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축구를 결산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은 바로 여자 축구의 화려한 비상이었습니다. U-20(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고 U-17(17세 이하) 월드컵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대회 첫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전국은 온통 여자 축구를 다시 보자는 열기가 들끓었습니다. 11월에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마저 중국을 제치고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따내면서 여자 축구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각 급 대표팀 모두 좋은 성적을 내다보니 기대도 컸고, 정부 역시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밝은 희망이 곧 찾아오리란 예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사이에 여자 축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1승1무3패로 탈락했고,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AFC U-16 챔피언십에서마저 모두 전체 4위로 예선 탈락해 내년에 열리는 대회에 모두 출전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특히 U-17 월드컵을 제패했던 선수들이 고스란히 출전한 U-19 챔피언십에서 2승 1무 2패로 탈락한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U-17 여자월드컵을 출전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 그렇게 여자 축구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 여자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아시아 여자 축구 경쟁에서 한국 여자 축구는 올해 분명히 밀렸습니다. 각 팀 전력이 대등해진 가운데서도 다소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 북한 등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뼈아팠습니다. 물론 한국의 실력이 예년에 비해 많이 좋아져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는 해도 중요한 순간에 나와야 할 결정력이 제대로 터져주지 못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패배, 탈락의 원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지난해 거둔 성과에 도취해 준비가 안일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새롭게 나선 U-16 대표팀의 경우, 지난해 월드컵 우승을 거뒀던 멤버에 비해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전력 향상을 하기 위한 많은 준비를 했다는 소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던 성인대표팀 정도가 해외로 나가 경기를 했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난해 거둔 성과만 놓고 봤을 때 아시아 무대는 분명히 통과할 것이라는 안일한 자세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마인드부터 문제였고 1년 만에 여자 축구는 아시아 2류로 다시 추락했습니다. 올해 여자 축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부진한 성적 탓에 지난해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다 해서 물론 한국 여자 축구가 끊임없이 추락할 것이라고 섣불리 예측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 지원이 있고,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인 WK리그 역시 2개 팀이나 더 창단해서 외형적으로는 분명 기반을 갖춰나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1년 만에 각 급 대표팀이 모두 부진한 성적을 낸 것은 뭔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재도약 의지와 더불어 대표팀과 클럽간 전반적인 내실 있는 시스템 정립,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는 식의 꾸준한 투자,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성적을 낸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와의 차이를 줄이면서 보다 많은 선수들이 제대로 된 훈련, 연습을 통해 기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 저변 확대도 필요합니다. 늘 하는 똑같은 얘기대로 실천한다면 문제는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고, 전력도 꾸준하게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며 결과적으로는 단 1년의 반짝 상승세가 더 큰 추락을 불러일으키는 '황당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축구협회나 여자축구계 전체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원점부터 재검토해서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011년 한국 축구계의 어수선한 분위기 아래서 여자 축구 역시 매우 아쉬웠던 한 해였습니다. 좀 더 냉철하게 돌이켜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내년 여자 축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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