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시즌 도중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김태균이 중도 이탈했다는 소식은 충격과 함께 야구팬들에게 많은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야구 외적인 환경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여하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 중의 한명인 김태균이 일본에서 한국야구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리고 일본 진출 첫 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적응에 애를 먹으면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한 반면 김태균은 21개의 홈런에 92타점을 기록하며 중심타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더 이상 고집해서 입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2009년 WBC에서 대한민국 타선에서 가장 맹활약을 펼쳤던 한화 이글스의 중심타자들인 김태균과 이범호는 결국 일본으로 진출해서 2년도 채 못 버티고 국내로 유턴하게 되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소프트뱅크에서 이범호가 국내로 유턴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당연히 원 소속팀인 한화로 복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이범호가 선택한 팀은 KIA 타이거즈였다. 이범호는 올 시즌 초반부터 절정의 클러치 능력을 선보이며 KIA 타이거즈 돌풍을 주도하였다. 당연히 한화 팬들의 비난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었고, 시즌 초반 하위권에 맴도는 성적과 맞물려 팬들은 단체행동을 통해 구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한화 구단은 시즌 도중 유례가 없는, 사장, 단장 교체라는 강수를 빼들었고 이와 동시에 투자에 인색한 구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격적으로 지갑을 풀기 시작한다. 2군 전용 연습장 건립이 빛의 속도처럼 추진되었고, 용병 가르시아, 바티스타 등을 영입하며 끈끈한 팀컬러를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시즌 종료 직후 대전구장 리모델링에 착수하였고, 2005년 김민재 이후 무려 6년 만에 FA영입전에 뛰어들어 LG트윈스의 계투요원 송신영을 영입하며 투수진을 한층 강화한다.

ⓒ연합뉴스

올 시즌 도중 구단의 최고 수장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기장을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야구단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의향을 몸소 내비쳤다. 그리고 시즌 최종순위 5위를 할 경우 3억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공표하기도 하였다. 4위도 아닌 5위 자리에 당근을 걸었던 적은 아마 올 시즌의 한화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 움직임은 선수단에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하였고, 자연스레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플러스 효과를 안겨주었다.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가 펼쳐지다보니 자연스레 대전구장도 관중들의 발걸음이 훨씬 늘어나면서 팀 창단 이후 사상 최다인 464,871명의 홈관중을 동원하게 된다.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리그 기간에도 예전과는 다르게 한화 이글스는 여러 가지 뉴스를 제공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송신영의 영입도 상당히 기민한 움직임을 통해 진행하며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국내 복귀를 선언한 박찬호와의 계약 여부도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구단 투자의 예고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화 이글스는 올 시즌 스토브리그에서 블록버스터급 뉴스를 터뜨린다. 국내 복귀를 선언한 간판타자 김태균과 연봉 15억에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올 시즌 역시 국내 복귀를 선언하고 삼성 라이온즈와 옵션 3억원 포함 연봉 11억원에 계약을 체결한 이승엽의 경우 일본으로 진출하기 직전 6억 3천만원의 연봉을 받았었고, 홈런과 타점에서 각종 기록을 수립했고, 일본에서도 비록 막판에 부진했지만 최고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로도 활동했던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김태균의 15억원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범호를 놓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처럼 한화 구단은 팀의 간판타자를 잡기 위해 제대로 실탄을 풀었다. 김태균이 일본으로 진출하기 직전인 2009시즌에 받았던 연봉은 4억 2천만원이었다. 일본으로 2년 동안 진출한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가치를 4배 가까이 올려놓았다. 그런데 김태균이 일본에서 2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출처 - Daum 기록실

일본 진출 첫 해에 거둔 성적은 어느 정도 제 몫을 해줬다고 감안하더라도 올 시즌 그의 성적은 야구 외적인 변수와 요인을 떠나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절대 삭감 대상이다. 특히나 LG 트윈스가 도입한 신연봉제를 적용하게 되면 순식간에 연봉이 반토막날 수 있는 성적이다.

이번에는 국내에 있는 동안 김태균이 거둔 성적과 그의 입단동기이자 라이벌인 이대호와의 성적을 비교해본다. 우선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김태균이 국내에 있는 동안 거둔 년도별 성적이다. (자료 출처 - KBO 홈페이지)

다음은 보다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이대호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거둔 성적이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기록만 놓고 비교해보면 입단 첫 해부터 주전을 꿰찬 김태균이 확실히 이대호보다 우위에 있는 성적을 거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김태균이 일본에 진출한 2010년부터 2011년 시즌 사이에 이대호가 거둔 성적을 포함시켜 보면 다음과 같다.

2010시즌부터 이대호는 2009시즌까지의 이대호와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어 버렸다. 특히 2010 시즌은 이대호가 진정한 괴물타자로 거듭나게 되었던 시즌이었다. 세계 신기록인 9게임 연속 홈런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자신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도 가뿐히 넘어섰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2010년, 2011년 타율이 각각 0.364, 0.357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김태균보다 장타력은 우위에 있었을지는 몰라도 정교함은 다소 떨어지는 모습이었는데, 2010 시즌부터 이대호는 파워에 정교함이 가미된 그야말로 빈틈이 보이지 않는 타자가 된 것이다.

결국 이대호는 롯데의 100억 베팅을 뿌리치고 오릭스와 2년 계약을 맺으면서 무려 연봉 2억 5천만엔(약 37억원)을 받게 되었다. 김태균이 받았던 연봉 1억 5천만엔 (약 22억원)보다 무려 1억엔이 많은 액수이다. 일본에서 받았던 연봉 액수와 절대 금액으로 비교하면 김태균이 국내에서 받게 되는 15억원이 많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김태균이 소속 구단과의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팀을 제 발로 뛰쳐나온 점이다. 최소한 시즌을 끝까지 뛰고 난 다음에 국내 복귀를 선언했다면 지금 김태균이 받게 될 연봉의 액수에 대한 논란은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복귀한 선수들도 대부분 한국에서 받았던 연봉보다 200% 이상의 인상률을 기록한 바 있다. 2001년 KIA로 복귀한 이종범은 일본진출 바로 직전 1억 1000만원의 연봉을 받았으나, 복귀하면서 3억 5000만원의 연봉에 계약하였고, 2002년 LG로 복귀한 이상훈도 일본 진출 바로 직전의 연봉 1억 800만원에서 무려 335%가 인상된 4억 7천만원에 계약을 체결하였다. 하지만 당시 이종범과 이상훈이 계약을 맺을 당시 최고 연봉선수들의 연봉 또한 각각 3억원, 4억원대에서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계약을 체결한 연봉액수는 별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번에 김태균이 연봉 15억원에 계약을 체결할 당시 공식적인 최고 연봉은 역시 일본에서 유턴한 이승엽이 받게 되는 11억원(옵션 3억원 포함)이었다. 10억원 시대도 아닌 순식간에 15억원 연봉시대를 열어젖힌 김태균의 내년 시즌 성적은 도대체 어느 정도 되어야만 몸값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원년부터 올 시즌까지 년도별 최다 연봉을 받았던 선수들, 그리고 당해년도의 성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 년도별 프로야구 최다 연봉선수 (기록참조 - KBO 홈페이지)

1982년 최다 연봉선수는 OB 베어스의 박철순이었고, 금액은 2,400만원이었다. 박철순은 원년 OB 베어스 우승의 일등공신이었고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22연승의 신화를 수립하며 다승 1위,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하였다. 최고 연봉 선수다운 활약을 톡톡히 펼친 것이다. 하지만 그 해 혹사의 후유증과 경기 도중 다친 허리 부상의 후유증으로 그는 이듬해부터 거의 시즌 아웃되다시피 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1984년까지는 박철순이 받은 3,200만원이 최고 연봉이었다. 1985년 최고 연봉자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바로 1984년 한국시리즈 전설을 일구어낸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 최동원이 3,437만원을 받게 되면서 최고 연봉킹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이후 최동원은 1986시즌 8,100만원으로 연봉이 수직상승하게 되고 1990시즌까지 최고 연봉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90시즌을 마치고 최동원이 은퇴한 이후 연봉킹의 자리는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이 차지하게 된다. 선동렬은 1991시즌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억대 연봉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1995시즌을 마치고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 5년 연속 연봉킹에 자리한다. 1996시즌부터 선동열이 일본으로 진출한 이후 LG트윈스의 김용수가 1998시즌까지 최다 연봉 선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99시즌 현대의 정명원이 처음으로 연봉 1억 5천만원의 벽을 돌파하면서 연봉킹에 오른다. 그런데 2000시즌 최다 연봉선수의 연봉의 맨 앞자리에 1이 아닌 다른 숫자가 찍히게 된다. 2000시즌을 앞두고 삼성의 이승엽과 현대의 정민태가 치열한 연봉 눈치보기 경쟁을 펼치다가 결국 이승엽이 3억원으로 사상 처음 연봉 3억원 시대를 열게 되자, 곧바로 현대에선 정민태에게 1천만원을 더 얹어줘서 정민태가 연봉킹에 오르게 된다.

순식간에 프로야구 최다 연봉금액이 100% 가까이 수직상승한 것이다. 2001시즌에는 이승엽의 3억원이 최다연봉이었으나 시즌 후반기부터 일본생활을 접고 KIA 타이거즈로 전격 복귀하게 된 이종범이 3억 5천만원을 받게 되면서 연봉킹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프로야구 출범이후 사상 처음으로 최다연봉킹의 자리에 투수가 아닌 야수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종범은 해외진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유턴한 선수가 되면서 유턴선수 고액연봉 시대의 서막을 열게 된다. 이듬해 일본, 미국을 거치고 다시 LG 트윈스로 복귀한 이상훈이 4억 7천만원을 받으면서 연봉킹에 오른다.

2003시즌에는 이승엽이 6억 3천만원의 연봉을 받게 되면서 연봉 6억원 시대를 연다. 그리고 이듬해 2004년에는 정민태가 사상 처음으로 연봉 7억원의 벽을 돌파(7억 4천만원)하게 된다. 2005시즌을 앞두고는 현대에서 FA로 삼성으로 이적하게 된 심정수가 60억원의 대형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년 평균 7억 5천만원을 받게 되면서 연봉킹에 등극한다. 이후 올 시즌까지 최다 연봉금액은 7억원에서 7억 5천만원 사이를 들락날락 해왔다. 1991년 해태의 선동열이 사상 처음 억대 연봉 시대를 연 이래 1999년까지 9년 동안 최다 연봉금액은 1억원대 중,초반에서 머물다가 2000년 시즌을 앞두고 연봉 3억원 시대가 열린 것처럼, 2004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8시즌 동안 최다연봉은 7억원대에 머물러 있다가 2012시즌을 앞두고 연봉 10억원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최다연봉을 받았던 선수들의 성적은 어떠했을까? 위의 표를 보면 년도별 최다연봉을 받았던 선수들 중 소속구단이 우승을 차지했던 적은 30시즌 동안 7회에 불과하다. 그리고 최다연봉을 받은 선수들이 개인 타이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적은 7회에 불과하다. (2009 시즌 김동주가 OPS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OPS는 공식 타이틀로 인정하지 않는다.) 원년부터 올해까지 최다연봉을 받으면서 제 몫을 했던 선수들은 원년의 박철순, 85년부터 87년까지의 최동원, 선동열, 김용수, 이승엽 정도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최다 연봉 선수들은 받은 연봉만큼 몸값을 해내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최다연봉을 받은 만큼 무언가를 보여줘야 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경기력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년도별로 최다연봉을 받은 선수들의 연봉이 해당년도의 1인당 국민 총소득과 비교해 볼 때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와 해당 소속 구단의 관중동원능력을 살펴보았다. 물론 최다 연봉선수가 반드시 최고 인기 선수라는 법은 없다. 어쨌든 최다연봉 선수를 보유했다는 것은 구단이 그만큼 비용을 많이 지불하게 된 것이고, 비용을 들인 만큼 과연 관중동원을 통해 어느 정도 만회할 여력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 기록 출처 - KBO 홈페이지

1982년 박철순이 2,400만원의 연봉을 받을 당시 1인당 평균 국민총소득은 141만원이었다. 박철순의 연봉은 일반 국민들이 1년 동안 벌어들이는 금액보다 대략 17배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1986년 최동원의 연봉이 8,100만원으로 수직 상승하는데 당시 1인당 평균 국민총소득과 비교하면 무려 34배나 더 벌어들인 금액이었다. 그 전까지 최다 연봉금액과 1인당 국민총소득간의 격차가 15배~17배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동원의 연봉금액은 엄청났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최동원은 자신의 몸값을 톡톡히 해냈고 어깨가 닳도록 던지고 또 던졌다. 이후 선동열이 억대 연봉을 받게 되었지만 당시 국민 총소득과 비교해볼 때 20배 정도 차이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02시즌을 앞두고 이상훈이 4억 7천만원을 받으면서 이후 1인당 국민총소득과 최고 연봉간의 비율은 30배 이상에 달하였다. 올 시즌과 지난 시즌 두산의 김동주가 받은 최고연봉 7억원은 오히려 1인당 국민총소득과의 격차가 30배 이내로 좁혀졌으나, 김태균이 받게 되는 15억원의 연봉은 내년 1인당 국민 총소득 예상치를 3천만원으로 잡아도 무려 50배에 달하게 된다.

최고 연봉 3억원 시대를 열었던 2000년 시즌은 공교롭게도 총 관중이 250만명대로 급감했었다. 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의 암흑기 동안 경기장을 찾은 총관중수는 200만명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2004시즌 7억 4천만원의 연봉을 받은 정민태의 소속구단 현대 유니콘스는 한 시즌동안 고작 12만 9천여명의 관중을 불러 모았다. 입장수익의 50% 이상을 정민태의 연봉에 고스란히 안겨주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후 최고 연봉액수는 7억원~7억 5천만원대에서 좀처럼 늘지 않는 동안 프로야구는 2000년대 후반부터 호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8년부터 다시 500만 시대를 맞이하게 된 이후 올 시즌에는 무려 680만명 이상의 총관중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시장규모가 급속도로 커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년시즌 한화구단이 김태균에게 15억원의 거액을 지불하면서 과연 어느 정도 관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 과연 국내 유턴파 선수들의 내년 시즌 성적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과연 김태균이 연봉 15억원에 걸맞는 활약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어느 정도 해줘야 몸값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일단 홈런 30개, 타점 100개는 하한선으로 잡아야 할 듯 싶다. 그리고 대전구장을 찾는 관중 수는 무조건 올 시즌보다 많아야 할 것 같다. 일단 김태균, 박찬호라는 거물급 스타가 들어오면서 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분위기는 조성되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기록보다는 해줘야 할 상황에서 김태균이 얼마나 클러치 능력을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할 듯싶다. 이는 바로 팀의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애정남’에게 의뢰한다면 최소 플레이오프는 진출해야 김태균의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고 봐줄 수 있을 듯싶다. 현재의 한화의 전력은 결코 완성된 전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경기에 출장해서 꾸준한 모습, 그리고 팀이 원할 때 해결할 수 있는 모습을 김태균이 자주 보여주게 된다면 15억원에 대한 논란은 최소화될 것이다. 과연 희대의 먹튀로 남느냐의 여부는 내년 시즌이 개막하면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내년시즌 프로야구를 관전하는 또 다른 관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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