계선수권 준우승...2011-12 그랑프리 불참

'피겨 여왕' 김연아는 올해 2011 세계선수권 단 한 대회에만 출전했습니다. 당초 개최지였던 일본 도쿄의 대지진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로 장소가 옮겨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 65.91점, 프리스케이팅 128.59점을 기록해 합계 194.50점을 기록하고 일본의 안도 미키(195.79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아쉽게 2년 만의 세계선수권 정상 탈환은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변치 않은 기량으로 세계 정상급 수준을 선보이며 '피겨 여왕'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2011-12 시즌 그랑프리, 세계선수권을 모두 불참하기로 한 김연아였지만 자신을 사랑한 팬들을 위한 대외 활동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7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8월에는 아이스쇼를 선보여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이후에는 학업에 전념하면서 자선 기부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아 '따뜻한 피겨 여왕'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은 단 하나에 불과했지만 피겨 여왕의 2011년은 그래도 쉼이 없었습니다.

여자 양궁 세계선수권 '노골드' 충격

'철옹성' 같던 한국 여자 양궁이 올해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7월 열린 세계 양궁 선수권에서 개인전, 단체전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 지난 1985년 이후 26년 만에 세계선수권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습니다. 기보배, 정다소미, 한경희 등 신진급 선수들이 나섰다고는 해도 매 대회마다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되고 떠올랐던 만큼 이번 대회의 부진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더욱이 런던올림픽을 1년 앞두고 나온 성적이어서 그 충격은 더 컸습니다. 반면 남자 양궁은 신예 김우진이 개인전, 단체전을 휩쓰는 등 좋은 성적을 내 대조를 이뤘습니다.

▲ 안현수 (사진: 김지한)

안현수 러시아 국적 취득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의 러시아 국적 취득 소식은 올해 빙상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였습니다. 성남시청 소속이었던 안현수는 성남시의 쇼트트랙팀 해체로 무적 신세가 된 뒤, 더 나은 여건에서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러시아로 귀화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대다수의 팬들은 안현수의 밝은 미래를 응원하며 귀화 선택에 대한 지지를 밝혔고, 이 기회에 자만에 빠진 한국쇼트트랙에 본때를 보여달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올림픽 3관왕 출신의 선수조차 제대로 운동에 전념할 수 없는 국내 스포츠 현실로 다른 나라 국적을 택하고 만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아마추어 스포츠팀 잇따른 해체

이렇게 안현수처럼 지방자치단체 아마추어 스포츠팀의 잇따른 해체로 선수 생활 자체가 발목이 잡힌 선수들이 많았던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안현수가 소속했던 성남시청은 하키, 육상, 펜싱을 제외하고 12개 종목 운동부를 예산 절감을 이유로 없앴으며, 용인시청은 여자 핸드볼팀을 해체키로 해 대표급 선수가 선수 생활을 그만 두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춘천시청은 빙상팀을 해체하기로 해 동계스포츠를 유치하고도 빙상팀 하나 운영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마추어 스포츠팀은 잇따라 해체하지만 반대로 프로야구 같은 프로스포츠 유치에 공들이는 곳도 늘어나고 있어 '앞뒤가 안 맞다' '돈 되는 것만 하려 한다'는 비판도 일었습니다. 어쨌든 아마추어 스포츠의 열악한 현실을 또 한 번 체감했던 순간이었고, 이에 대한 체육계의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서효원 탁구 얼짱 탄생...국내 챔피언 등극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들이 득세한 한국 여자 탁구계에 새로운 선수가 등장해 연말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탁구 얼짱' 서효원이었습니다. 서효원은 지난 26일 끝난 종합탁구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중국 귀화 출신 전지희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앳된 미모로 큰 화제를 모았던 서효원은 이번 우승으로 또 한 번 주목받으며, 포털사이트 검색어로 장시간 오르기도 했습니다.

'탁구 여왕' 현정화 감독의 제자이기도 한 서효원은 김경아, 박미영 등과 더불어 '수비형 에이스'로 꼽히고 있으며, 현재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본래 국제 대회에서 소리없이 성장하던 서효원이 이번 우승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 탁구의 진정한 희망으로 거듭날 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투혼의 1승...여자 럭비 국제대회 사상 첫 승

한국 여자 럭비의 국제대회 첫 승은 올해 꼭 기억해야 할 '작지만 의미 있는 쾌거'입니다. 변변치 않은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투혼을 발휘하며 연습해온 여자 럭비팀이 10월 열린 2011 아시아여자 7인제 럭비대회에서 라오스를 17-12로 꺾고 감격적인 국제 대회 첫 승을 거뒀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럭비에 대한 경력도 일천했던 선수들이 그야말로 땀과 눈물로 일궈낸 값진 승리였습니다. 이 1승을 통해 한국 여자 럭비는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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